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베트남과 일본 방문이 있었고, 고국의 박근혜 대통령은 아프리카 몇 나라와 프랑스를 방문했다. 요즘 긴밀한 국제 협력과 외교의 중요성이 점점 요구되다 보니, 큰 나라 작은 나라 가리지 않고 대통령의 외국 방문이 매우 잦은 편이다.
대통령의 방문이 잦아진 만큼 품격과 시대적 의미를 지닌 대통령 방문 문화가 요청 된다. 대통령의 방문에서 중요한 점은 방문 횟수나 여행 거리가 아니라 방문의 의미와 상징성이다. 각국 정상의 방문 외교는 간단하지 않으며 어렵사리 이루어진다. 적지 않은 비용이 들고 기업인이나 관료 등 많은 인원이 동원된다. 그러나 대규모의 수행원을 거느린 요란한 대통령 방문임에도 그 결과는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처럼 미미하거나, 두 정상이 만나 물건을 사고파는 세일즈 방문만 하고 오는 경우가 없지 않다. 엄청난 준비와 경비를 들여 이루어진 대통령 방문 치고는 허전하다. 대통령의 방문은 좀 달라야 하지 않을까?
이번에 베트남과 일본 방문에서 보여 준 오바마 대통령의 모습은 대통령 방문의 의미와 역사적 상징성을 보여준 신선한 방문이었다. 물론 국제정치 문외한 이어서 대통령 방문의 이면에 담겨져 있는 깊고 내밀한 국제 정치적 속셈 여부는 알 수 없지만, 겉으로 드러난 대통령의 방문 행보를 보고 그가 발표한 감동적인 메시지를 들으니 그렇다는 것이다.
그는 대통령 재임 동안 처음으로 베트남을 방문하여 상호 긴밀한 안보와 경제 협력을 논의 하였고, 1960∼1970년대에 10년간 전쟁을 치른 두 나라 사이의 적대적 유산을 청산하였다. 그는 전쟁 후유증 극복을 위하여 베트남 정부에 아낌없는 협력과 지원을 약속 하는 등 종전 40여 년 만에 양국 간의 관계를 정상화하는 상징적 결과를 이끌어 냈다.
이어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석차 방문한 일본에서는 원폭 투하 71년 만에 미국 대통령으로는 처음 피폭 현장인 히로시마 평화의 공원을 방문하여 무고하게 숨진 원폭 희생자들을 위하여 애도의 묵념을 하고, 유려한 문장으로 반전과 평화의 메시지를 발표하여 보는 이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물론 한인 위령비를 방문하였더라면 더 큰 감동이었을 테지만…그는 인류가 저지른 비이성적이고 반생명적인 전쟁의 참혹한 실상에 대하여 반성하며, 역사와 인류 앞에 전쟁의 와중에 원폭을 투하 할 수밖에 없었던 미국의 정당성을 되물었다.
베트남과 일본 방문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보여준 것은 과거와의 화해요 새로운 시대를 향한 메시지였다. 그러고 보면 역사 속에서 새로운 시대를 연 역사적인 대통령의 방문이 적지 않다. 1972년 닉슨 대통령의 중국과 소련 방문은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의 긴장을 완화 하는 데탕트(detente)와 평화공존의 길을 열어 놓았다.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의 방북과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의 육로 북한 방문은 ‘6.15 남북공동선언’과 남북 공동의 ‘평화와 번영’을 이끌어 내는 새로운 시대를 향한 민족의 열망과 메시지가 담긴 방문이었다.
이에 비하면 현재 박근혜 대통령의 방문은 매우 실무적이며 제한적인 편이다. 침체된 국가 경제를 회복해 보려는 의지 때문이겠지만 통일 비전이 포함 된 독일 방문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방문이 경제 협력을 위한 방문이다.
대통령의 방문엔 늘 세간의 관심과 이목이 집중된다. 때로는 옷차림이나 말투 하나가 입방아에 오르내리기도 하고, 때로는 진심과 격의 없는 소탈한 언행 하나가 큰 감동을 자아내기도 한다. 21세기 대통령 방문에 대한 관심은 메시지에 있어야 할지 싶다. 모처럼 만난 정상 간의 테이블에서 세일즈 이야기만 하는 것은 낭비이고 공허하다. 과거 아픈 역사에 대한 청산과 새로운 미래를 향한 논의가 있어야 한다. 테러 없는 세상, 전쟁을 막고 평화의 길을 찾고, 지구의 생명 전체를 위한 공동 비전을 찾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대통령과 국민 모두에 해당되는 가장 큰 국익은 평화이고, 가장 튼튼한 안보는 테러와 전쟁 없는 세상이며, 가장 성공적인 외교는 이웃과의 선린이요 공동의 비전을 갖는 일이다. 냉혹한 국제정치 속에서 평화와 반전의 신념을 갖고, 과거의 역사를 청산하고, 인류 전체와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려는 ‘메시지’ 있는 대통령 방문을 기대해 본다.
<최상석 성공회 워싱턴한인교회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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