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힐러리가 싫어서도 아니고
▶ 트럼프가 좋아서도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통령 후보(왼쪽)가 18일 공화당전당대회에서 부인 멜라니아와 함께 등단하고 있다. [AP]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통령 후보(오른쪽)가 18일 전국교사연합 컨벤션에 참석해 랜디 윈거튼 회장과 함께 손을 흔들고 있다. [AP]
■ 정치·종교 상관없이 후보 만족도 밑바닥
올해 미국 대통령 선거를 놓고 많은 사람들이 혼란과 갈등을 겪고 있다. 민주당과 공화당 후보가 극명한 개성과 정책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실제로 선뜻 지지하기에는 개운치 않은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특히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에게는 이와 같은 현상이 한층 심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해 연방대법원에서 동성애가 합법화된 이후 반대 의견조차 공공연히 내놓기도 힘든 상황이 됐다. 여기에 공립학교의 성정체성 교육의 난맥상과 낙태허용 논쟁, 날로 심해지는 빈부격차와 소득 불균형으로 인한 중산층 파괴 등 종교적 및 사회적으로 첨예한 이슈가 줄줄이 늘어서 있다.
그러나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와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모두 이와 같은 현안에서 각각 심각한 문제점을 갖고 있다는 게 대다수 보수적인 복음주의 기독교인의 시각이다.
특히 소수계 이민사회에 포함되는 한인의 경우 이민정책과 마이너리티 보호정책 등과 맞물려 상황은 더욱 복잡하게 얽혀 있다. 기행과 비이성적인 공약, 극단적인 이민정책, 소수민족에 대한 망언 등을 일삼는 트럼프 후보가 싫지만 동성애와 낙태를 지지하는 클린턴 후보를 지지하고 싶지도 않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주류 사회의 백인 보수주의 복음주의 기독교인 사이에서도 대체로 비슷한 기류로 나타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백인 기독교인의 표심은 트럼프로 기울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여론조사기관인 퓨리서치가 지난 13일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스스로를 백인 복음주의자로 자처하는 유권자 중에서 무려 78%가 트럼프에게 표를 던지겠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이들의 트럼프에 대한 지지는 그야말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게 퓨리서치의 조사에서 나타나고 있다. ‘트럼프가 좋아서가 아니라 할 수 없이 투표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다.
백인 복음주의 기독교인의 절반이 넘는 55%가 자신들의 선택에 ‘만족하지 않는다’고 대답했으며, 절반에 가까운 45%가 트럼프에게 표를 주는 결정이 ‘힐러리 클린턴을 반대하는 것도 아니고, 트럼프를 인정하는 것도 아니다’고 답변했다. 트럼프에게 표는 주되 트럼프를 지지하거나 좋아서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표심은 트럼프 후보에게 표를 찍겠다고 밝힌 유권자 가운데 실제로 ‘트럼프를 지지한다’는 사람은 30%에 불과하다는 결과에서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단지 ‘클린턴 후보를 반대한다’는 복음주의 유권자가 45%를 차지하면서 기타 이유의 3%를 합쳐 결국 78%의 표가 트럼프 쪽으로 이동한 것이다.
실제로 공화당 대통령 후보경선에서 트럼프 이외의 후보를 지지했던 공화당 소속 복음주의 교인들 중에서는 트럼프 후보를 ‘강력하게 지지한다’는 유권자가 27%에 그쳤다. 그리고 다수인 61%는 ‘강하게 지지하지는 않는다’는 입장을 보였다.
백인 복음주의 유권자들의 혼란스러운 표심은 이번 조사에서도 적나라하게 나타났다. 클린턴 후보와 트럼프 후보 중 현시점에서 누구를 차기 대통령으로 선택할지 ‘아주 어렵다’는 사람이 42%나 됐기 때문이다. 또 신앙적인 측면에서도 복음주의 백인 공화당원의 44%가 트럼프 후보가 ‘전혀’ 또는 ‘너무’ 종교적이지 않다고 대답했다.
복음주의 기독교인 사이에서도 인종에 따라 지지하는 후보는 크게 엇갈리고 있다. 전통적으로 민주당 성향이 강하며 클린턴 후보 지지층이 막강한 흑인 기독교인들은 절대 다수인 89%가 힐러리 클린턴 후보를 지지한다고 밝혔으며 이중 60%가 자신들의 결정에 만족한다고 답변했다.
흑인 교계는 누구보다도 강력하게 동성애 반대 의사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지만 그래도 인종차별 언행을 보여 논란을 일으킨 트럼프 후보를 지지할 수는 없다는 표심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흑인 복음주의 유권자들이 밝힌 클린턴 후보에 대한 지지 이유는 53%가 ‘순전한 클린턴지지’였으며 34%는 ‘트럼프 후보에 대한 반대’ 때문이었다.
퓨리서치는 이번 조사 결과를 놓고 “많은 복음주의 유권자들이 클린턴 대신 트럼프를 지지하고는 있지만, 트럼프 후보가 이상적인 대통령감이라거나 신앙의 원칙을 공유할 수 있는 후보로 여긴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고 분석했다.
또 특정 종교를 갖고 있지 않은 무종교 유권자 및 민주당 지지층에서도 이번 대통령 후보에 대한 만족도는 밑바닥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퓨리서치는 지난 1992년 빌 클린턴 민주당 후보와 조지 부시 공화당 후보가 나선 대통령 선거 이후 올해 대선이 가장 저조한 후보 만족도를 보였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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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원 종교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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