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를 떠나 하룻밤을 바다 위에서 보내고 이튿날 깨어보니 배는 벌써 에스토니아라는 나라에 와있었다. 이 에스토니아라는 나라는 작아도 아름답기로 소문이 난 나라여서 마음이 설렜다.
우리는 에스토니아의 수도인 타알린이라는 곳에 도착했다. 타알린은 이 나라의 수도인데 인구는 약 43만명이며 수백년간을 러시아의 속국으로 지배 받아 오다가 1991년에 독립을 했다고 한다. 그날도 날씨는 비가 오락가락하고 제법 한기가 드는 날이었다. 시내까지 버스를 타고 가서 그곳에서 마치 옛날 인력거 같은 모터가 달린 자전거를 일행 일곱명이 자전거 세대로 나누어 타고 시내 구경에 나섰다.
우리 부부가 탄 자전거는 운전자가 여자여서 특이했다. 금발의 그녀는 나이가 삼십대 중반으로 보이는데 날씬하고 제법 얼굴도 반반했다. 북구에 와보니까 늘씬한 금발의 미녀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그녀는 비가 오는데도 모자도 쓰지 않고 비를 맞으며 관광 안내를 했다. 내가 너는 춥지도 않느냐 하고 물어보니까 이 정도면 날씨가 좋은 것이라고 태연히 응답했다.
그녀는 약 8년을 미국에서도 산 적이 있노라고 말했다. 알고 보니 캘리포니아 라파엣에 살았다고 해서 우리가 사는 곳이 바로 그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는 곳이라고 말해주니 그녀도 반가워했다.
미국에서 사는 동안 남자 친구도 있었는데 그 사이에서 난 아들 한명을 자신이 키우고 있노라고 묻지도 않은 말을 해서 나를 약간 놀라게 했다. 내가 왜 미국을 떠났느냐고 물으니까 고향이 그립고 가족들이 그리워 돌아왔다면서 이제는 에스토니아도 살만하고 점점 살기가 나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나는 그녀의 마음을 이해했다. 아무리 좋은 곳에 살아도 고향이 더 좋고 가족이 그리운 것은 어느 나라 사람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또 자신의 나라가 더 이상 러시아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고 자랑스레 말하는 것이었다.
유럽을 다녀보면 도시마다 스퀘어라는 곳이 있는데 말하자면 큰 광장이다. 이태리 베니스에 있는 산마르코 광장이나 독일, 프랑스, 스페인도 도시마다 큰 광장이 있어서 옛날 시민들이 무슨 행사가 있을 때마다 그곳을 이용했다고 한다. 어느때는 사람을 처형하는 무시무시한 사형장의 역할도 했다고 한다.
골목길은 모두 작은 돌로 만들어졌는데 그 돌들이 천여년의 세월을 견뎠다는 것이 기적으로 여겨진다. 어느 고성은 예수님이 태어나시기도 전에 만들어졌다니 놀라울 뿐이다. 스퀘어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타운홀은 그 크기가 어마어마했는데 그 벽의 두께가 4미터가 넘는다고 해서 입이 딱 벌어졌다.
그곳은 또 에스토니아인이 수백명이 숨어있을 때 러시아군들이 그들을 잡아서 시베리아 한가운데에 갔다가 버리고 온 적도 있다고 한다. 마치 스탈린이 옛날 우리 동포들을 무더기로 기차에 싣고 시베리아 한가운데 버리고 온 것이나 마찬가지다. 가난하고 작은 나라는 그때나 지금이나 늘 큰 나라의 밥이 되곤 했다.
이것이 역사의 현실이다. 또 이곳은 윗동네와 아래 동네로 나뉘어 있었는데 윗동네 사람들은 부자이고 권력자들이어서 지금도 아랫동네 사람들을 내려다 보고 산다고 했다. 가랑비가 오고 있었지만 정말 위에서 내려다 보는 경치가 볼만했다. 차 한대가 다닐만한 좁은 골목길이 끝없이 이어져 있어서 인상적이었다.
다음날은 러시아의 세인트 피터스버그라는 옛날 레닌그라운드로 갔다. 우리가 탄 배는 계속해서 발틱 해협을 돌아다니고 있는 것이다. 정작 내가 이곳 러시아의 옛날 도시 한가운데에 왔다는 것이 꿈만 같았다.
러시아는 내게 미지의 세계이며 신비의 나라였다. 톨스토이며, 도스도엡프스키, 뜨르게네프며 푸시킨 같은 대문호들을 배출시켰고, 차이콥스키와 라흐마니노프 같은 음악의 거장들이 태어난 곳이다.
차로 시내를 먼저 돌아보는데 그 건물들의 크기며 화려하고 장엄한 궁전들과 성당들이 보는 이들을 압도했다. 이 도시는 피터 대왕이 디자인한 유럽 도시 가운데서도 가장 엘레강트한 도시 중에 하나라고 정평이 나있다. 그러나 알렉산더 2세가 1881년에 암살당한 피로 물들인 곳이기도 하다.
우리가 들어간 곳은 허미타즈라는 박물관이었다. 이 박물관은 파리의 베르사유 궁전과 비교될만한 수준이라고 했다. 온갖 금은보화로 치장된 그안은 호화의 극치였다. 렘브란드의 유명한 성화 가운데 하나인 돌아온 탕자며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는 찰나에 하나님이 준비하신 양이 언덕 위에 매여 있는 장면들이 어마어마한 크기의 그림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또 나폴레옹이 이 도시를 쳐들어왔으나 피터 대제가 물리쳐 이 도시를 구한 영웅으로 남아있는 사진들도 있었다.
또 이곳은 64개의 분수와 구리로 만든 동상들이 그 수를 알 수 없을 만큼 많았다. 온갖 그림으로 채색된 천장이며 천장에 달려있는 아름다운 샹제리아가 눈이 부셨다. 이 박물관은 세계에서도 파리의 루브르과 뉴욕에 있는 박물관과 비교가 될 정도로 유명한 곳이다.
하루를 다 돌아 다녀도 다 볼수 없는 곳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날 오후는 도시 안에 있는 운하를 배를 타고 돌아보았다. 배 안에서 바라다 보이는 이 도시의 크기와 아름다움과 찬란한 유산을 보유하고 있는 이들 국민들이 부럽게 생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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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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