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가 제일 처음 사귄 친구는 바비였다. 가느다란 체구에 옅은 금발, 푸른 눈을 가진, 수줍으면서도 사려깊게 생긴 아이였다. 집이 가까워 아무 때고 드나들며 머리를 맞대고 조곤조곤 노는 게 다투지도 않고 참 편안했다.
어느 날 함께 놀던 중 우리 애가 창턱에서 떨어져 칼라본이 부러졌다. 애는 꼼짝을 못한 채 왕왕 울고 나는 너무 놀라 벌벌 떨며 남편 직장에 전화하고 911에 도움을 청해 소방차며 엠블란스가 오고 난리를 쳤다.
그 법석 중에 바비 생각을 잊었는데 그 애는 혼자 살그머니 나가 저희 집으로 가고 나중에 그의 엄마로 부터 도와줄 게 없냐는 연락이 왔다. 어린 애가 참 어른스럽구나, 생각했다. 그 해 학기가 끝나고 여름 방학중이었다.
그로서리 가게에 갔다가 바비엄마를 만났다. 바비의 여동생만 데리고 쇼핑을 하고 있기에 바비는 어디 있냐고 했더니 이제 바비는 자기들과 함께 있지 않다고, 할아버지와 캠핑 갔다가 물에 빠져 죽었단다.
너무도 뜻밖의 소식이라 무슨 말을 할수가 없었다. 큰 애는 오랫동안 바비를 잊지 못해 했다. 왜 그런 일이 있어야 했을까? 어린 나이에 첫 친구와 죽음으로 헤어짐을 경험한 큰 애는 그 후에도 종종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슬픔을 이야기했었다.
이제 내가 할머니가 되어 손자를 데리고 다니면서 문득 문득 무슨 사고라도 나지 않을까 조심스럽고도 염려되는 마음을 금치 못한다. 애들의 사고는 한순간에 난다.
역시 큰애가 네살쯤 되었을 때 디즈니랜드에 갔을 때다. 놀이기구를 타느라 길게 늘어선 줄에서 무료하게 기다리다 주머니속의 사탕을 꺼내 애에게 주려는데 사탕이 떨어졌다. 몸을 구부려 사탕을 집고 일어서니 애가 없다.
애는 엄마가 몸을 구부린 순간 엄마가 사라졌다고 생각하고 총알같이 어디론가 뛰어간 후였다. 옆의 사람들이 애가 뛰어 간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나와 남편은 정신없이 울며 불며 우리 애 못봤어요?, 소리쳐가며 뛰었다.
저만치서 우는 애를 번쩍 들어 올려 안은 남자를 보고 빼앗듯이 애를 잡아 채듯 안고는 눈물 콧물 흘리면서도 어찌나 챙피했던지.. 챙피한 중에도 눈물 닦으며 다시 섰던 줄로 끼어들었다.
목숨이 붙어 있는 한, 놀땐 또 놀아야 하니까. 애들은 단 한순간도 눈을 뗄수가 없다. 아니, 눈도 떼지 않아도 눈 깜빡 할 사이에 사고가 난다.
올랜도의 게이바에서 일어난 총기사건으로 50명이나 죽어 너무도 속이 상하는 판에 연이어 두살박이 아이가 리조트에서 악어한테 물려 물속으로 끌려 들어가 죽었다. 두살이면 정말 한창 예쁠 때이다.
주위 사람들을 알아보고 온 마음으로 신뢰하고 예쁜 짓 하며, 또 에너지는 끝이 없어 일초를 가만히 있지 않는 때다. 어른 몇 명이 쫒아다녀도 사고는 한순간, 돌아보면 애들이 아무 사고없이 무사히 크는게 어찌 어른들의 공만으로 될 일인가.
하루 하루, 매 순간마다 보이지 않는 그 누군가의 가호없이는 바랄수도 없는 기적이다. 애들의 죽음은, 특히 그것이 어른들의 잘못으로 일어났을 때 너무 죄스럽고 마음 아프다.
나는 지금도 바닷가 모래밭에 얼굴을 묻고 죽은 시리아 난민 아이, 아일란 쿠르드를 잊지 못한다. 또 유치원 한 클라스 20명의 아이들이 한 명 한 명 총에 맞아 죽은 샌디훅의 사건을 결코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인간은 대체 어디까지 극악무도해 질수 있는걸까? 얼마만큼 폭력에 무뎌지는 걸까? 악어에 끌려가 죽은 아이는 리조트측에선 단순사고라지만, 몇 년전 같은 곳에서 다섯살 먹은 자신의 아들이 악어에게 물릴 뻔 했다고, 언젠가 사고가 있을 수 있으니 미리 조심하라는 편지까지 보낸 이가 있었다고 한다.
신기한 동물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곳이란게 사람들의 흥미를 끌수 있을테니 위험에 대해선 쉬쉬 하고 싶었을지 모른다. 사업하는 사람들이 어디까지 이윤을 챙기고 어디까지 공공 질서와 안전을 염두에 두어야 하는지, 그건 인간 양심의 기본이다.
정치하는 사람들이야 전부 사기꾼이라니 그려려니 할수도 있다지만, 요즘은 종교라는 것조차 서로 죽이라고 부추기는 게 종교라니... 우리는 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건지.
<
최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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