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프로야구(KBO)에서 ‘타격기계’로 명성을 떨친 김현수는 이번 오프시즌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2년간 700만달러에 계약했다. KBO 출신 자유계약선수(FA)가 메이저리그 팀과 계약한 사상 첫 케이스다. 그 전까지 KBO에서 메이저리그로 직행한 류현진(LA 다저스)과 강정호(피츠버그 파이리츠), 박병호(미네소타 트윈스)는 모두 포스팅 시스템(비공개 경쟁 입찰)을 통해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다.
많은 전문가들과 팬들은 김현수가 같은 해 메이저리그에 도전한 박병호보다는 더 수월하게 메이저리그에 적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홈런타자인 박병호의 경우는 그의 파워가 과연 메이저리그에서도 통할까 하는 우려가 있었고 한국에서도 홈런이 많은 만큼 삼진도 많은 선수로 유명했기에 모든 것이 낯선 메이저리그에서 쉽게 적응할지 낙관하기 힘들었다. 반면 정교한 타격을 하는 컨택트히터인 김현수는 박병호처럼 장타에 대한 부담을 느낄 필요가 없기에 배트를 짧게 잡고 투구를 결대로 받아 치는 그의 타법을 살린다면 메이저리그 피칭에 결코 눌리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 주를 이뤘다.
심적 부담도 상대적으로 김현수가 덜해 보였다. 똑같이 새로운 무대에서 도전에 나서지만 박병호는 트윈스가 포스팅 금액으로만 1,285만달러를 전 소속팀 넥센에 지불한데다 4년간 1,200만달러 계약을 체결, 트윈스가 그에게 투자한 총액이 2,500만달러에 달한다. 반면 김현수의 경우는 FA로서 포스팅 금액이 전혀 없었고 계약도 2년간 700만달러에 불과, 전체 투자규모가 박병호의 28% 정도에 불과했다. 더구나 그의 포지션인 좌익수는 스프링 캠프 시작 때 특별한 경쟁자도 없는 무주공산이었다.
하지만 역시 세상일은 생각대로만 되는 것이 아니었다. 적응이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됐던 박병호는 아직까지 큰 어려움 없이 빅리그에 순조롭게 적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반면 김현수는 지금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최악의 상황에 직면해 있다. 시범경기에서 23타수 무안타로 출발한 김현수는 이후 상당히 나아진 모습을 보이긴 했으나 그래도 아직 타율이 1할대(.182)에 묶여 있고 장타는 하나도 없는 상태다. 오리올스는 이미 그를 개막 엔트리에 올리지 않기로 결정했고 지금은 그를 경기에도 내보내지 않은 채 마이너행 거부권을 갖고 있는 김현수에게 그 권리 행사를 포기하고 마이너행을 받아들이라고 설득과 압박을 병행하고 있다.
물론 성적이 변변치 못한 처지에서 마이너행을 거부할 명분은 별로 없지만 그래도 김현수 입장에서 마이너행은 받아들이기 힘든 결정이다. 일단 한 번 마이너로 내려가면 다시 올라오기가 극도로 힘들 것이 불 보듯 빤하기 때문이다. 마이너에서 잘해서 승격 기회를 얻으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은 지나치게 순진한 생각이다. 무엇보다 마이너에서 잘한다는 것 자체가 그리 쉬운 것이 아니다. 빅리그보다 모든 조건이 열악한 마이너리그는 김현수 같은 외국선수들에겐 오히려 메이저리그보다 더 힘든 도전이 될 가능성이 높다. 만만하게 좋을 성적을 낼 수 있는 무대가 결코 아니다. 더구나 설사 마이너에서 잘 한다고 해도 메이저리그 복귀는 모든 상황이 맞아 떨어져야만 가능하다. 메이저리그 로스터에 빈자리에 생기지 않으면 안된다. 자력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요소가 있는 것이다.
김현수의 또 다른 고민은 일단 마이너행을 수락하고 나면 현재 그에게 유일한 무기인 마이너행 거부권이 오히려 그의 메이저리그 복귀를 가로막는 부메랑으로 돌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무기가 있는 김현수를 오리올스가 결코 쉽게 메이저로 올려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사실은 2년전 역시 오리올스와 계약했다가 마이너행 거부권을 포기하고 마이너에서 시즌을 시작한 윤석민이 결국은 끝내 빅리그에 돌아오지 못하고 1년 뒤 한국행 비행기를 탄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김현수로선 일단 마이너행을 받아들이는 순간 기약 없는 여행을 떠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김현수가 언제까지 마냥 버티기도 쉽지 않다. 오리올스는 이미 그를 개막 로스터에서 제외했다고 밝혔고 벅 쇼월터 감독은 결코 그 사실을 번복할 사람이 아니다.
만약 김현수가 끝까지 마이너행을 거부한다면 오리올스는 2년 연봉 700만달러 손실을 감수하고 김현수를 방출할 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김현수는 한국 복귀를 고려해야 하는 처지가 되는데 메이저리그 도전을 이렇게 허망하게 끝내기란 힘들 것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진퇴양난은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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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우 부국장·스포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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