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암 박지원(朴趾源) 선생이 쓴 허생전(許生傳)은 등잔불 밑에서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읽어야 제 맛이 난다고 했다. 허구한 날 책이나 읽고 앉았던 남산골 샌님 허생이 돈벌어 오라는 마누라 바가지에 못 이겨 세상에 나온다는 서두부터가 이조 사회의 꼬릿끼리한 냄새를 물씬 풍기기 때문이다.
집에서 나온 허생은 그 길로 장안의 부자가 누구냐고 물어 생전초면의 변 부자를 찾아가서 돈 만냥을 빌리고, 매점매석으로 돈을 모은 다음 전국의 도둑들을 모아 무인도에 가서 농사를 짓게 하여 그 곡식을 마침 흉년이 든 일본 어느 지방으로 가서 팔아 돈 백만 냥을 벌었다. 그 많은 돈이 좁은 땅 조선으로 갑자기 들어가면 무슨 화(禍)가 생길 지 모른다고 오십만 냥을 바닷속에 처넣고 나머지 50만 냥 중 10만 냥은 변 부자에게 갚고 나머지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다.
허생전의 「피크」는 아무래도 허생이 이완(李浣)대장과 만나는 장면이다. 당시 임금 효종은 병자호란 때 아버지 인조가 당한 치욕을 갚기 위해서 「북벌(北伐)」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이 엄청난 사역을 감당할 인재를 온 나라에서 찾고 있었던 것이다.
효종이 신임하던 어영대장 이완은 허생의 기행(奇行)을 변 부자에게서 듣고 남산골 허생의 집을 찾았다. 「나라에서 지금 어진 이를 구하고 있습니다」하고 추천할 뜻을 전하자 허생은 먼저 세 가지 질문을 이완에게 던진다. 첫 째, 「내가 와룡(臥龍)선생을 천거할 테니 임금으로 하여금 삼고초려(三顧草廬)의 예를 행하게 할 수 있는가?」 삼국지에서 유비가 제갈공명을 세 번이나 찾아가서 극진한 모셔간 고사(故事) 대로 임금님도 어디 인재가 있다고 들으면 그렇게 찾아가서 겸손히 초빙할 수 있냐고 묻는 것이다. 지존(至尊)의 왕이 초야의 아무개를 찾아 가서, 그것도 몇 번 헛걸음 끝에 겨우 만나서 예의를 갖추고 모셔온다? 이완은 고개를 흔들었다. 국가제도가 그것을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다면,」 허생이 두 번 째 질문을 던진다. 「明 나라가 망하자 明의 많은 수재(秀才)들이 조선으로 도망 와서 지금 외롭고 궁핍하게 살고 있는데, 권신(權臣)들이 재산을 털어서 그 사람들을 돌보고 종실의 딸들을 그 사람들에게 시집보내서 내 나라 내 백성으로 만들 수 있는가?」 아니, 지금 어느 대감 나으리께서 자기 재산을 털어서 그런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겠으며 왕실의 어느 어른이 오갈 데 없는 「되놈」에게 딸을 주겠는가? 이완은 한참이나 머리를 숙여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것도 어려운 일입니다.」 상식이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
허생은 세번 째 질문을 던졌다. 싸우려면 먼저 적을 알아야한다. 그렇다면, 우리 나라 사대부(士大夫) 자제들 중에 똑똑한 자들을 뽑아서 머리를 깎고 되놈의 옷을 입혀서 청(淸)에 들여보내서 공부도 시키고 벼슬도 살게 할 수 있는가? 또 선비들에게 생산기술을 가르쳐 공업을 진흥시킬 수 있는가? 백성들을 장사꾼으로 만들어 중국 강남 끝까지 보낼 정도로 교역을 장려할 수 있는가? 그렇게 교류가 되면 중국의 많은 호걸들을 우리편으로 사귈 수 있고 또 적의 허실을 탐지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건 완전히 사고(思考)의 혁명적 변화이다. 이완이 멍하니 앉아 있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어느 사대부가 자식의 머리 깎고 호복을 입혀 만리타향에 보내겠습니까? 어느 선비가 천한 기술을 배우겠습니까?」 이 말에 허생의 대갈일성(大喝一聲)이 터졌다. 「이것도 어렵다 저것도 어렵다면 할 수 있는 일이 도대체 무엇인가? 지금 삼전도(三田渡)의 치욕을 갚는다고 북벌을 준비하면서 그까짓 체면을 아껴? 에라 이 한심한 것들! 북벌이고 나발이고 다 때려치워라!」
연암 선생이 허생전에서 풍자한 것은 말로만 떠들면서도 실상은 구태의연(舊態依然)한 당시 엘리트들의 작태였다. 북벌은 바로 세계 초강국 청(淸)과 일전(一戰)을 벌이겠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막대한 전쟁비용을 감당할 경제력, 전쟁이라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견딜 국민의 총체적인 의지, 그리고 목숨을 내 던지겠다는 국민적 각오가 따라야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조 효종실록 어디를 봐도 임금 자신이 와신상담(臥薪嘗膽), 그야말로 장작더미 위에서 잠을 자고, 쓸개를 씹어서 각오를 새롭게 했다는 기록이 없다. 당시 집권 엘리트들 어느 누구도 자기 재산을 헌납하여 군비에 보탰다는 기록 역시 없다. 애꿎은 서민들로부터만 세금만 거두고 노역만 착취하였을 뿐이었다.
국가나, 기업이나, 언젠가는 스스로의 존망(存亡)과 사활(死活)을 걸고 도전하고 해결 해야 할 문제가 있다. 그런 경우, 문제를 자기 손해가 없는 한도에 내에서, 자기 기득권이 지켜지는 그 테두리 안에서만 해결하겠다면 이미 그 결과는 보나마나 이미 뻔한 것이다.
이완 대장이 허생의 호통에 부끄럽게 물러나온 다음 이틑날 허생을 다시 찾아 왔으나 집은 비어 있었고 허생은 간 곳이 없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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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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