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이었다. TV에서 한 복싱 시합을 관전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작년 11월에 이미 열렸던 것이라고 했다. 이긴 선수에게는 세계 챔피언에게 도전할 권리가 주어지는 중요한 시합이었다. 시합은 미국에서 열렸으나 양 선수 모두 외국인들이었다. 니카라과와 일본 선수였다.
시합은 내내 흥미 진진했다. 초반에 니카라과 선수가 조금 앞서는 것 같았는데, 중^후반부터는 일본 선수가 더 잘 했다. 유효 펀치도 월등히 많았고 경쾌한 풋워크로 시합을 잘 이끌어 갔다. 12회까지 마치고 심판들의 판정을 기다렸다. 해설자는 일본 선수의 심판 전원 일치 판정승을 예견했다. 그런데 3명 심판들의 판정이 의외였다. 한 심판은 115-113으로 일본 선수의 우세, 나머지 두 심판들은 114-114 동점으로 채점했다. 결국 무승부가 선언 되었다.
시합 후 일본 선수가 링위에서 잠시 인터뷰를 하는 내용을 들었다. 판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이 있었다. 그런데 그에 대한 대답이 신선했다. “나의 잘못이다. KO를 시켰어야 했다. 그렇게 하지 못한 나의 잘못이다.” 판정에 대한 비난 보다는 자신이 더 잘할 수 있었던 부분에 대한 자책이 먼저였다.
이 선수의 이러한 대답을 기억하며 최근에 있었던 몇 가지 사건들이 떠 오른다. 그 중 하나는 요즈음 한창 진행되고 있는 미국 남자대학농구 토너먼트의 16강전에서 일어났다. 듀크 대학과 오레곤 대학 사이의 경기가 오레곤 대학의 승리로 끝났다. 관례대로 양팀 선수들과 코치들이 줄서서 걸어가며 서로에게 인사를 나눌 때였다. 듀크 대학의 코치가 오레곤 대학의 한 선수에게 무어라고 얘기를 했다. 그 내용이 나중에 알려졌다.
오레곤 대학이 게임 종료 십초 정도를 남기고 많이 앞서고 있었다. 듀크 대학도 수비를 포기했다. 그 상황에서 그 선수가 3점짜리 슛을 시도해 성공 시켰다. 그게 듀크 대학 팀 코치에게 거슬렸던 것 같다. 그 선수에게 “네가 우수한 선수라는 것은 모두 알고 있다. 그러니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지.” 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 선수는 코치에게 “맞습니다” 라고 인정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대화가 외부에 알려지고, 듀크 대학 코치가 다른 팀 선수에게 자신이 할 얘기는 아니었다고 공개 사과를 하기에 이르렀다.
또 하나의 사건은 한국 여자 프로골프의 장하나 선수와 전인지 선수 사이에서 있었던 일이다. 두 선수들 모두 세계 최고 수준으로 경쟁하는 입장에 있다고 한다. 그런데 전 선수가 싱가포르 공항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오던 중 장 선수 아버지의 가방에 부상을 입었다. 그래서 결국 전 선수는 시합에 참여를 못했는데, 장 선수는 우승했다. 그 후 장 선수가 보여 준 우승 세레머니가 논란이 되었다. 장 선수는 평소에도 흥이 나면 몸짓이 커진다고 한다. 그러나 그 시합 후 보여준 세레머니는 많은 비난을 받았다. 평소에도 좀 조심해야 하지만, 특히 자신의 부친 때문에 전 선수가 부상을 입고 시합에 참여 조차 못한 상황에서는 더욱 부적절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운동 시합에서 일어난 일들을 보면서 과연 우리에게 요구되는 적절한 겸양이 어떤 것인가를 생각해 보게 된다. 물론 겸양이 우리 모두가 추구하는 덕목의 하나라고 인정한다는 전제하에서 말이다. 우선 겸양은 마음 속에서 우러나와야 할 것임은 분명하다. 강제된 겸양은 진정한 겸양이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느끼는대로 자신의 성취나 능력을 과시하는 것 또한 옳지 않다. 그렇지만 어느 정도의 과시는 성취자가 누릴 수 있는 권한이기도 하며, 주위에 건설적 자극이 될 수 있고 필요할 수도 있다. 그래서 과연 어디가 적절한 선 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렇기에 내가 자랑하고 과시하고 싶을 때, 주위에서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까를 먼저 생각해 본다면 적절한 선을 판단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리고 확신이 안 설 때는 나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는 쪽으로 몇 걸음 물러나는 것이 절대로 손해 보는 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대학들이 내년도 신입생 합격 통보를 마친 요즈음 다시 한번 잘 생각해 보아야 할 부분이다.
<문일룡 변호사 페어팩스 카운티 교육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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