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범근 축구교실 가보니, 26년째 운영…회원 1,000여명 매년 5월엔 가족들과 페스티벌 차두리 독일서 일시 귀국 참가
▶ 차붐부자 2시간 사인볼 준비 염기훈·조원희·백지훈도 찾아 직접 심판 봐주며 축구 지도
차범근(맨 왼쪽)전 축구대표팀 감독이 지난 1일 이촌동 한강시민공원 내‘차범근 축구교실’ 운동장에서 열린 초등부 페스티벌 시상식에서 참가 어린이들을 격려하고 있다. 차 감독 옆으로 염기훈과 조원희, 백지훈 그리고 차두리의 모습이 보인다. <차범근 축구교실 제공>
‘차붐’은 어디를 가나 사인과 사진을 요청하는 팬들에게 둘러싸인다. 현실적으로 모두 응할 수는 없는 노릇. 원칙이 있다. “아이들은 이리 오세요.” 시간이 허락하는 한 그는 아이들의 간절한 눈빛은 외면하지 않는다. 차범근(63) 전 축구 국가대표 감독이 꿈나무 육성을 가장 큰 소명으로 삼는 건 가장 차붐다워 보인다.
1988년 ‘차범근 축구대상’을 만들어 이동국(37^전북)과 박지성(35^은퇴), 기성용(27^스완지시티), 황희찬(20^잘츠부르크), 이승우(18^FC바르셀로나) 등을 배출했다. 1990년 ‘차범근 축구교실’을 열어 한국 축구에 처음 유소년 육성의 개념을 심었다. 올해로 26년 째인 ‘차범근 축구교실’은 매년 5월 특별한 페스티벌을 연다. 회원과 그 가족들을 초청해 울고 웃으며 축구를 즐기는 축제의 마당을 마련한다.
올해는 이촌동 한강시민공원 내 축구교실 운동장에서 5월 1일 초등부, 5월 5일 유치부로 나눠 개최했다. 귀한 손님도 왔다. 차붐 주니어 차두리(36)다. 작년 11월 선수 은퇴 후 독일에서 지도자 자격증 과정을 밟고 있는 그는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일시 귀국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차붐 부자는 행사장에 도착해 가장 먼저 운동장 한 쪽 좁은 사무실로 향했다. 참가자들에게 나눠줄 350개가 넘는 축구공에 하나하나 친필 사인을 했다. 꼬박 2시간 가까이 좁은 의자에 앉아 “내 팔이 아닌 것 같아요(차두리)” “아유 덥다. 창문 좀 열어봐(차붐)”라고 하면서도 공을 받고 기뻐할 아이들 생각에 흐뭇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
차두리는 축구교실 1기생이다. 지금 회원들의 까마득한 선배인 셈. 얼마 전에는 축구교실 이사로 공식 등재됐다. 차 감독은 “두리가 차기 회장을 해야지. 잘 이어갈 거야”라며 기대를 보였다.
‘차범근 축구교실’에는 열정페이가 없다. 축구교실 코치가 12명인데 파트타임 6명을 뺀 6명과 4명의 행정직원 등 10명이 정직원이다. 이들은 4대 보험 혜택도 적용 받는다. 축구교실 출신 이학재 코치는 “다른 축구교실은 아마 4대 보험 개념조차 생소할 거다”라고 말했다. 현재 축구교실 회원이 1,000명이 넘는다. 차 감독은 “몇 년 전 직원들이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놓으니 더 헌신적으로 일하더라.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나눔에도 앞장선다. 매주 화요일은 모든 코치들이 소년소녀 가장이나 한 부모 등 저소득층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무료 축구레슨을 한다. 매년 가을 이들을 위한 페스티벌도 따로 연다.
차두리는 세계에서 유소년 축구 시스템이 가장 잘 갖춰진 독일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아버지가 풀뿌리 보급에 왜 이토록 큰 애정을 쏟는 지 잘 안다. 지금 독일에서 지도자 공부를 하고 있는 그는 최근 그곳으로 연수를 하러 온 황선홍(48) 전 포항 감독, 선수 점검 차 방문한 신태용(46) 올림픽대표팀 감독을 만났다. 얼마 전에는 짬을 내 영국으로 건너가 박지성과 손흥민(24^토트넘) 이청용(28^크리스탈 팰리스) 등 전 대표팀 동료들과 식사도 했다. 차두리는 “많은 사람을 만나서 다양한 이야기를 듣는 것도 좋은 공부다”고 했다. 은퇴한 지 반 년 가까이 됐지만 몸은 여전히 탄탄했다. 살이 찌는 게 싫어 이틀에 한 번씩 10km 이상 달린다고 한다.
잠시 뒤 수원삼성의 염기훈(33), 조원희(33), 백지훈(31)이 찾아왔다. 차붐이 수원 지휘봉을 잡았을 때 제자들이다. 전날 FC서울과 격전을 소화해 피곤할 텐데도 짬을 냈다. 차 감독, 차두리와 반갑게 해후한 이들은 초등부 경기에서 직접 심판을 봐주며 참가자들에게 큰 추억을 선물했다.
시상식 때 차붐이 손자뻘 되는 아이들을 앞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여러분 오늘 재미있었나요?”“네!”“오늘 이겨서 기쁜 사람도 있고, 져서 억울한 사람도 있죠? 축구에서 이기는 것?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 그리고 매번 정해진 시간에 훈련하는 것 그게 더 중요합니다. 오늘의 추억이 나중에 꿈을 이루는데 큰 에너지가 될 수 있을 겁니다. 그런 여러분을 보며 저도 더 힘을 냅니다.”2017년 한국에서 열리는 20세 이하 월드컵 조직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은 차 감독은 지난 달 18일 조직위 현판식 때 “앞으로 감독 차범근은 없다”고 선언했다. 유소년 육성에 평생 헌신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차 감독이 차두리를 소개하자 일제히 박수가 터졌다. 어린 세대들에게는 차두리가 더 스타다. 예전에는 차두리 앞에 ‘차붐 아들’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는데 요즘은 차 감독이 ‘두리 아빠’로 불린다.
행사가 끝난 뒤 기념촬영을 위해 또 긴 줄이 만들어졌다. 환한 웃음도 꼭 닮은 차붐 부자는 싫어하는 기색 하나 없이 아이들의 어깨를 두드리고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차붐 부자는 좁은 사무실에 앉아 350개가 넘는 축구공에 하나하나 사인을 하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윤태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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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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