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의 주문 같은 마추픽추는 고대잉카 말로 늙은 산이다. 이 늙은 산 어깻죽지에 수 백년 인간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은 공중도시가 있었다.
마추픽추 공중도시 전경 사진에 단골로 등장하는 산은 후아이나픽추,젊은 산이다.
예일대 교수 하이럼 빙엄이 1911년 이 곳을 처음 발견했을 때 뜻밖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세금을 낼 형편이 못돼 숨어든 탈세자였다. 원주민이 대를 이어 살아온 것으로 착각해서 하늘을 날아갈 것 같았던 빙엄에게 이 탈세자가 내뱉은 한마디“, 세관에서 왔수?”
잉카 제국의 상징인 마추픽추 공중도시로 가는 길은 지구촌의 언어로 떠들썩했다. 6월6일 오전(현지시간)이 길은 스페인어에 영어, 중국어, 일어, 우리말까지 말의 향연이었다.
페루 수도 리마에서 비행기로 1시간20분 거리의 쿠스코에 도착하니해발 3,300m의 희박한 산소가 심장박동수를 올려놓는다. 잉카의 코리칸차 신전 위에 지은 산토 도밍고 성당과 잉카 최대 태양의 축제 인티 라이미가 열리는 삭사이와망, 고산지역에 들어선 염전 살리네라스, 모라이에있는 잉카의 농업시험장을 둘러 오얀타이탐보 기차역에 내렸다.
이곳에서 마추픽추의 관문인 아구아스 칼리엔테스까지는 잉카레일 완행열차로 1시간30분. 대구의 도시철도 3호선처럼 3량이 1편성인 잉카특급이다. 창문이 지붕에도 달렸다.
승객 모두 10대로 돌아간 듯 재잘거린다. 앞자리에 앉은 영국여성 사라는 승마협회 차원에서 답사를 왔단다. 간밤에 해발 4,800m 고지에서 말을 타고 텐트에서 잤단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텐트에 얼음이 붙어 있었다”는 사라에게 독도가 그려진 부채를 선물로 줬더니 입꼬리가 귀에 걸린다.
아구아스 칼리엔테스에는 ‘MachuPiccchu Pueblo’ (마추픽추 마을)라는 간판이 선명하다. 버스를 갈아타고 흙먼지 날리며 산을 오른다. 15분 정도왔으려나, 드디어 마추픽추 입구다.
거대한 잉카의 공중도시와 대면할 생각에 가슴이 뛴다. 해발 2,430m는더 이상 고산반응이 지배할 높이는 아니다. 5분 정도 산길을 걸어가니 마추픽추의 돌벽이 보인다. 카메라 셔터는 내 통제권 바깥에서 본능적으로 찰칵거린다.
수 백년 은둔해있던 이곳은 잉카제국 당시 모습 그대로 보존된 완벽한 공중도시였다. 태양을 묶어놓은 기둥인 티와타나는 지금도 옛날 모습 그대로였고, 그 아래는 방위를 나타내는 나침반 모양의 돌이 있었다. 스페인 침략자들은 잉카 도시를 침입하면 가장 먼저 인티와타나를 부쉈다. 마치 일제가 우리네 명산에 쇠못을 박아 정기를 차단하려 했던 것과 흡사하다. 인타와타나가 멀쩡하다는 것은 스페인 침략자들이 얼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공중도시의 옛 수로에는 여전히 물이 흐르고 있었다. 마추픽추에서 이어지는 수로도 선명했다. 식량만 있으면 지금도 거뜬히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콘도르 신전, 가옥, 채석장, 창고 등을 두루 갖춘 이곳에는 500여명이 거주한 것으로 추정된다.
경치에 취해 잠시 넋을 놓고 있을무렵 낙타과의 고산동물 야마가 관광객의 주전부리를 노리며 어슬렁거렸다. 운 좋으면 야마와 공중도시를 사진 한 컷에 담을 수 있으련만, 이 녀석들은 쉴 새 없이 돌아다닌다.
마추픽추는 안데스산맥과 아마존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잉카 제국이 한창 때였던 15세기 무역과 방어 등의 목적으로 건설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세 시간 정도 마추픽추의 감동을 온 몸으로 느끼고 돌아서는 길에 잉카제국 출입국관리사무소가 버티고있다. 여권에 마추픽추 문양과 날짜로 된 스탬프를 찍어야 하는 것이다.
이제 하산길이다. 버스로 내려가는 길목 곳곳에 걸어서 마추픽추를 오르내리는 트레일족들이 유난히 많다.
이들 중에는 쿠스코부터 내리 걸어오는 무리들도 있었다.
마추픽추 아래 마을 아구아스 칼리엔테스에서 페루 맥주로 목을 축였다. 다시 출발지였던 오얀타이탐보로 가는 야간 잉카레일은 축제의 도가니다. 들뜬 마음들은 출신 국가와 출신지를 연호하며 파도타기를 하기 시작했다. “캘리포니아” “파나마” “코레아” “콜롬비아” “타이완” “페루”까지 끝이 없다. 기차 좌석 바로 앞에 앉은파나마 소녀 토리와 노아도 온갖 재롱을 다 피우다‘ 잉카콜라’를 주지 않는다고 울상을 짓다 잠이 들었다. 코카콜라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노란색의 잉카콜라는 페루의 자존심이기도했다. 우리도 애국심에 호소했던 815콜라가 있었지만 수명은 짧았다. 오얀타이탐보 기차역에서 잉카콜라 두병을 사서 꼬맹이 손에 쥐어줬다. 잉카의 별이 안데스산맥 시골역에 무더기로 쏟아지고 있었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한 곳인 마추픽추는 잉카제국의 절정기인 15세기에 건설됐고 1983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연간 100만여명의 관광객이 찾는다는 이곳에서 나도 이날 잉카인이 됐다.
마추픽추의 추억에 푹 잠겨 있는데 난데없는 외신 하나가 머리를 어지럽힌다. 지난달 29일 독일 국적의올리버 파커(51)라는 여행객이 마추픽추 출입제한구역에 들어가 셀카를 찍으려다 90m 절벽 아래로 떨어져 숨졌다는 뉴스다. 절벽 위에서 허공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공중부양 사진을 찍으려고 뛰어올랐다 중심을 잃는 바람에 떨어졌다고 한다. 잉카가 그를 삼켰나보다.
jhj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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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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