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등학교 재학 중이던 1974년에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낯설은 미국에 와서 겪은 문화 충격은 여러가지였다. 그 중 하나가 고국 한국의 위상이었다.
나는 당시 한국이 강대국은 아니지만 문화나 국민성 등 여러가지 면으로 우수한 나라라고 생각했다. 땅도 작고 천연자원도 풍부하지 않지만 높은 교육을 통한 훌륭한 인적자원을 소지했고,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경제 부흥도 이루고 있는, 세계가 주목하는 나라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러한 나의 생각이 환상에 불과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기까지는 그렇게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학교에 가보니 미국 학생들이 한국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그저 내 겉모습을 보고 아시아 어디엔가 있을텐데 하고 짐작할 뿐이었다. 중국과 일본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고 설명을 해줘야 고개를 끄덕거리는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전쟁이 일어났던 나라라는 것 외에는 학생들이 아는 것도, 관심을 가지는 것도 없었다. 특히 당시 방영되던 ‘매쉬’라는 텔레비전 연속극에 보여지는 한국의 모습은 나의 자존심을 짓눌러 놓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오늘의 한국은 어떤가? 40년 전 한국산 제품이라면 가장 싼 물건으로 알려졌었는데 이제는 삼성, LG 제품이라면 최고라 여겨지지 않는가? GDP 액수로 세계 11위이며 미국과의 교역 규모는 6위이다. 올림픽에서 10위 내의 성적을 거두고, 한류의 물결은 동남아시아뿐 아니라 미국에까지도 다다라 몇년전 가수 싸이의 노래 ‘강남스타일’이 유행할 때 고등학교 풋볼 시합에서 곧잘 장내 스피커를 통해 울려지곤 했다. 싸구려 차로 알려졌던 포니를 생산했던 현대 차들은 품질 면에서 일본차들에 비해 손색이 없다. 국민 소득도 높고 올림픽과 월드컵도 주최했다. 또한 정치적 민주화도 이루어 냈고 인권 부분에서도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였다.
미국 내에서도 한인들은 근면하고 교육을 중시하는 모범 이민자 그룹으로 여겨진다. 범죄율도 낮고, 소규모 사업이나마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자녀들은 학교에서 공부도 잘 하고 좋은 직장도 잡아 잘 살아간다고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미국 내에서 한국의 위상은 한국의 발전에 비해 아직 충분히 올라가지 못한 것 같다. 그것은 공립학교 교과과정 중 한국에 대해 가르치고 있는 부분이 극히 적다는 사실에서 쉽게 알 수 있다. 얼마 전 한인학생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눌 때 받은 질문 중에도 그런 부분이 있었다. 그 학생들에게는 학교에서 배우는 세계사 시간에서 한국역사에 할애되는 부분이 너무 미흡하게 느껴졌다. 유태인들의 홀로코스트는 크게 취급되고 수업시간도 많이 배정되는데 왜 일제시제 때의 정신대 문제는 거론되지 않느냐는 질문을 했다.
이에 대해 미국에서 보는 한국의 위상이 한인들이 보는 것과 다르다. 중국, 일본과 견주어 볼 때 더욱 그렇다. 세계사 수업이 일 년에 180일이라고 할 때 과연 한국에 배당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되겠는가. 기껏해야 한 두시간의 수업일 것이다. 그럴 때 오천년 한국역사에서 어느 부분을 다루게 될까. 아마 정신대 문제를 포함할 여유가 없을 것이다. 반면 미국 내에서 유태인들이 갖고 있는 영향력이란 정치, 경제를 위시해 어느 부문에서라도 무시할 수 없다. 홀로코스트 자체의 참혹상이 정신대 보다 크기도 하지만, 유태인들의 영향력이 세계사 교과과정 편성에 상대적으로 훨씬 큰 영향을 줄 수 밖에 없다. 이렇게 설명해 나가는 나의 마음도 내 설명을 듣는 학생들 이상 무거웠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지난 수요일에 페어팩스 카운티 공립학교 사회과목 교사들을 대상으로 하는 워크샵에서 한국역사와 한미관계에 관해 개발한 수업 교재를 소개해 준 여러 분들께 감사드린다. 그 가운데에는 조지 워싱턴 대학에서 은퇴하신 김영기 교수, 멀리 스탠포드 대학에서 와 준 세키구치 씨, 메릴랜드주 초등학교에서 은퇴한 이광자 교장, 윤광석 박사 그리고 주미한국대사관 담당자들이 있다. 앞으로도 계속 이러한 워크샵 등에서 교사들에게 정보 전달과 대화를 통해 한국 역사 배움의 중요성을 널리 알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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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일룡 변호사 페어팩스 카운티 교육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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