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바마·아베, 中 견제 세 결집 노력…리커창, 최대 교역국 지위 활용 방어
▶ 필리핀, 美와 인권 갈등에 욕설까지…남중국해 맹방에 ‘찬바람’, 美 안보구도 ‘흔들’
라오스를 방문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EPA=연합뉴스]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우군으로 삼으려는 미국과 중국, 일본 등 강대국의 외교전이 라오스를 무대로 달아오르고 있다.
군사·경제적 패권을 확장하려는 중국과 이를 저지하려는 미국과 일본의 대결 구도다.
중국 입장에서 동남아는 신경제구상인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해상 실크로드)의 주요 협력 대상 지역이다.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은 작년 말에 인구 세계 3위, 경제 규모 세계 7위의 경제공동체(AEC) 출범을 선언한 이후 주요 투자·내수시장으로 떠올랐다.
중국과 아세안 사이에는 연간 해상물동량이 5조 달러(5천519조 원)에 이르는 남중국해가 있다. 석유와 가스 등 천연자원이 매장돼 있다. 베트남과 필리핀 등이 중국과 영유권을 다투는 주요 어장이기도 하다.
6일부터 사흘간 열리는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관련 정상회의에서는 이런 전략적 요충지를 품으려는 주요국의 발걸음이 바쁘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중국 항저우(杭州)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끝난 직후 라오스를 찾았다. 미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첫 라오스 방문이다.
라오스는 베트남전의 상흔을 안고 있다. 베트남전쟁 당시 미군이 베트남과 이웃한 라오스를 베트콩의 주요 군사 물자 공급로로 판단하고 200만t의 폭탄을 투하했다. 현재 8천만 발가량의 불발탄이 남았지만 1% 정도만 제거됐다.
오바마 대통령은 라오스와 3년간 벌일 불발탄 제거 공동작업에 9천만 달러(약 995억 원)를 내놓겠다고 약속하며 친중국 국가로 분류되는 라오스와 적극적인 관계 개선에 나섰다.
올해 아세안 의장국인 라오스는 그동안 미국과 중국이 첨예하게 맞선 남중국해 영유권 사태에 대해 캄보디아와 함께 중국의 편을 들어왔다.
오바마 대통령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함께 항저우 G20 정상회의에 이어 중국에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판결 이행을 압박하는 동시에 아세안 국가들에 경제·방위 지원을 약속하며 지지세력으로 끌어들이는 데 공을 들일 것으로 보인다.
PCA는 지난 7월 남중국해 대부분에 대한 중국의 영유권 주장이 법적 근거가 없다며 필리핀의 손을 들어줬다.
일본은 작년 11월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아세안 정상회의 때 아시아개발은행(ADB)과 함께 18조 원이 넘는 아시아 사회기반시설 개발 지원 보따리를 풀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AP=연합뉴스]
반면 중국은 아세안과 대화 관계구축 25주년을 맞은 올해를 양측 관계의 새로운 도약 기회로 삼는다는 구상을 하고 있다.
중국은 아세안의 최대 교역 상대방이다. 아세안은 중국의 3위 교역 상대국으로 서로 경제 의존도가 높다.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는 경제 협력을 통한 동반 성장을 내세울 계획이다.
그 일환으로 리 총리는 오는 11∼14일 중국 난닝(南寧)에서 열리는 중·아세안 엑스포와 비즈니스투자 정상회의에 아세안 정상들을 초청했다.
리커창 중국 총리[AP=연합뉴스]
줄곧 아세안 정상회의의 핵심 의제로 다뤄진 남중국해 영유권 사태의 갈등 구조가 올해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두테르테 변수'가 등장한 것이다.
그동안 중국에 공격적인 태도를 취한 필리핀이 지난 6월 말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의 취임과 함께 입장을 바꿨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미국, 일본과 연대해 반중국 노선을 걸은 베니그노 아키노 전 대통령과 달리 중국과의 양자 대화로 문제를 풀겠다며 중국에 화해의 손짓을 보냈다. 분쟁 당사국 간 해결 원칙을 내세운 중국 입장에 동조한 셈이다.
지루한 대립보다 남중국해 자원과 어장의 공동 개발 등 실리 확보가 중요하다는 것이 두테르테 대통령의 생각이지만 미국과 일본으로서는 아세안 내 반중국 핵심 우군이 떨어져 나가는 상황이 벌어졌다.
두테르테 대통령이 아세안 정상회의에서 PCA 판결을 거론하지 않겠다고 밝혀 중국에 대한 비판 수위를 둘러싼 아세안 회원국 간 갈등도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특히 두테르테 대통령의 막말로 미국과 필리핀의 외교 관계에 찬바람이 불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필리핀의 '마약과의 유혈전쟁'과 관련, 인권 침해 우려를 제기할 것으로 알려지자 두테르테 대통령이 '개XX'라는 욕을 섞어가며 필리핀 내정에 간섭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러자 오바마 대통령은 라오스에서 예정된 두테르테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취소하며 심한 불쾌감을 표시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당초 두테르테 대통령과 PCA 판결 이후 남중국해 대응책과 방위 협력 방안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런 기회가 사라졌다.
미국의 중국 포위 전략에도 차질이 예상된다.
미국과 필리핀 정부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2014년 미국에 필리핀 군사기지 접근과 이용을 허용하고 미군 배치지역에 별도 시설물을 설치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내용의 방위협력확대협정(EDCA)을 맺었다.
이 협정에 근거해 필리핀은 미군에 5개 군사기지를 제공, 24년 만의 미군 재주둔을 허용하기로 했지만 중국에 대한 두테르테 대통령의 유화적인 태도로 실효성이 있을지 불투명하다.
두테르테 대통령이 최근 "중국은 우리를 적이 아닌 형제로 대해달라"고 말한 것과 달리 오바마 대통령에게는 욕설까지 하면서 미국과 필리핀의 관계에 균열이 생기고 중국이 그 덕을 볼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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