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의 자유는 알 권리와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표현의 주목적이 메시지 전달에 있고,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는 이유가 그 표현을 접하는 대상의 알 권리에 직결되기 때문이다. 최근 이에 관련된 사건들이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버지니아 주 페어팩스 카운티의 여자 소방대원 실종 및 자살 사건이다. 그 소방대원의 실종 후 “페어팩스 언더그라운드”라고 불리는 블로그 웹사이트에 그 소방대원에 관한 익명의 글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실종된 소방대원의 성생활에 관한 것들도 많았다고 한다.
카운티 소방국장은 웹사이트 소유주에게 그러한 글들을 내려 줄 것을 요청했다. 소유주는 자진해서 내릴 용의는 없다고 했다. 판사의 명령을 받아오라고 했다. 그 글들이 이미 복사되어 또 다른 사람이 올릴 수 있고, 더욱 중요한 것은 자살한 소방대원 주변에서 과연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를 정확히 알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단, 유가족들이 요청한다면 글들을 내릴 용의가 있다고 했다.
이 웹사이트를 나도 들어가 본 적이 있다. 교육위원회나 학교에 관한 사항도 올려진다는 얘기를 듣고 궁금했다. 그랬더니 역시 진위 확인이 어려운 내용들이 난무했다. 익명성을 악용한 무책임이 드러난 듯했다. 그런 글들을 계속 읽는게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을 듯해서 그 웹사이트의 방문을 스스로 금한지 오래된다.
그리고 이 웹사이트 소유주를 상대로 몇 년전에 페어팩스 카운티 교육위원회가 소송을 제기한 적도 있었다. 당시 누군가가 한 고등학교 사무실의 컴퓨터를 해킹해 일부 학생들의 성적표를 빼내 그 웹사이트에 올렸고, 교육청 담당자는 이 사실을 인지한 즉시 소유주에게 성적표는 불법으로 취득된 것인 만큼 웹사이트에서 내려줄 것을 요청했다. 그런데 그 때도 소유주가 거절했다. 이미 일반에게 노출된 정보이고 누가 다른 곳에 복사해서 낼 수도 있으며 무엇보다도 일반의 알 권리 보호가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교육청은 불법 취득 정보에 대해 알 권리는 적용되지 않으며 학생들에 관한 정보는 프라이버시 보호법에 의해 보호 받는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웹사이트 소유주 설득에는 실패했다. 결국 긴급 소송을 제기했고 글들을 내리라는 판사 명령을 받아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웹사이트 소유주는 재판에 출두하지 않았다. 본인의 주장에 소신이 있었다면 설사 비용문제로 변호사를 고용하지 않더라도 법원에 출두해 본인의 주장을 개진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나에겐 삭제를 거부하며 내세웠던 주장들 모두가 일반인들로부터 주목을 끌기 위한 마케팅 전략으로 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그것은 이번에 소방대원에 관한 글들을 유가족들이 요청하면 내리겠다는 것에서도 엿볼 수 있다. 소신에 따라 삭제를 거부하는 것이었다면 유가족들 요청이 있어도 글들을 내려서는 안 될 것이다.
알 권리와 관련해 지난 주에는 교육청 홍보담당자와 유력 주류 언론사 편집국 사이에 논쟁이 있었다. 그 신문사의 온라인 사이트에 대학 신문기자들이 쓴 기사를 하나 올리겠다고 했다. 그런데 내용이 과거 페어팩스 카운티 내의 한 고등학교에서 있었던 연쇄 자살사건들에 관한 것이었다. 사건이 일어 났을 때 이미 여러차례 대서특필 되었던 내용들이었다.
이에 교육청 홍보 담당자는 이러한 기사가 가져다 줄 수 있는 부정적 요소를 고려할 때 게재가 적절하지 않음을 지적했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제시하며 학생들에게 모방 자살을 유발 시킬 수도 있는 자극적 내용은 자제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 신문사는 일반의 알 권리가 우선한다고 주장하며 해당 기사의 게재를 감행했다.
이렇게 표현의 자유/알 권리와 관련된 사항으로 교육위원회도 언론사와 가끔 이견도 보이고 필요시에는 소송도 제기한다. 자유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표현의 자유와 일반의 알 권리 보호에도 분명히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계점의 위치에 따라 한 사회의 민주적 성숙도가 가늠된다고 할 때, 가능한 대로 멀리 찍힐 수록 또한 좋을 듯하다. 우리가 겪었던 모국의 독재 시절에도 독재자는 국민들의 적절한 표현의 자유와 알 권리를 보호했다고 주장하지 않았는가. 국가안보를 한계점으로 책정하고 말이다.
<문일룡 변호사 페어팩스 카운티 교육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