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적 책임 안고 정면돌파 의지…작년 메르스 사태 때도 직접 수습
▶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어 등기이사로 등재…민형사상 책임 떠안아
연말 사장단 인사서 회장직으로 승진하진 않을 듯
삼성전자가 12일 이사회를 열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등기이사 선임 안건을 다음달 27일 주주총회에 올려놓겠다고 발표했다.
삼성전자는 오너의 책임경영 차원에서 오래전부터 이사회가 이 부회장의 등기이사 선임을 추진해왔다고 밝혔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이날 "책임경영 차원에서 이 부회장이 등기이사를 맡는 방안을 이사회에서 오랫동안 권유해왔다"면서 "이건희 회장이 장기간 와병 중인 상태여서 이 부회장이 이를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말했다.
삼성그룹 관계자도 "책임경영 차원이기도 하고, 이 부회장이 공식적인 역할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현재 등기이사로 등재돼 있는 삼성그룹 오너가 3세는 이 부회장의 동생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유일하며, 이 부회장이 이번에 선임되면 두 번째가 된다.
이 부회장은 2004~2008년 삼성전자와 소니의 합작법인인 S-LCD 등기이사직을 맡은 바 있지만, 삼성 계열사의 등기이사로 등재된 적은 없다.
그동안 일부 시민단체에서는 삼성 오너 일가가 등기이사직을 맡지 않아 경영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는 지적을 하기도 했다.
때마침 삼성전자가 프린팅사업부를 휴렛팩커드(HP)에 매각하는 안건이 있어 이 부회장의 등기이사 선임이 함께 처리되도록 주총 안건으로 상정됐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이 부회장의 '등기이사 등판'을 최근 갤럭시노트7 리콜 사태와 연관 지어 해석하는 시각이 더 강하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삼성의 실질적인 리더로서 본인이 직접 책임지고 위기를 돌파해야 할 상황이 온 것 같다"고 말했다.
재계에서는 글로벌 기업 가운데 위기 상황에서 오너 경영체제를 구축함으로써 분위기 반전을 꾀한 사례를 떠올리기도 했다.
일본 자동차기업 도요타는 2009년 미국에서 차량 급발진 사태로 960만대를 리콜 조치하고 창사 이래 최대인 4천600억엔(약 5조원)의 영업손실을 보면서 위기를 맞았을 때 전격적으로 오너 경영체제를 도입한 바 있다.
창업자 가문 출신인 도요다 아키오 대표가 14년 만에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오른 것이다.
이와 관련,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이 부회장의 등기이사 선임은 삼성의 위기돌파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갤럭시노트7 사태로 소비자의 신뢰가 무너지는 상황에서 오너가 전면에 등장했다는 건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이 전면에 등장함으로써 배터리 발화 논란, 250만대 전량 리콜, 국내외 사용중지 권고 등으로 이어져온 갤럭시노트7 사태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될지 주목된다.
IT전자업계에서는 이 부회장이 민형사상으로 법적 책임을 떠안는 등기이사직을 맡기로 수락한 만큼 이번 사태를 수습할 수 있는 획기적인 '반전 카드'를 내놓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애플이 아이폰 신작을 내놓는 등 프리미엄 스마트폰 시장에서 경쟁이 정점에 달한 시점이어서 삼성이 현재 상황에서 새롭게 쓸 수 있는 전략적 무기가 매우 제한적이라는 분석도 있다.
애초 지난 3일 삼성전자가 250만대 전량 리콜을 결정했을 때만 해도 시장에서는 이재용 부회장의 결단이 소비자들에게 긍정적인 신호를 보냈다고 해석했지만, 이후 미국 등지에서 잇단 사용중지 권고가 나오면서 분위기가 삼성에 불리한 쪽으로 급변했다.
이 부회장의 위기대응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6월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당시 삼성서울병원이 질병확산의 진원지로 지목돼 국민적 비난을 받았을 때 이 부회장이 전면에 나서 직접 육성사과를 한 적이 있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이건희 회장이 맡아온 삼성생명공익재단 이사장, 삼성문화재단 이사장직을 물려받았다.
한편, 이 부회장이 삼성전자 경영 전면에 나서기로 했지만, 그룹 경영권 승계를 공식화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그룹 고위 관계자는 "이번 등기이사 선임 안건은 그룹 회장직 승계와는 무관하다"면서 "연말 그룹 사장단 인사에서 이 부회장이 회장직으로 승진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그럼에도 이번 등기이사직 선임 결정에 따라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가 공식화됐다는 관측이 나온다.
2014년 5월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이건희 회장은 2년 넘게 병석에 있는 상태이며, 심폐 등 신체기능은 안정돼 있지만 여전히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삼성 안팎에서는 이재용 부회장이 대내외적으로 실질적인 리더 역할을 공식화할 시기가 됐다는 말이 나온다.
재계 일각에서는 갤럭시노트7 사태로 삼성전자가 초유의 위기에 직면하면서 이재용 부회장이 어쩔 수 없이 전면에 등장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된 게 아니냐는 해석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로 인해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승계 시기가 예상보다 앞당겨지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아울러 이번 등기이사직 선임 이후 이 부회장이 삼성 주요 계열사에 대해 대대적인 인적쇄신과 조직혁신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삼성전자는 올해 상반기 컬처혁신을 선포하며 실용주의적 조직문화를 이식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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