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감독상·각본상을 받은 코언 형제의 걸작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보안관 '벨'의 독백으로 시작한다. 벨은 최근 자신이 검거해 증거를 제출하고 재판을 거쳐 결국 전기의자에서 죽은, 14살 소녀를 죽인 한 소년에 대해 말한다. 소년은 소녀를 아무 이유 없이 죽였고, 만약 풀려난다면 또 누군가를 죽일 것이라고 했다. 벨은 말한다.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잘 모르겠다. 전혀 모르겠다."
벨을 좌절하게 하는 사건이 또 생긴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바로 그 이야기다. 거액이 든 돈 가방을 우연히 주운 남자가 있다. 돈 가방을 되찾기 위해 한 남자가 투입된다. 안톤 시거, 이 남자 심상치 않다. 가방을 되찾는 과정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을 '피아구분 없이' 죽인다. 그러니까 시거를 만나면 죽는다. 벨은 돈 가방을 든 남자와 안톤 시거의 뒤를 쫓는데, 이 과정에서 시거의 무자비한 행동을 목격하고 절망한다. "도대체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안톤 시거로 상징되는, 이성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수백 수천 년이 축적된 인간의 지혜로도 도저히 그 전부를 알 수 없는, 이 세계에 대한 장탄식이다. 코언 형제는 '파고' '번 애프터 리딩' '시리어스맨' '인사이드 르윈'에서 이 주제를 반복해왔다. 시거에게 쫓기던 남자는 결국 죽는다. 시거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연한' 사고로. 코언 형제는 이 사고에 대한 묘사를 생략하고, 죽은 남자의 모습만 비춘다. 왜냐, 세상이 원래 그러하므로.
'노인을…'에서 가장 두려운 두 장면은 시거가 동전 던지기를 통해 상대의 생사(生死)를 결정하는 시퀀스다. 시거는 무작정 맞히라고 말하고 상대는 거부한다. 아마 맞히지 못하거나 끝까지 맞히기를 거부한다면 시거는 상대를 죽일 것이다. 겨우 동전 따위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상황, 한 명은 맞혀서 살아남고 다른 한 명은 맞췄는지 틀렸는지 혹은 거부했는지 알 수 없다. 중요한 건 시거의 살인이 그저 동전 던지기와 같다는 것이다. 평론가 이동진은 이를 "우연이라는 악마"로 정확히 표현한 바 있다.
우리에게 충격을 안겨주는 건 두 번째 동전 던지기 시퀀스가 끝난 뒤 이어지는 시거의 교통사고 장면이다. 불가해한 세상에 대한 상징, 시거에게도 사고(accident)는 일어난다. 이 장면을 목격한 소년들에게 시거는 그저 사고를 당해 불쌍한 '인간'이다. 팔이 심하게 부러진 그는 경찰이 오기 전에 서둘러 사고 현장을 떠난다. 이는 코언 형제가 바라보는 세계다. 벨은 안톤 시거 사건이 마무리된 뒤 보안관을 관둔다. 은퇴 이유에 대해 그는 "모르겠다"고만 답할 뿐이다.
최근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한국영화 '곡성'은 '노인을…'과 유사하다. 그 이유는 이렇다. 코언 형제가 불가해(不可解)한 세상을 멍하게 바라본다면, 나홍진은 어떻게든 이해하기 위해 의심하고 발악한다. 종구가 바로 그런 인물이다. 종구는 딸을 구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발버둥 친다. 딸 효진은 왜 변해버렸을까, 무명의 말을 들었다면 종구 앞에 펼쳐진 지옥도는 없었을까, 외지인을 그렇게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면 상황이 달라졌을까, 어쨌거나 알 수가 없다.
첫 살인사건 때만 해도 종구는 "독버섯이 정신착란을 일으키게 했다"는 당국의 설명을 믿었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살인이 반복된다. 이 사건들이 일본에서 온 한 남자가 마을에 들어온 뒤부터 일어난 것이라는 소문이 퍼지자 이번엔 그 소문을 확인하기 그 외지인을 찾는다. 와중에 효진이 아프기 시작하고, 외지인의 집에서 효진의 것으로 추정되는 실내화를 발견하자 이 모든 일이 외지인의 짓이라고 확신한다. 그러나 종구의 확신에는 어떤 근거도 없다. 미쳐가는 딸을 지키지 못하는 무기력이 이유를 만들어내고 있을 뿐이다.
이때 무당 일광이 종구에게 건네는 말은 의미심장하다. "낚시할 때 뭐가 잡힐지 알고 하나. 그놈은 그냥 미끼를 던져분 것이고, 자네 딸내미는 그 미끼를 확 물어분 것이여." 그러니까 효진이 그렇게 된 데는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익숙한 화법이다. 안톤 시거의 이유 없는 동전던지기가 그러했다. 누군가는 아무것도 모른 채 떡밥을 물어 미치고, 누군가는 아무것도 모른 채 생사를 건 동전 던지기를 해야 한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나홍진 감독은 이를 "인간 DNA에 내재한 공포"라며 그 공포를 "세계의 모호함"이라고 설명한다.
두 편의 영화를 이렇게 길게 설명한 것은 최근 벌어진 한 사건 때문이다. 서울 강남역에서 한 여성이 살해당했다. 그 여성은 잘못한 게 없다. '표적'이 됐을 뿐이다. 범인은 평소 여성들이 자신을 무시해 살인을 저질렀다고 했다. 법은 그를 강력히 처벌하고, 우리 사회는 이러한 범죄와 범죄자를 만든 시스템을 점검해야 한다. '여성 혐오'에 대한 사회적·심리적으로 심도 있는 분석도 필요하다.
하지만 이 모든 후속조치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철저히 이뤄져도 당혹감은 남는다. 도대체 왜 하필 그녀가 피해자여야 했을까. 내가 아니었을 뿐이라는 허무 속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녀의 죽음을 함께 애도하기 위해 강남역 10번 출구에 포스트잇을 붙이는 것밖에는 없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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