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섯, 차렷, 경례! 다 같이 한 동작으로 해야지 어물쩡, 어정쩡하게 하면 안 돼요. 몇은 일어서고 몇은 꾸벅하고, 그래서야 되겠어요? 다시! 일어섯, 차렷, 경례!” 선생이 아이들한테 이른다. 구령은 말로 하지 않고 첼로 줄을 부르릉 긋는 것이다.
“부르릉(일어섯), 부르릉(차렷), 부르릉(경례)!” 하는 식으로 말이다. 한 대여섯 번을 되풀이하고 나니까 아이들이 같은 시간에 서고, 같은 시간에 차렷을 한다. 선생 세 분에 학생은 열 명 남짓의 첼로 캠프. 그중 제일 꼬마 학생 제임스는 첼로라고 쥐고 있는 악기가 어른의 바이올린보다 작다. 녀석은 기저귀 차고 첼로 캠프에 온 것 같다. 제임스의 엄마는 옆에서 아이를 돕고 있다. 엄마도 첼리스트인지 옆에는 첼로를 놓고.
“부르릉!” 엄마가 아이를 일으켜 세운다. “부르릉!” 엄마가 아이를 차렷하도록 돕는다. “부르릉” 엄마가 아이의 고개를 숙여준다. 그 엄마와 아이의 짓거리가 왜 내 코를 시리게 하는지 모른다.
또 한 엄마는 마룻바닥에 퍼져 앉아 징징거리는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다리로는 아이를 안고, 두 팔은 바이올린을 키느라 바쁘다. 이 클래스의 반주자로 자원봉사하고 있다. 퍼져 앉은 엄마의 모습도 코를 찡하게 한다.
제임스의 엄마나, 젖을 물리고 있는 엄마나 거기까지 오기도 수월치는 않았으리라. 그 정도 하는 것도 오죽 악기와 씨름했으랴! 그렇다고 앞으로도 쉬운 날만 있진 않을게다. 어린 자식들 키워야 하고, 자신의 연습도 해야 하고, 먹을 밥도 지어야 하고…. 산다는 것이 어디 그리 호락호락하던가?
이번 주 나는 손녀딸의 첼로 캠프 보호자다. 이 캠프는 다른 캠프와 달리 부모 중 한 사람이 자식과 함께 클래스에 들어가 자식이 배우는 것을 지켜보며 선생이 가르치는 것을 가지고 온 노트장에 쓴 후 집에 가서 쓴 대로 다시 복습시켜야 한다. 내 자식이 어렸을 때는 레슨때 문밖에서 기다리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었는데…. 이젠 부모가 무식하면 음악도 틀린 노릇(?)인가?
산다는 것이 쉽지 않듯, 음악 한다는 것 역시 쉬운 일 아니다. 내 손녀는 아홉 살. 둘 다 일하는 부모를 둔 손녀딸을 위해 할머니인 내가 부모 대신 클래스에 들어와 선생과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면서 노트하는 중이다. 내가 손녀딸의 부모만은 못해도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고 A선인지 B선인지도 모르면서 (아니, 그런 선도 있던가) 자식 둔 죄(?)로 자식 대신 진땀 흘리고 있는 판이다.
또 생각한다. 내가 손녀딸의 나이였을 때를. 첼로? 음악? 캠프? 그때 난 먹고 살 음식만 충분히 있어도 행복했을 것 같았는데…. 학교에 가지고 갈 책과 공책만 있어도 땡이었을 터인데…. 나도 한심하다. 손녀딸 놓고 내가 그 애 나이였을 때를 주문하고 있으니….
선생이 첼로의 활을 머리에 대고 입 다물고 있다. 모두 조용히 주의 집중하라는 뜻이다. 아이들이 조용해진다. “절 할 때는 어떻게 하라고요?” 선생이 묻는다. “깎듯이요.” “꾸뻑 이요.” “빨리요.” 아이들이 손들고 답한다. “아니요.” “아니요.” 아니요.” 선생의 말에 손을 드는 아이들이 없어졌다. “천천히요.” 한 아이가 용기 내서 말한다. “얼마나 천천히요?” 선생이 묻는다. “한참이요.” “십 분이요.” 하는 대답에 부모들이 웃는다. “일 분이요.” 더 웃는다.
“틀려요. 정답은 고개 숙이고 ‘로스트로포비치!’ 하고 크게 소리 지른 후에 고개 드는 거예요. 해 봐요.” 선생이 부르릉 하고 선을 긋는다. 고개 숙인 아이들이 귀청 떠나게 “로스트로포비치!” 하고 외친다.
캠프 끝나고 배운 기술 발표하는 날, 즉 음악회 날이다. 손녀딸 클래스 차례. “부르릉!” 모두 일어서고. “부르릉!” 모두 차렷하고. “부르릉!” 모두는 허리 굽힌다. 그리고 목청 다해 외친다. “로스트로포비치!” 장내는 박수 소리, 웃음 소리로 떠나갈 듯하다. 그런데 나는 왠지 목이 자꾸 멘다.
아, 힘든 세상이라도 저렇게 삶을 만들어 가며 사는 것이 바로 인생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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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혜 맥클린,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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