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 요한이 유배되었던 밧모섬의 기적
▶ 밧모섬의 기적은 동굴서 기도하던 요한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계시
사도요한 묘지 및 기념교회로 들어가는 정문. 기독교 공인후 기독교인들을 처형한 에베소 원형경기장의 돌을 가져다가 세웠다고 한다
물 한방울 나지 않는 밧모섬을 유럽 최고 관광지로 만든것도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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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에베소에서 밧모섬으로
에베소 방문을 마지막으로 감격의 터키 일정을 마치고 새벽같이 버스를 타고 근처 항구로 이동하였다. 그리이스 밧모섬으로 향하는 배를 타기 위해서다. 터키와 그리이스를 사이에 두고 에게해 남쪽에 위치한 밧모섬은 우리 일행이 탄 작은 배로 네 시간 반 거리라고 한다.
아직도 어둑 어둑한 때에 배가 출발하여 조금 지나니 왼쪽 동쪽 수평선 너머에서 해가 떠오르는 모습이 장관이다. 날씨도 맑고 바람 한 점 없으니 뱃길 여행에 익숙치 않은 사람들에게도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라는 안도감이 생긴다.
그런데, 얼마가 지났을까? 근처 육지가 시야에서 사라질 무렵, 바람이 제법 불어오고 파도가 높아지는 것을 감지하는데 안내방송이 들려온다. 선상에서 주일예배를 드린다고 한다. 그간 터키 땅을 동서로 강행군하면서 날짜 감각을 잃었는지 오늘이 주일이라는 말에 믿어지지가 않았다.
바람이 거세지면서 예배를 약식으로 마치고 아래층 선실에 내려오니 이미 몇 분들은 배 멀미 기운을 느끼며 몸을 벽과 의자에 기대기 시작하고 또 얼마가 지나니 몇 분들은 광활한 바다 한 가운데에서 무료함을 잊기 위해 찬송을 부르기 시작한다.
여행이 지루해 지고 이 정도 풍랑이면 조금 큰 배로 왔으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조심조심 선상에 올라가니, 배 위에는 이미 붉은색 터키 국기 외에 첫 눈에 바로 평안함을 주는 하늘색 바탕의 흰줄 십자가의 그리이스 국기가 펄럭이는 것을 볼 때 눈앞에 멀리 다가오는 것이 밧모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밧모섬에 발을 내딛으며 처음 떠 오른 물음은 ‘이곳이 정말 성경 계시록의 저자 요한이 유배되었던 곳일까?’ 였다. 유배지라는 이름을 붙이기에는 섬이 너무나 깔끔하고 아름다웠고 꼭 분위기가 샌프란시스코 베이지역 어느 항구를 온 기분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2009년 포브스잡지는 밧모섬을 “유럽에서 가장 살기에 행복한 섬”이라는 평을 할 정도로 유명한 섬이라고 한다.
밧모섬의 첫 번 기적은 물에 있다. 그리이스의 신화에 의하면 밧모섬은 원래 바닷물 속에 잠겨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달의 여신 셀레네가 환하게 달빛을 비추면 그 아름다움이 물 속 밖으로도 나타나 이것이 제우스의 딸 아테미의 눈에 들어와 아테미가 이 섬을 자신의 소유로 하고 싶지만 자신은 힘이 없어 쌍둥이 형제 아폴로를 통해 부친 제우스에게 도움을 요청 제우스가 그 섬을 수면 위로 올려 주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셀레나의 형제인 태양의 신 헬리오스가 너무 뜨거운 바람으로 섬의 물기를 말려 없애는 바람에 지금까지도 섬 전체에 물이 없다는 얘기다. 따라서 현재 이 섬의 상주인구 3,000명 이외에 매일같이 이곳을 찾는 1만 명이 넘는 관광객들을 위해 식수는 외지에서 들여와야 하고 그 밖의 생활용수는 건물마다 일 년 내내 받아 둔 빗물을 사용하며, 사용된 물은 전량 회수하여 한 방울도 낭비가 없다고 한다.
물 한 방울 나지 않는 섬을 유럽 최고의 관광지로 만든 희랍인들의 지혜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물이 원인인지는 모르지만 고대에는 이 섬에 사람이 살았다는 기록이 많지 않고, 로마제국시대에도 기껏해야 소수의 군대가 주둔하거나 일부 정치인들이 목숨의 위협을 느낄 때 몸을 피해 머무는 정도의 외지였던 것 같다.
에베소 사도요한의 묘지
2) 사도요한과 하나님의 계시
밧모섬의 진짜 기적은 2000년 전 물 한 방울 없는 이 곳에서 몸을 피하며 외롭게 바위 동굴에서 기도하던 하나님의 종 요한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계시사건이다. (계1:1, 9) 당시 로마황제 도미시안의 재임기간에 기독교인들은 많은 핍박을 받았으며, 황제숭배를 거부한 요한은 서기 95년경에 에베소에서 밧모섬으로 유배되었고 그 기간 중에 소아시아 일곱교회에 전할 예언의 멧시지를 기록한 것이 계시록이라고 알려진다.
그런데 이 요한이 어떤 인물인지에 대해서는 학자들 간에 논의가 분분하다. 많은 학자들이 계시록 저자와 요한복음 및 요한1-3서의 저자를 동일인물로 보는 데에 많은 무리가 있다고 본다.
그 하나의 이유로 요한복음 및 요한 1-3서의 원문 희랍어 문장이 문법에 흠이 없고 수려한 문체로 되어 있는데 비해, 계시록에는 마치 희랍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에 의해 씌여진 것을 의심할 정도로 오류가 많다는 것이다.
또 같은 저자의 글로 보기에는 두 저자의 관심에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요한복음의 경우 계시록의 주 내용인 다시 오실 주님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이 그 한 예이다.
계시록의 저자 요한이 예수님의 열두제자 중 하나인 세베데의 아들(마10:2) 요한으로 보는 데에도 무리가 있다고 본다. 그 이유로 계시록에서 저자 요한이 열두사도들을 언급 (계21:14) 하면서도 자신과의 관련성을 일체 언급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찾은 성지 현장의 분위기는 달랐다.
가는 곳 마다 밧모섬의 요한이 예수님의 열두제자 중 하나인 사도요한이었으며 그가 또한 요한복음의 기록자라고 현지 안내원은 물론 안내표지에 나와 있음을 확인했다.
밧모섬은 바닷길이 험해 날씨가 좋지 않으면 가기가 쉽지 않은 곳이고, 또 정해진 시간에 도착하지 않으면 막상 먼 길을 와서도 중요한 곳을 가 볼 수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우리 일행이 그날 오후 밧모섬에 도착하니 시간이 없다며 급히 기다리던 버스가 우리를 산 위로 데리고 간다. 엉겁결에 어디를 도착해 계단을 타고 내려가니 바로 그 자리가 요한이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동굴이며 지금은 사도요한수도원이란 이름으로 그리이스정교회 교회가 되어 있었다.
한때 아데미 신전으로도 이용된 이곳은 4세기 기독교 공인 후 지금까지 전 세계 기독교인들의 성지순례 코스로 인정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 곳 역시 역사의 굴곡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7-11세기의 계속된 전쟁과 이슬람의 습격으로 섬 전체가 버려지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1088년 인근의 비옥한 코스(Kos) 섬에서 수도생활을 하던 크리스토둘로스는 콘스탄티노플을 찾아가 콤네노스황제(1081-1118)에게 비옥하고 크기도 몇 배인 코스섬을 황제에게 바치는 대신 버려진 황무지 섬 밧모스섬을 황제의 선물을 받아 현재의 수도원을 세웠다고 한다.
우리 50여명의 일행이 들어가니 더 이상 공간이 없을 정도의 바위 밑 동굴이었지만 이곳에서 사도요한은 당시 박해중인 로마제국의 교회들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며 하루하루를 보냈으리라.
이곳 기록에 의하면, 요한은 이 섬에 2년간 머무는 동안 자유롭게 이동하며 이곳 거주자들에게 복음을 전했고 교회를 세웠으며, 하나님께 받은 계시를 동행자인 초대교회 일곱 집사 중 하나인 브로고로(행6:5)를 통해 글로 적게 하였다고 한다.
서기 96년 기독교인들의 박해가 끝나자 요한은 다시 에베소로 돌아가 복음을 계속 전하고, 십자가상의 예수님의 유언(요19:27)을 받들어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끝까지 모셨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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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일 목사 /버클리 연합신학대학원 교수.버클리 새 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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