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중국 베이징에서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 아시아 7개국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때 슈퍼맨을 연기한 헨리 카빌에게 던져진 질문이 있다.‘과거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할리우드에서 슈퍼히어로 무비가 봇물터지듯 쏟아지고 있지만 언젠가는 서부극처럼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카빌은 스필버그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다.“서부극의 캐릭터가 현실성이 떨어지는 반면 슈퍼히어로는 그 자체로 신화의 주인공이라 슈퍼히어로 무비는 계속될 것”이라는 것이다.‘배트맨 대 슈퍼맨’은 화면을 꽉꽉 채운 밀도 높은 영상과 묵직한 액션으로 장대하게 써내려간 현대판 신화다. 영웅의 대서사시는 진지하고 엄숙하다.‘배트맨과 슈퍼맨이 싸우면 누가 이기는지’로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한 이 영화는 스토리가 전개되면서 ‘누가’ 이 둘을 싸우게 만들었는지가 중요해진다.
최근 몇 년 간 만화를 찢고 나온 슈퍼히어로의 활약은 대단했다. ‘어벤저스’시리즈가 국내에서 1000만 관객을 모으면서 미국산 슈퍼히어로는 한결 친숙해졌다. 흥행성적에 힘입어 아이언맨이나 스파이더맨, 헐크가 더 대중적이 됐지만 자고로 슈퍼히어로의 대명사는 슈퍼맨과 배트맨이다. 이들 슈퍼히어로는 출신성분에 따라 ‘마블코믹스’와 ‘DC코믹스’파로 나뉜다. 슈퍼맨과 배트맨이 DC코믹스파라면 ‘어벤저스’에 나온 슈퍼히어로들은 마블코믹스 출신이다. 아이언맨과 헐크, 스파이더맨, 엑스맨이 대표적이다. ‘마블스튜디오’는 마블코믹스 히어로를 속속 스크린으로 옮겨왔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라 명명하며 각각의 히어로가 주인공인 영화와 이들을 한 데 모은 대작을 매년 선보이고 있다.
‘배트맨 대 슈퍼맨’은 DC코믹스도 마블코믹스에 이어 ‘DC유니버스’를 시작한다는 신호탄이다. 마블코믹스 무비가 상대적으로 밝고 경쾌한 분위기라면 ‘배트맨 대 슈퍼맨’은 그 반대다. 어둡고 진지하며 사실적이다. ‘다크 나이트’ 시리즈나 ‘슈퍼맨’의 트레이드마크였던 빨간 팬티를 벗기고 새롭게 리부트한 ‘맨 오브 스틸’(2013)을 떠올리면 된다. 메가폰을 잡은 잭 스나이더는 ‘300’(2006)과 ‘왓치맨’(2009) 그리고 ‘맨 오브 스틸’을 연출한 감독이다.
‘배트맨 대 슈퍼맨’에서 슈퍼맨(헨리 카빌)과 배트맨(벤 애플렉)은 영화 속 허구의 영웅이 아니라 관객과 동시대를 살아가는 존재다. 영화의 세트부터 스토리, 액션신까지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두 영웅이 실제로 존재하다면 어떤 모습일지, 그 능력과 행동의 결과로 어떤 복잡한 결과가 야기될지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무릇 블록버스터는 팝콘 보며 즐기는 영화라지만 이 영화는 곳곳에 숨겨놓은 상징과 은유로 철학하기를 유도한다. ‘배트맨 대 슈퍼맨’의 강점이자 단점이다.
‘배트맨 대 슈퍼맨’에서 주요 갈등 중 하나는 슈퍼맨에게 영웅적 행동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묻는 부분이다. 슈퍼맨은 외계인 조드 장군의 지구 침공, 일명 ‘블랙 제로 사건’ 당시 온 힘을 다해 인류를 구했다. 도시 곳곳에 슈퍼맨 석상이 세워지고, 현대판 메시아로 추앙받는다. ‘슈퍼맨교’의 탄생이다. 동시에 슈퍼맨의 절대적 힘을 무서워하고 우려하는 이들이 생겨난다.
슈퍼맨은 지구인이 키웠지만 원래 크립톤 행성의 외계인이다. 만약 슈퍼맨이 인류의 편에 서지 않으면 인류는 지구의 주인이 아닌 노예가 되는 것이다. 배트맨이 슈퍼맨을 비딱한 시선으로 예의주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언론에서는 슈퍼맨을 둘러싸고 격론이 펼쳐진다. 설상가상 연인이자 기자인 로이스 레인(에이미 애덤스)을 구출하는 과정에서 무고한 희생자가 발생한 것과 관련, 비난이 쏟아진다. 급기야 슈퍼맨은 쫄쫄이 복장을 한 채 미국의회에 출두한다.
스나이더 감독은 이 영화를 두고 ‘배트맨의 관점에서 본 슈퍼맨의 이야기’라고 밝혔다. 그 때문일까? 영화는 브루스 웨인(배트맨)의 어린 시절 그 비극적 사고로 문을 연다. 배트맨은 알려진대로 어릴 적 트라우마로 히어로가 된 책임감 과다형 인물이다. 눈앞에서 부모가 노상강도에게 죽는 걸 목도한 그는 자신의 전 재산과 삶을 범죄소탕에 바치고 있다. 그는 이 영화에서 다시 한 번 아픔을 겪는다. 조드 장군과 슈퍼맨의 대결로 회사 건물이 무너져 유사가족인 직원들을 한순간에 잃은 것이다.
이러한 상처는 ‘다크 나이트’시리즈로 친숙한 크리스천 베일이 연기한 배트맨과 새로운 배트맨의 가장 큰 차이다. 배트맨은 나이도 들어 좀 지쳐있다. 분노에 사로잡혀 판단력이 흐려진 부분도 있다. 애플렉은 베일의 배트맨을 잊게 만들며 자신만의 배트맨을 성공적으로 선보인다. 193㎝의 장신(배트맨 부츠를 신으면 198㎝)인 그는 상대적으로 젊은 슈퍼맨을 위협하는 존재로서 어떤 위엄이 느껴진다. 묵직한 갑옷 타입의 배트맨 슈트는 애플렉의 선 굵은 외모와 잘 어울린다.
젊고 캐주얼한 이미지의 렉스 루터(제시 아이젠버그)는 신선하다. ‘슈퍼맨’ 시리즈에서 슈퍼맨의 적수인 악당 루터는 ‘배트맨 대 슈퍼맨’에서도 위험한 적수다. 그는 배트맨과 마찬가지로 억만장자에 고아다. 차이라면 절대 권력에 집착한다는 점이다. 악랄한 말장난과 농담으로 사람을 현혹하는 똑똑한 인간이지만 정신적으로 큰 문제가 있다. 요즘 한국 드라마나 영화에서 ‘개망나니 재벌3세’가 인기 악역으로 부상했다. 이 영화에서 루터가 바로 그런 존재다.
갈등의 중심축인 세 캐릭터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힘과 정의를 어떻게 해석하고, 어린 시절 자신들의 아버지와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를 비교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새삼 이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슈퍼맨이 얼마나 행복한 히어로인지 알게 된다. 친부모가 아닌 양부모의 손에 길러졌지만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그는 정신적으로 가장 건강하다. 사랑하는 엄마와 연인도 곁에 있다. 지켜야할 사람이 있는 슈퍼맨은 셋 중 가장 약한듯 강하다. 반면 학대받고 자란 외로운 루터는 강한듯 약하다. 배트맨 곁을 지키는 유사 아버지 ‘앨프리드’같은 존재도 없다.
렉터가 만들어낸 괴물과 슈퍼맨, 배트맨, 원더우먼이 맞붙는 후반부 액션신은 마치 신들의 전쟁을 보는 듯하다. 지극히 현실적인 이 영화가 어느덧 미국의 신화가 되는 순간이다. 특히 슈퍼맨은 부활이 예고된 메시아로 다가온다. 현실에 발붙인 배트맨은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모범적 모델이다.
오늘날 렉터는 점점 늘고 배트맨은 찾아볼 길 없다. 그 반대가 된다면 살만한 세상이 될 텐데 말이다. 인간의 선을 믿는 배트맨의 독백에 희망을 걸고 싶어진다. 기대를 모은 원더우먼은 맛보기로 등장한다. 그녀의 본격적인 매력은 내년 6월 개봉하는 ‘원더우먼’에서 확인하자. 만화에서는 슈퍼맨과 사귀나 스크린에서는 배트맨과 원더우먼의 로맨스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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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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