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탱크 트럭에 오른다. 카풀레인을 이용하기 위해 머리수를 채울양으로 기름 찌꺼기를 담는 둥근 탱크가 적재되어 있는 남편의 트럭에 함께 타고 기름 찌꺼기 전용 하치장으로 향한다. 거의 30년이나 된 낡은 디젤트럭은 걜걜걜, 가르릉 가르릉 온갖 소음을 내면서도 숙달된 남편의 기어넣는 손 동작에 맞춰 잘도 달린다.
넓은 파킹랏을 앞에 두고 커다란 원통형 저장 탱크들과 그 사이를 수많은 굵은 파이프들이 이리저리 구부러지고 뻗어나가며 복잡하게 얽혀있는 하치장, 끄트머리 묵직한 쇠마개로 잠겨있는 아나콘다를 닮은 호스 에 탱크를 연결하자 아나콘다는 잠을 깬듯 쿨렁대며 탱크 속을 비워낸다. 남편의 지시대로 옆에 설치된 수돗물을 켰다 잠갔다 하는일을 거들 때 외에는 행여 그 오물을 뒤집어 쓰기라도 할까봐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다. 그런데 남편은 그 지독한 냄새를 못맡기라도 하는 양 탱크뚜껑을 열고 아주 코를 박고 들여다보며 물 호스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탱크 안을 씻어낸다.
겨우 시동이 걸린 트럭을 몰고 다시 털털거리며 오는 내내 마음 한 구석이 아려온다. 미국에서 30여년의 세월 동안 온갖 궂은 일을 하다보니 일에 대한 귀천의 구분이 희석되어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을 때도 되었건만 냄새나고 더러운 일에 검은 때가 끼고 굵어진 손마디가 눈에 들어온다.
홍대 미대에 연락을 넣어 내 조각 작업을 도와줄 이를 부탁했을 때 처음 만났던 남편의 장발머리가, 대머리에 그나마 남은 머리마저 희끗희끗해진 지금의 모습에 겹쳐진다. 같은 작업복이라도 청바지에 흰 셔츠, 청 자켓의 폼나는 모습이, 수십번 빨아도 지워지지 않는 기름 쩐내와 온갖 지저분한 얼룩이 묻어있는 차림에 또 겹쳐진다.
일터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저 사람을 단지 청소부로 여기고 또 그렇게 대할 것이다. 밤새 그림을 그리고 화실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던 장발머리와 이 청소부가 같은 사람이란걸 그들은 알리가 없다.
내가 여름 동안 일하는 조그마한 스낵바는 규모가 제법 큰 테니스 클럽내에 있다. 맘 좋은 운영자가 뒤로 서서히 물러나면서 공주병으로 회원들 간에 불만을 키우는 그 딸이 점차 운영을 맡고있는데 요즘들어 그녀의 십대 딸이 엄마의 공주병에 보태서 갑질을 시작한다. 스낵바가 한가한 오후 시간을 이용해 다른 지역에서 한참 청소일을 하고있을 남편의 전화로 샌드위치 주문을 한 것이다.
남편은 내게 연락해 주문을 알려주고 난 급히 샌드위치를 만들어놓고 기다려도 찾으러 오질 않는다. 하는 수 없이 샌드위치를 들고 가게를 비워놓은 채 찾아나선다. 채 스무 걸음도 안되는 방에 친구와 책을 펴놓고 있다. 샌드위치를 전해주고 돌아서는데 “잠깐”, “Coke 하나만 갖다줄래” 두꺼운 화장의 마네킹 같은 얼굴이 밉다. Please도 빠진 명령이다. ‘에이 한꺼번에 얘기하지’ 속으로 투덜대며 겉으로는 “오케이”. 그런데 옆에 앉은 친구의 나를 뚫어지게 보는 눈은 내 반응을 살피고있다.
Coke은 자판기에 있는 것으로 내가 서비스해야하는 품목이 아닌 것이다. 가게를 비워 놓은 채로 자판기에서 Coke을 받아서 빨대와 더불어 냅킨까지 챙겨들고 가져다 준다. 미소와 더불어… 내 표정을 살피는 옆의 친구에게도 미소를 보낸다. 저리해서 얻으려는 보상은 무엇일까. 어린 저 아이들도 자기 안에서 자존을 위해 갈등하고 있는 것이다.
젊은 시절 학생회 간부로 설치며 교정을 휩쓸고 다니던 사람, 작업실에서 밤새우며 작품과 씨름하던 사람, 긴 생머리에 군복 물들여 입고 거리를 쏘다니던 히피라 불리던 사람, 등록금이 없어 유학생활을 청산하고 매일 공중화장실 오물을 치우며 눈물을 삼키던 사람, 오랜 불법체류의 불안과 좌절, 시부모 봉양과 시집살이의 고통과 수모를 견뎌낸 사람, 왜 사는지를 하늘에 대고 묻고 또 묻던 사람, 자살을 꿈처럼 비수처럼 가슴에 품고 다니던 사람, 삶이란게 별게 아니라 지금 이순간을 받아들이는 것이라는걸 알게된 사람.
이 모든 사람들과 내가 같은 사람이란걸 사람들은 모른다. 나 또한 다른 이들의 그 깊이와 넓이를, 삶의 궤적을 알지 못한다. 그러니 그 어느 누구를 멋대로 평가하고 함부로 대할 수 있겠는가.
늦은 밤,덱에 앉아 어둠을 바라본다. 덱의 센서가 내 움직임에 작동하면서 전구의 불이 켜진다. 머지않아 불은 꺼지고 미동도 없는 나를 센서는 알아채지 못한다. 적요한 어둠, 유클립투스 나무들이 품고있는 바람의 숨소리가 들린다. 느닷없이 물결이 밀려오듯 그 고요가 내 안으로 치밀어 오르고 일시에 나는 그 고요가 되어버린다. 이 평화… 충만함… 그래, 나는 그저 이 고요 자체로 살아가는게 좋겠다. 센서마저 나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하도록 조용히, 내 안의 가득 고인 고요함으로 내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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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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