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數値)에 덤덤한 편이어서 각종 통계나 역사적 사건의 연도를 줄줄이 대는 수치에 밝은 분들을 보면 은근 부러움을 느끼고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러나 숫자에 대한 민감성 여부를 불문하고 최저임금(minimum wage)에 대하여는 의외로 무심한 분들이 적지 않다.
최저임금을 그저 경제나 노동 관련된 용어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최저임금은 건강한 사회를 지향하는 시민이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필수 상식이며, 함께 고민하고 성찰해야 할 사회적 과제이다. 또한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꿈꾸는 종교인이라면 늘 관심을 두어야 할 개념이다. 최저임금은 사회, 경제, 노동 개념 뿐 아니라 종교성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다함께 잘 사는 행복하고 평화로운 사회는 아마 인류 모두의 꿈일 것이다. 고대 동양과 서양의 역사를 보거나 성현들의 가르침이 그렇다. 종교 역시 종교마다 용어와 말하는 형식은 달라도 그 근본 내용은 서로 평등을 확인하고, 서로의 자유와 존엄성을 존중하고, 서로 사랑과 자비를 실천하고, 함께 재화와 권력을 골고루 나누며 살고, 인륜이 지켜지고 진리가 실천되는 그런 이상 사회의 추구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이상 사회의 실현은 커녕 오히려 경제적 양극화, 부의 독점, 과도한 임금의 격차, 왜곡된 부와 분배구조 등으로 사회 경제적 모순과 갈등이 심각해지고 있다. 하루 종일 일하고도 최소한의 품위를 유지하며 살기 힘든 사회라면 제대로 된 사회가 아니다. 무언가 잘못된 것이다.
현재 몇몇 나라들의 시급(時給) 별 최저임금을 보면 한국은 6,030원($5.39), 미국은 연방정부에서 규정한 $7.25에도 못 미치는 $5.15(GA)가 있는가 하면 대략 $.8.75(MD)에서 많게는 $10(CA)이며, 일본은 평균 823엔($8.03) 정도인데 도쿄는 932엔($9.09)이다.
영국은 국가로서는 처음으로 지난 4월부터 생활임금(National Living Wage)을 도입했다. 이에 따라 영국은 시급 7.2파운드($9.43, 약 1만2000원)를 생활임금으로 받으며, 2020년에는 시간당 9파운드($11.2)를 받게 된다고 한다. 생활임금이란 물가 등을 고려해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품위를 유지할 수 있는’ 임금 개념이다. 최저 생계비를 의미하는 최저임금보다 대개 더 높은 수준에서 책정된다. 앞으로 최저임금 보다는 생활임금으로 임금체계가 바뀌면 좋을듯 싶다. 사실 생활임금은 1994년 미국 볼티모어 시에서 처음 도입됐으며, 한국에서는 2013년 서울 노원구를 시작으로 도입되어 현재 약 50여개 지자체가 생활임금제를 시행하고 있다.
물론 최저임금(혹은 생활임금)을 무조건 많이 올린다고 능사는 아닐 것이다. 경제학자들 마다 견해가 다르지만 최저임금 상승은 자영업자나 소상공인들의 기업 활동에 부담을 줄 수 있을 것이며, 다른 한편 노동자의 소득 증가와 이로 인한 노동자의 생활수준의 상승은 사회의 경제적 활력을 높이는 요인도 될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 사회가 최저임금(생활임금)의 꾸준한 현실화를 통하여 날로 심화되는 경제 양극화와 소득 불균형을 완화시키고, 사회 전체가 골고루 함께 살아가는 대동(大同)사회를 위한 노력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적절한 최저임금은 건강한 사회와 행복한 사회의 전제조건이다. 최저임금 조정이 대통령 선거보다 주목을 받아야 한다. 최저임금(생활임금)에 대한 무관심은 신성한 노동에 대한 무관심이다. 적절한 최저임금은 노동에 대한 최소한의 보람이며, 노동자의 삶이고, 가정의 행복이며, 우리 사회의 삶의 질이다. 동시에 생활임금을 통하여 최소한의 품위를 유지하며 삶의 질이 향상된 노동자는 곧 기업의 동력이며 노동자의 가정은 기업의 고객이며 미래이다.
다함께 살아가는 아름다운 세상과 일용할 양식에 대하여 기도하면서, 정작 세상의 최저임금에 대하여 무관심하다면 바른 기도가 아닐 것이다. 적절한 최저임금의 보장 없이는 아름다운 세상이 올 수 없다. 적절한 생활임금(최저임금)은 사회적 양극화를 완화하고 무너지는 노동자의 권리와 삶의 질, 가정의 행복을 지켜내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이며, 거시적으로 사회 전체를 살리는 길이다. 최저임금은 노동자와 기업주는 물론 세상의 모든 이들과 신앙인들이 함께 만들어내는 우리 사회의 “노동의 신성함에 대한 고백이며 노동자에 대한 최소한의 감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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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석 성공회 워싱턴한인교회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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