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한국 언론 보도에 “갑질”이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이제는 그 용어 사용이 일반화 되고 있다고 한다. 성균관대 로스쿨의 김홍엽 교수에 의하면 “갑(甲)”에는 상대적으로 우월적 지위자에 의하여 불공정한 행위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부정적 평가를 내포하고 있다고 한다. 거기에다 행위나 일을 낮잡는 뜻의 “질”을 더해 갑질이라는 투박하고 거친 어감의 원색적 표현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갑의 횡포에 대한 사회 일반의 견제 내지 감시적 심리가 담겨있다고 한다.
우리들이 기억할 수 있는 대표적인 갑질로써 땅콩회항과 라면상무 사건들을 꼽을 수 있겠다. 또 최근에는 한국의 외교관 관련 갑질 사건 보도도 있다. 한국의 외교부가 조사에 착수했다고 하는 이 사건에서는 해당 외교관의 행정직원에 대한 막말과 범죄인 취급, 부하 외교관에 대한 불합리한 질책과 보복성 인사조치 등이 논란의 대상이라고 한다. 사실 여하는 조사가 끝나 봐야 알겠지만 이런 일에 거론된다는 자체만으로도 스스로 부끄러워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이러한 갑질들이 꼭 한국 사회에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 주 미국 연방하원의 정부감독개혁위원회가 미시간 주 플린트 시의 식수오염 사태에 대한 청문회를 열었다. 목요일에 미시간 주 주지사와 연방환경청장이 출석해 의원들의 질문에 대답했다. 이 식수오염 사태의 심각성은 해당 시 주민들 뿐 아니라 미국 국민들 전체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하다. 그러기에 국민을 대표하는 의원들이 신랄하게 책임을 추궁할 수 있다. 그러나 그래도 그 과정에서 갑질을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금요일 아침 출근 길 차안에서 라디오로 전날 청문회 뉴스를 들었다. 청문회장에서 환경청장을 향한 한 의원의 발언 소리가 들렸다. 그것을 듣는 순간 나에게는 공감보다는 반감이 앞섰다. 환경청장이 연방정부의 환경 담당 총책임자로서 연방정부의 미흡했던 대책에 대해 지적을 받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 지적에 환경청장 개인에 대한 인격 모욕으로 들릴 수 있는 어조가 사용될 필요는 없다. 의원이면 국민을 대표하지만 그렇기에 또한 더욱 모범적인 태도를 보여야 한다. 점잖은 표현과 어조로도 국민 대표로서의 감독 기능을 충분히 수행할 수 있다.
그리고 당일 사무실에 도착해 신문에 난 주요 뉴스들을 읽다가 또 다른 연방하원의원의 청문회장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볼 수 있었다. 미시간 주 주지사를 손가락질 하며 질책하는 장면이었다. 그것도 갑질이라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물론 청문회장에서 갑과 을의 역할을 맡은 사람들이 있고, 각자 자신이 맡은 역에 충실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러나 그게 손가락질이나 고함, 빈정댐을 동반할 때 나에게는 천박한 갑질로 비쳐진다.
나도 주민들의 투표로 선출된 교육위원으로서 종종 갑의 역할을 맡는다. 학교장, 교사, 그리고 교육청 직원들과 일대일 대화를 나눌 때도 그렇고, 교육위윈회의 공개회의 석상에서 교육감 그리고 그를 보좌하는 스탭진들과 사안에 따라 질문이나 토론을 할 경우에도 그렇다. 때로는 그들이 제공하는 답변이나 자료들 그리고 견지하는 입장들이 마음에 들지 않기도 하다. 그럴 적마다 나의 반응이 갑질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한다. 물론 그게 항상 말처럼 쉽지는 않다. 그러나 상대의 대답이나 입장이 마음에 안들고 화가 날 수록 감정을 다스리는 것처럼 중요한 것은 없다. 그것은 상대를 인격체로 존중하는 차원에서도 그렇지만 일단 감정을 제어하지 못한채 행해지는 발언이나 행위는 효과적이지도 않을 뿐더러 도덕적 권위를 상실하기 때문이다.
교육위원이라고 우수한 것도, 교육청 직원이라고 열등한 것도 아니다. 그저 각자 다른 역할을 맡고 있을 뿐이다. “을”도 한 가정의 가장일 수 있고, 어떤 부모들의 귀한 자식일 수도 있다. 서로가 각자의 맡은 위치에서 상대를 인격체로 존중하고, 배려한다면 우리 사회에서 갑질이라는 비속어를 추방할 수 있게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오늘도 남에게 갑질한다 여겨지지 않도록 노력하자고 다짐한다. 그 누구도 갑질을 당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이다.
<문일룡 변호사 페어팩스 카운티 교육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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