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절을 계기로 대선의 막바지로 접어드는 민주•공화 양당 후보의 유세풍경이 대조적이다.
13일 필라델피아에서 힐러리 클린턴 지원유세를 시작하는 오바마 대통령은 10월 스케줄 대부분을 힐러리 응원에 할애할 예정이고, 조 바이든 부통령과 경선의 라이벌이었던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이미 지원사격을 시작했으며, 퍼스트레이디 미셸 오바마도 다음 주 출격한다.
당 차원의 총력전이 펼쳐지는 힐러리 진영과는 달리 도널드 트럼프의 필드엔 공화당 지도부의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트럼프의 독무대다. 유세지역의 의회선거 공화당 후보들조차 얼굴 비치지 않는 전쟁터에서 보스가 곳곳에 불붙여놓은 논란을 러닝메이트 마이크 펜스가 혼자 진화하느라 고군분투 중이다.
공화당의 자취가 보이지 않는 공화당 대선후보의 나홀로 캠페인 - 자당의 후보를 버리지도, 안지도 못하는 공화당의 ‘트럼프’ 고민을 단편적으로 드러내는 2016년 이상한 대선의 독특한 풍경이다.
공화당 주류의 트럼프 기피현상 이유는 단순하다 : 그가 득보다는 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끊임없는 막말논란으로 치달아온 그의 극단적 캠페인이 이미 공화당 브랜드에 지우기 힘든 흠집을 남겼을 뿐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더 큰 손상을 줄 것으로 우려하기 때문이다.
트럼프로 인해 공화당이 치러야할 대가를 ‘트럼프 택스’로 표현한 뉴욕타임스는 그 손상 정도를 온라인 조사기관 ‘유고브닷컴’의 조사결과를 인용해 보도했다. 2015년 가을부터 2016년 봄까지 대선승리 전망은 공화당의 우세였다. “양당 후보 중 누구를 찍을 것인가?”라는 지난 1월 조사에선 공화당이 46%, 민주당이 39%로 집계되었다. 그러나 트럼프와 힐러리 클린턴이 양당후보로 확정된 7월말엔 같은 질문에 민주당 44%, 공화당 36%로 뒤바뀌었다.
4년마다의 대선승리에 총력을 기울이는 양당은 후보지명에서 재앙이 우려되는 모험을 거의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구나 요즘처럼 표밭 자체가 양당으로 갈려 있는 시대엔, 후보개인이나 특정정책이 결과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믿어왔다. 그러나 드물긴 하지만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금년의 공화당은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흑인과 라티노 등 소수계 표밭에서의 형편없는 지지율만이 아니다. 국제사회와 이민을 백안시하며 백인 정체성의 ‘미국 우선’을 내세우는 거칠고 극단적인 트럼피즘은 전통적인 ‘공화당 연합’도 붕괴시키고 있다. 수십년 공화당을 지지해온 대학교육 받은 전문직, 고학력 백인 여성, 가톨릭 유권자들의 이탈현상이 드러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그 손상이 금년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는 ‘불길한’ 예감이다. 2004년 조지 부시가 거둔 라티노 표밭의 40% 지지는 2012년 미트 롬니때 27%로 줄어들었다. 금년엔 20% 미만으로 떨어질 전망인데 이 같은 이민 표밭의 민주당 절대지지는 앞으로도 깨뜨리기 힘든 습성이 될 것으로 공화전략가들은 우려한다.
이번 주 발표된 워싱턴포스트의 50개주 조사에서도 공화당이 우려하는 현상의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애리조나, 텍사스, 조지아는 공화당이 승리를 안심해온 주들이다. 그러나 이들 주는 지난 10여년간 인구분포가 가장 많이 변한 주들이기도 하다. 애리조나와 텍사스는 전국에서 라티노 인구가 가장 많은 4개주 안으로 진입했고 조지아의 라티노 인구도 급증세를 기록했다. 3개주가 공화당 성향에서 히스패닉이 스윙보터로 정착할 경합주로 바뀐다는 의미다.
우연일까, 어제 나온 두 개의 뉴스가 이를 뒷받침한다. 공화당의 텃밭인 남부 텍사스의 유력 일간지 댈러스 모닝뉴스가 75년 전통을 깨고 처음으로 민주당 후보를 공개 지지했다. “도널드 트럼프는 공화당이 아니다”란 제목의 사설에서 이 신문은 개인의 자유, 자유시장 경제, 강력한 국방으로 정의되는 공화당의 보수신념을 경멸해온 트럼프가 미래의 공화당을 상징해서는 안된다면서 “그는 대통령될 자격이 없으며 여러분의 표를 받을 가치가 없다”고 선언했다.
지난주 트럼프가 반이민공약을 발표한 애리조나에선 그의 핵심공약인 ‘국경장벽 설치’와 ‘불법이민 추방’에 대해 압도적으로 반대를 표하는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되었다. 가장 강력한 반이민법안을 시행했던 애리조나의 분위기가 이민인구 증가와 함께 변하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를 지지할까, 말까는 지도부와 의회선거 공화후보들만의 고민이 아니다. 도저히 트럼프를 지지하기 힘든 공화당 유권자들에게도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 기권할까? 힐러리를 찍을까? 지지할 수는 없어도 공화당 후보이니 트럼프를 찍어야 할까?
사분오열된 공화당이지만 아무도 기권을 권하지는 않는다. 트럼프 패배는 공화당의 ‘불운’에 그치겠지만 그의 승리는 공화당의 ‘재앙’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는 반트럼프파는 “트럼프를 보수의 얼굴, 공화당의 정체성으로 만들 수는 없다”면서 트럼프를 확실히 낙선시키기 위해 힐러리를 찍으라고 촉구한다.
힐러리 승리의 결과를 경고하는 보이스도 만만치 않다 : “4년의 민주당 통치에 그치는 게 아니다. 작은 정부, 개인의 책임, 기독교에 뿌리내린 가치관 등 보수의 신념을 하나씩하나씩 무효화 시켜갈 앞으로 40년의 리버럴 대법원을 각오해야 한다.”
“내 평생 이렇게 힘든 선거는 처음”이라는 공화당 유권자들의 푸념은 충분히 이해받을 만하다. 선거는 이제 60일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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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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