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아메리카를 답사하는 동안내 화두는 크리스토퍼 컬럼버스였다.
‘신대륙을 발견한 이탈리아 탐험가’라는 것이 그에 대한 짧막한 정의지만, 탐험의 탈을 쓴 침략을 평이하게만 서술하고 있는 온갖 역사서와 인물평에는 그저 기가 막힐 뿐이었다.
라틴아메리카노의 생각이 궁금했다. 해양지도 제작업자였던 컬럼버스는 1492년 신대륙을 발견했다. 그해 10월12일 컬럼버스는 항해 도중 처음 만난 섬을 산살바도르, 즉 구원자라고 이름 붙일 정도로 신이 났지만 그 후 100년 내 3,000여만명으로 추정되는 중남미 원주민의 90%가 침략자들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스페인왕실은 땅을 소유하고, 컬럼버스는 총독의 권리를 세습하며 교역 이익의 10%를 갖는다’는 산타페 협정이 신대륙 학살을 부른 최초의 계약서다.
그 후 침략의 군화발 소리는 중남미 전역에서 울리게 된다. 쿠바 초대총독 벨라스케스는 코르테스에게 멕시코 정복을 명령했고, 코르테스는 유카탄반도에 상륙해 목테수마 황제를 포로로 잡고 1521년 마침내 아즈텍제국을 무너뜨린다. 그 곳에 새로 재건한 수도가 바로 멕시코다. 피사로, 알마그로, 멘도사로 이어지는 정복자들은 차례로 잉카와 남미를 손아귀에 넣는다.
라틴아메리카의 역사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구대륙이 신대륙을 침탈한 피비린내가 진동한다. 이들이 400년 안팎으로 라틴아메리카를 착취하는동안 원주민은 물론 흑인 노예와 중국인까지 강제노동과 기아에 시달려야 했다.
“원주민은 우리와 같은 인간이 아니다”라는 말은 스페인 군인의 입에서 나온 말이 아니다. 바로 군대를 따라 교세를 넓히려고 들어온 가톨릭 신부의 말이다. 그렇게라도 믿어야 양심의 가책을 덜 받는지 모르겠지만 세상이 미쳐 날뛰던 시절이었다.
지난 6월11일 아즈텍문명의 중심인 멕시코시티에서 공교롭게도 가장 먼저 찾은 곳은 과달루페 성당이었다. 가톨릭에서는 성모 마리아가 사람들 가운데 나타났다고 믿는 3대 성모발현지가 있다. 그 중 1531년 갈색 피부에 아즈텍 여성의 모습으로 발현한 곳이 바로 이곳이다. 성모 마리아의 뜻대로 이곳에는 성당이 건립됐다.
이날 오전 과달루페 성당 안팎에서는 미사가 거행되고 있었다. 첫 영성체를 모시는 어린이들이 부모 손을 잡고 길다랗게 줄을 서 있었고, 성당바깥 야외에도 별도의 미사가 열리고 있었다. 이곳에는 평일에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30분 단위로 미사가 열린다고 했다.
냉담자로 분류되는 나에게도 이날 성당의 경건한, 그리고 밝은 모습은 고무적이었다.‘ 다시 성당 다녀볼까’라는 생각이 살짝 스칠 정도로 가톨릭 글로벌 공동체의 연대감이 부러웠다. 비록 무신론으로 전향했지만 유아 영세에 견진성사까지 받은 내가 가톨릭에 우호적인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양가 집안이 가톨릭이다보니 성당에서 혼배미사까지 했다. 무신론이면서 혼인성사를 하기는 쉽지 않았다. 집안의 강요에 떠밀려 성당에서결혼식을 한다고는 했으나 10여 년발길을 끊은 가톨릭과 화해는 말처럼 쉽지 않았다.
고백성사부터 해야 했다. 고백소에서 죄를 나열하다가 “교리 중 아직도 믿기 힘든 것이 있다”는 쓸데없는 고백을 했다. 신부가 “뭐냐”고 물었고, 난“ 성모마리아가 왜 동정녀여야되냐”고 본의아니게 직격탄을 날려버렸다.
난 그 길로 사제방으로 끌려가 1시간 동안 “당신은 결혼하기 위해 성당을 이용하는 사람”이라는 질타를 받고 “길 잃은 양 한 마리를 성당으로 인도해야 당신의 죄가 사해질 것”이라는 보석을 받고 풀려났다. 내가 나도 성당으로 인도하지 못하는데, 감히 타인을 어떻게 모셔 가겠는가. 내죄는 아직 그대로다.
과달루페 성모발현 후 아즈텍인들은 대부분 가톨릭으로 개종했고, 현재의 멕시코는 인구 1억 2,000여만명중 1억의 신도를 갖고 있는 가톨릭국가이기도 하다. 머리가 혼란하다. 원주민과 그들의 신앙을 몰살시키는데 정신적 지주가 됐던 가톨릭은 이들에게 무엇인가.
가톨릭을 떠나 원주민의 세계로 들어간다. 멕시코시티 북동쪽 52㎞, 해발 2,300m 지점에는 기원전 2세기에짓기 시작, 기원후 4∼7세기에 전성기를 맞은 고대도시 테오티우아칸이 있었다. 이 곳에는 높이 66m ‘해의 피라미드’와 46m ‘달의 피라미드’가 인신공양의 전설을 간직하고 있었다.
기념품 가게와 잡상인을 뒤로 하고 피라미드 계단을 오른다. 전 세계사람들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피라미드를 오르는 광경은 장관이다. 꼭대기 오르니 벌써 한 무리의 사람들이 한 사람을 꿇어 앉히고 옛날 인신공양하던 광경을 연출하며 즐거워하고 있다. 실제로 사람의 심장과 피를 바쳤다고 생각하니 머리털이 곤두 선다.
화두를 놓아버릴 때가 됐다. 고대 도시를 뒤로 하고 멕시코를 떠나면서 현지인들에게 물어봤다. 콜럼버스를 어떻게 생각하냐고. 콜럼버스에 대한 일말의 반감을 기대했던 나는 그들의 포용성에 다시 한 번 놀랐다. 백인, 흑인, 메스티조, 물라토, 원주민 가릴 것 없이 멕시코인들은 역사 속 그누군가의 후손이었고, 그들을 배척할 경우 자신의 정체성도 부정하게 되는것이다. 이는 페루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페루의 백인들마저 자신들을 잉카의 후예라고 믿고 있었다.
그랬다. 라틴아메리카는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용광로였다. 신대륙 발견을 계기로 인종과 언어, 종교, 문화가 모두 섞이면서 새로운 문명권으로 태어난 곳이었다. 나는 여전히 콜럼버스의 만행을 용서할 수 없었지만 갈등과 화해 속에 미래를 준비하는 라틴아메리카를 존중하는 데는 인색하지 않기로 했다.
jhj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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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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