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보통사람들의 평화로운 일상이 무방비상태에서 참혹하게 테러 당했다. 지난해 말 파리와 샌버나디노의 상처가 채 아물지도 않았는데 이번엔 브뤼셀이 피 흘리고 있다. 다시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공화국(IS)의 자살폭탄 공격이다. 지난 몇 달 계속 예고된 테러라니 놀랍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공항과 지하철역에서 30여명을 살해하고 200여명을 다치게 한 대규모 공격은 아무리 테러가 ‘뉴 노멀’이 된 시대라 해도 전 세계를 분노와 공포에 휩싸이게 할 만큼 충격적이다.
크고 작은 테러가 지구상 곳곳에서 잇달아 발생할 때마다 국제사회가 한 목소리로 비난하고 공동의 응징을 다짐해 왔지만 대테러작전의 완수는 아직 갈 길이 요원하다. 파리 테러가 IS를 시리아와 이라크 본거지에서 격퇴시킬 수 있다는 희망을 어둡게 했다면, 이번 브뤼셀 공격은 이 조직적인 테러집단이 수사당국보다 한 발 앞서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IS는 끈질긴 자생력을 과시한다. 중동의 전투에서 패한 후 IS 병력은 5분의 1로 감소했다는데 민간인을 겨냥하는 ‘소프트 타깃’ 테러의 위협은 줄어들지 않았다. 언제 어디서든지 목숨을 던져 테러를 실행하겠다는 ‘자살부대’와 함께 그들의 선전에 세뇌당한 세계 곳곳의 추종자들, 이들을 훈련하고 테러를 모의하는 비상한 두뇌들을 확보한 IS는 장비와 자금을 갖춘 강력한 테러집단으로 계속 성장하고 있다.
대서양 건너 유럽에서 폭탄이 터질 때마다 미국인들은 함께 몸을 떨며 불안해 한다 : 다음은 미국인가? 미국의 테러 위협은 얼마나 큰가?
지난 12월 캘리포니아 주 샌버나디노 테러가 증명하듯 미국도 IS 테러의 안전지대는 아니다. 그러나 유럽과는 다르다고 안보전문가들은 강조한다. 유럽에선 중동이 가깝고 국경이 허술해 테러범들의 이동이 자유롭다. 미국의 테러대처 능력은 유럽보다 훨씬 강력하다. 가장 큰 차이는 유럽과 미국의 무슬림사회다.
벨기에의 무슬림 거주지역은 높은 실업률과 빈곤에 시달리며 주류사회에서 소외된 채 게토화 되어 있다. 세계대전 당시 노동력 부족한 유럽에 임시 게스트워커로 왔다가 주저앉은 농부들로부터 시작된 이곳 무슬림사회는 계속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고소득 고학력으로 상향 이동할 접근 기회가 거의 주어지지 않았다. 지금도 거주민 상당수가 새로운 사회에 동화를 꺼리며 중동의 엄격한 규율에 의해 살고 있다. 지난주에 체포된 파리 테러의 주범, 그 끔찍한 범죄자도 동족이라는 이유로 넉 달이나 숨어 지낼 수 있었을 만큼 폐쇄된 사회다.
미국의 무슬림커뮤니티는 주류에 원만하게 동화된 사회다. 그들의 교육 및 소득수준도 평균미국인과 비슷하다. 다양한 인종과 민족이 하나의 거대한 용광로 속에서 통합하는 이민물결의 문화, 헌법이 만인에게 보장하는 종교자유와 기본 민권 등 미국의 핵심가치관이 무슬림들에게 미국을 유럽보다 안전한 곳으로 만들어 왔다.
그런데 파리에 이어 브뤼셀의 테러가 미 대선을 휘저으면서 이 핵심가치관이 훼손 위협을 받고 있다. 공화당의 선두권 주자인 도널드 트럼프와 테드 크루즈가 테러 공포를 이용해 쏟아낸 이른바 ‘테러 대책’들은 강경을 넘어 ‘위헌’의 소지마저 다분하다.
22일 테러발생 직후 폭스뉴스에 등장한 트럼프의 첫 반응은 “무슬림 입국금지”였다. 파리 테러 이후 제안해 논란을 불렀던 이 ‘슬로건’을 다시 외치며 “국경을 막아라”고 촉구했나 하면 테러용의자에 대한 불법 고문 합법화까지 역설했다. 9.11 테러이후 미국내에서 발생한 급진 이슬람 테러들은 미국시민과 합법 거주민에 의해 자행되었다는 사실을 그가 알고는 있는지 모르겠다.
크루즈도 밀리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반무슬림 정서’ 조장에 합세했다. 그는 국경강화와 난민유입 차단에 더해 무슬림커뮤니티에 대한 경찰의 순찰을 제안했다. 특정 종교를 차별적으로 겨냥하는 위헌 소지에 더해 상당히 위험한 발상이다. 미국의 대테러당국이 IS에 대한 깊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소스인 무슬림사회를 등 돌리게 하는 결과를 빚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를 방문 중인 오바마 대통령이 어제 크루즈의 이 경솔한 제안에 한 마디 했다. 자신이 막 들렀던 쿠바가 감시체제 운영 국가임을 상기시키면서 “바로 그 때문에 크루즈 상원의원의 아버지가 쿠바에서 자유의 나라인 미국으로 탈출해 온 것”이라고.
대테러 전쟁은 미국과 동맹국 등 자유세계 전체가 단합해 싸워도 쉽게 끝낼 수 없는 긴 싸움이 될 것이다. “위험의 최소화, 방어의 최대화, 그리고 개인의 자유 보장”이라는 안보의 세 가지 기본요소를 유지하며 치러야하는 장기전에 필요한 것은 강하면서도 견고하고 합리적인 리더십이다. 무책임한 정치적 선동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무슬림사회가 미국의 우방이 되지 않으면 IS와의 전쟁에선 승리할 수 없다. IS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유럽 못지않게 미국에도 테러 위험이 높아질 것이다. 평화로운 일상을 지키고 싶다면 모두가 테러예방에 힘을 보태야 한다. 그중 하나가 유권자들의 진지한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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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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