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회원으로 있는 애난데일 로타리 클럽은 매년 인근의 애난데일, 폴스처치, 그리고 웃슨 고등학교 졸업생들 중 몇 명을 선정해 대학 학비 보조 장학금을 수여해 오고 있다. 나는 여러해 동안 장학금 수여자 선정 과정에 참여해 왔다. 그럴 때마다 우리 주위에 학비 문제로 대학 진학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이 상당히 많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신청자가 제출한 에세이나 인터뷰를 통해 접하게 되는 학생들의 어려운 사정은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할 때가 많다. 충분한 능력을 소지하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꿈을 제대로 펼 수 있는 길로 바로 나가지 못하는 어린 학생들의 마음을 내가 제대로 이해한다고 자신할 수도 없다. 인터뷰 중 눈물을 글썽이는 학생들을 대할 때 나의 고개도 숙여지고 손은 주머니의 손수건을 찾는다.
올해 장학금 수여자 중 어떤 학생의 의연한 모습이 대견스러웠다. 한인 학생이었는데 성적이 아주 우수했다. 미국에 온 지 오래되지 않았는데도 영어를 잘 했고 인터뷰 질문에 대한 대답에는 진솔함이 드러났다. 여러 4년제 대학에서 합격 통지서를 받았다고 했다. 제법 많은 액수의 장학금을 제공하는 대학들도 있었다. 그러나 인근의 2년제 커뮤니티 칼리지에 진학하겠다고 했다. 의아스러웠다.
그 학생의 말에 의하면 자신은 다른 대학으로 진학할 재정 형편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합격한 대학들이 제공하는 장학금으로도 부족하다고 했다. 그래서 현재 자신이 처한 체류 신분이 조금 더 나아질 때를 기다리겠다고 했다. 이 학생은 불체자는 아니었는데 다른 신분으로 변경되는 과정에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신분 변경이 되면 자기가 진짜 원하는 대학에서 더욱 많은 장학금을 받을 수 있도록 시도하겠다고 했다. 그 때까지는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열심히 공부해 최고 성적을 유지하겠단다. 열여덟살 학생에게는 찾아 보기 힘든 어른스러움이었다. 그런 태도가 고마왔다.
사실 장학금 신청 심사과정 중에 불체자 학생들도 제법 많이 만났다. 그리고 그런 학생들 수가 막연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음을 느꼈다. 그 학생들도 모두 나름대로의 꿈이 있음을 들었다. 미국에 온 것이나 불법체류 신분을 가지게 된 것은 결코 그 학생들의 선택이나 결정은 아니었다. 부모들이나 아니면 주위 환경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그러나 불체자 신분이 얼마나 그들의 장래를 가로 막고 일상 생활에 불안감을 조성하고 있는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들 중 2012년에 오바마 대통령이 행정명령으로 내린 불체자 청소년 추방유예조치 (DACA: Deferred Action for Childhood Arrivals)로 인해 잠정적으로나마 추방유예조치 대상인 학생들은 이번 11월 대통령 선거의 귀추를 놓고 마음을 졸이고 있다. 그것은 이러한 학생들 뿐 아니라 얼마 전 텍사스 주 정부의 소송으로 인해 시행이 중지된 DAPA (Deferred Action for Parents of Americans and Lawful Permanent Residents) 행정명령의 혜택을 받았던 부모들도 마찬가지이다. 이 행정명령들을 취소할 수 있고 이러한 행정명령들의 위헌성에 대해 최종 판결을 내리게 될 연방대법원 판사 임명 추천권을 가지고 있는 대통령에 누가 선출될 것인가는 이들 모두에게 초미의 관심이 될 수 밖에 없다.
현재 4백만 명에 가까운 숫자의 청소년들과 부모들이 DACA나 DAPA의 혜택 대상으로 예측하고 있다. 만약에 대통령 행정명령들이 취소되거나 위헌으로 판정되어 이 청소년들과 부모들이 실제적으로 추방되거나 추방의 두려움과 불법체류 신분이 가져다 주는 여러 어려움을 그대로 감수하며 매일을 살아야 한다면 너무 잔인하지 않나 생각된다.
장학금 신청 인터뷰 때 자신들의 힘든 처지를 설명하던 어린 학생들의 얼굴들이 눈앞에 아른 거린다. 그들에게도 어느 보통 가정의 자녀들과 마찬가지로 꿈을 펼칠 수 있는 기회가 공평하게 주어져야 한다고 믿는다. 그런 기회가 만약 그들에게서 사라져 버린다면 그래도 나와 아무 상관 없다고 아무렇지 않은 듯 지낼 수는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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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일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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