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민주당의 남은 대의원은 1,938명이다. 지난 주말 와이오밍 코커스까지 치른 후 힐러리 클린턴과 버니 샌더스가 확보한 대의원을 제외한 숫자가 그렇다. 2016년 대선 민주당 후보로 지명 받으려면 전체 대의원의 과반수인 2,383명을 확보해야하는데 지금까지 샌더스가 확보한 대의원은 1,069명이다. 과반수인 매직넘버에 도달하려면 남은 대의원 중 70% 이상을 쓸어 모아야 한다. 대의원 계산으로 보면 샌더스의 경선 승리엔 ‘기적’이 필요하다.
힐러리는 30여%만 얻으면 후보로 지명될 수 있다. 양당 경선의 모든 주자들 중 가장 실현 가능한 승리의 길에 서 있는 것이다.
예년엔 별 주목을 받지 못했던 난해한 대의원 계산이 금년 대선에선 최대 화두로 떠올랐다. 트럼프 저지 투쟁의 최후 무기가 된 공화당 뿐 아니라 민주당 경선에서도 뜨거운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타겟은 당 지도부 등 기득권층으로 구성된 이른바 ‘수퍼 대의원’이다. 두 후보가 경선 승패를 통해 배분받은 일반 대의원 수의 격차는 251명이지만 힐러리가 수퍼 대의원에서 샌더스보다 438명이나 훌쩍 앞섰기 때문이다.
수퍼 대의원은 1972년 민주당 경선에서 바람을 일으키며 후보지명을 따낸 극좌 반전파 조지 맥거번이 본선에서 공화당 닉슨에게 대참패를 당한 후 1980년대 초 도입된 제도다.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 비민주적”이라고 샌더스 측에선 아우성이지만 수퍼 대의원은 바로 그 같은, 당 지도부가 본선에서 승리하기 어렵다고 믿는 주자의 당 후보지명을 막기 위해 만들어졌다. 정치적 네트워킹이 약한데다 검증되지 않은 아웃사이더 후보에게 불리한 것이 당연하다.
수퍼 대의원은 언제나 지지후보를 바꿀 수 있다. 2008년 수퍼 대의원 확보를 믿고 숫자 우세를 자만했던 힐러리가 오바마 돌풍에 합세한 수퍼 대의원들의 변심에 추락한 것이 대표적 예다. 수퍼 대의원들이 이처럼 ‘민의’에 부담을 느끼지 않고 소신대로 지지할 수 있는 한계선은 어느 정도일까. 일반 대의원의 격차가 100명 미만일 때라고 선거분석가들은 추정한다.
현재 힐러리와 샌더스의 일반 대의원 격차는 250명이나 된다. 수퍼 대의원들이 마음을 바꿔야할 이유가 없다. 수퍼 대의원이 힐러리에게 든든한 방화벽인 것은 확실하지만 어떤 식으로 계산해도 샌더스는 힐러리에게 지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샌더스의 경선 투쟁이 끝나려면 아직 멀었다. 끝내기엔 그가 확보한 모멘텀이 너무 강력하다. 지난 2주 동안 9곳 경선에서 8번이나 이기며 연승행진을 이어 왔고, 지지율도 점점 올라 엊그제 발표된 로이터 통신 여론조사에선 전국지지율 48%로 힐러리와 동점을 기록했으며, 처음으로 연방 상원의원의 공개지지도 받아냈다.
와글와글 시끄러운 공화당의 서커스에 온통 몰리는 뉴스의 조명을 민주당이 그나마 끌어올 수 있는 것은 수그러들지 않는 ‘샌더스의 모멘텀’ 덕분이다.
표밭을 휩쓰는 샌더스의 파워는 대단하다. 취재기자들에 의하면 샌더스 자신도 놀랄 정도다. 풀뿌리 군단의 열정이 오바마 때 못지않게 뜨겁고, 쇄도하는 소액기부의 힘은 엄청나다. 3월 모금 총액이 힐러리보다 1,500만 달러나 더 많다. 21개주 경선에서 얻은 표가 665만표로 전체 투표의 41%다. 힐러리보다는 적지만 역대 어느 2위도 이만큼 얻지 못했다. 1980년 테드 케네디도 37%에 그쳤다. 여기에 그가 외치는 ‘평등한 세상’에 환호하며 집회마다 구름청중이 몰려드니 샌더스 진영이 쉽게 포기할 리 없다.
샌더스는 3월에 이루어낸 ‘미시간 기적’의 재연을 다짐한다. 그러려면 당장 다음 주부터 기적이 필요하다. 19일 52%대 39%로 힐러리가 리드 중인 뉴욕 경선에서 압승을 거두고 26일 펜실베이니아 등 북동부 5개주에서도 승리한 후 6월 캘리포니아까지 연승행진을 벌여야 한다. 현재 지지도로 보면 모두 ‘힐러리 랜드’다. 손에 쥔 모멘텀은 승리의 기적을 꿈꾸게 하지만 객관적 판세읽기는 ‘미션 임퍼서블’이다.
정치예측시장에서 민주후보 지명확률 91%, 대통령 당선확률 74%로 꼽히고 있는 힐러리도 고달프기는 마찬가지다. 그의 도전은 샌더스를 이기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본선 승리를 위해선 활기와 열정이 넘치는 샌더스 지지층을 이어받아야 하는데 그게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요하는 과제다. 될수록 빨리, 가능하면 뉴욕에서 승부를 확정지어야 한다. 그래야 ‘모멘텀’ 아닌 ‘대의원’이 중요해지면서 동북부 승리로 4월말 전에 경선을 사실상 마무리하고 5월부터는 본선 대비에 들어갈 수 있다.
기류는 나쁘지 않다. 최근 샌더스의 허둥대는 정책 답변과 말실수 등으로 그의 경험부족이 드러나기도 했고, 지난 1월 뉴욕타임스 지지선언에 이어 “현실과 열정적으로 싸우는 몽상가” 샌더스가 아닌 “최고로 준비된 투사이며 현실주의자”인 힐러리가 선택되어야하는 이유를 담은 뉴욕 데일리 뉴스의 지지사설도 나왔다.
어떤 정당도 대선에서 3연승을 거둔 예는 드물었다. 그런데 1948년 이후 3연승을 거둔 적 없었던 민주당이 공화당의 자중지란에 기회를 감지하면서 본선 경쟁력을 약화시키지 말라는 샌더스에 대한 당내 압박도 차츰 강화되고 있다.
뉴욕 경선을 닷새 앞둔 현재, 샌더스의 ‘모멘텀’은 아직 힐러리의 ‘대의원’에 적수가 못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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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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