제임스 어셔는 17세기 말 아일랜드 대주교를 역임한 당대 최고 석학의 하나였다. 그는 우주 창조일을 계산해 낸 것으로 특히 유명하다. 그는 구약과 중동의 여러 문서들을 종합해 천지창조가 기원 전 4004년 10월 23일 일요일 오전 9시에 이뤄졌음을 밝혀냈다.
한 때 교회의 공식 입장이던 이 주장을 믿는 사람은 이제 거의 없다. 방사능 원소의 반감기를 이용한 측정으로 지구가 45억 여년 전에 생겨났다는 데 대해 과학자의 절대 다수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생명 탄생 시점이 언제인가를 놓고는 아직 이론이 분분하다. 생명체의 흔적인 화석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오래된 화석일수록 그렇다. 화석이 들어 있는 암석과 암석이 놓여 있는 지구 표면이 지구 핵과 맨틀의 이동에 따라 끊임없이 움직이며 지각 밑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최근까지 발견된 가장 오랜 생명의 흔적은 호주 서부에서 발견된 스트로마톨라이트 화석이다. 이들 생명체는 지금부터 35억 년 전에 생존했던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러나 이 기록은 이제 깨지게 됐다. 지난 달 그린랜드 이수아 지역에서 이보다 2억년 오래된 스트로마톨라이트 화석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최근까지 얼음에 뒤덮여 있던 이곳이 지구 온난화로 녹으면서 오랜 세월 감춰져 있던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무리를 이어 살고 있는 스트로마톨라이트 집단은 광합성 능력이 있는 생명체로 그 구조가 원시적인 상태에서 이미 많이 벗어난 상태다. 과학자들은 최초의 생명체가 이 정도 진화하는데 최소 수 억년이 걸렸을 것으로 보고 있다.
지구가 탄생한 지 수 억 년 동안 지구는 수많은 소행성과 운석의 충돌, 화산 폭발로 도저히 생명체가 살 수 없는 환경이었다. 37억년에서 수 억 년 전 생명이 탄생했다면 지구가 식고 운석과 화산 활동이 잠잠해지자마자 생명체가 출현했다는 얘기다. 적당한 조건만 갖춰지면 생명 탄생은 그렇게 희귀한 일이 아님을 보여주는 단서다.
반면 최초의 다세포 생명체가 출현한 것은 지금부터 20억 년 전이고 단순 자가 복제가 아니라 남성과 여성의 결합, 즉 성에 의해 자기 복제가 일어난 것은 10억 년 전으로 추산된다. 진정한 의미의 죽음이 출현한 것도 이때부터다. 단순 자가 복제의 경우 조상이나 후손이나 붕어빵이나 홍길동의 분신처럼 똑같기 때문에 한 개체의 죽음은 별 의미가 없지만 부와 모의 유전자를 반반씩 받은 개체는 형제라도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개체의 죽음은 각별하다.
성에 의한 복제는 단순 복제보다 남녀의 구별이 있어야 하고 서로 맺어져야 하기 때문에 훨씬 복잡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이 이를 택한 것은 그렇게 함으로써 자손의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손이 다양하면 다양할수록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해 살아남을 확률이 커진다. 지구 상에 존재하는 고등 생명체가 모두 이를 택하고 있는 것을 봐도 이 방식의 효율성을 확인할 수 있다.
40억 년 전 지구상에 존재했던 원시 생명체와 만물의 영장인 인간과는 매우 다르지만 세포의 관점에서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모든 세포는 자기를 보호할 수 있는 막이 있고 외부에서 영양분을 받아 들여 개체를 유지하고 복제를 통해 종족을 보존하는 기능을 갖추고 있다.
인간과 쥐, 개와 고양이, 기린과 돼지를 비롯한 포유류의 99%는 모두 7개의 목뼈를 갖고 있다. 이는 하나님이 천지를 7일 만에 창조해서도 아니고 일곱이 운이 좋은 숫자여서도 아니다. 모든 포유류의 공통 조상이 7개의 목뼈를 갖고 있었고 그 후 이를 바꿔야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그 후손 모두 목뼈가 7개가 된 것이라고 봐야 한다. 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인 침팬지는 인간과 유전자의 98.8%가 같다. 이 또한 우연의 일치라 보기보다는 이들 모두가 공통의 조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 보는 것이 옳다.
진화는 대다수 과학자들 사이에 의심의 여지가 없는 진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럼에도 미국인의 42%는 아직도 인간과 동물이 따로따로 창조되었다는 창조론을 신봉하고 있다. 교황이 갈릴레오에 대해 저지른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하는데 350년이 걸렸다. 올해는 다윈의 ‘종의 기원’이 나온 지 157년이 되는 해다. 진화론이 널리 받아들여지기까지 아직 200년은 더 기다려야 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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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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