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 강의 낙조는 지글지글 타오르는 태양의 서사시였다.
아마존 강을 배로 세 번 건넜다.
한 번은 객실에서 두 번은 해먹을 이용해서. 그리고 두려울 정도의 아름다움을 보았다.
새 꼬리 깃털 끝에 달린 듯한 콜롬비아의 최전방 레티시아. 이곳은 전세계에서 가장 흥미로운 국경 마을중 하나다. 레티시아에서 버스를 타면 눈 깜짝할 새 브라질 타바팅가가나오고, 보트 타고 강을 건너면 페루산타로사 섬에서 맥주를 벌컥벌컥 마실 수 있다. 그런데 국경이 없다. 아니 있지만 느낄 수 없다. 이 일대에서 출입국 스탬프는 실제 국경선에서 찍지 않는다. 브라질 타바팅가에서 마나우스행 선박에 승선하기 하루 전,불법으로(?) 국경을 넘어 마을 깊숙이 있는 연방경찰서에서 브라질 입국 스탬프를 찍었다. 이 아마존 지대에서만 용인되는 국경의 신문화였다.
브라질 타바팅가에서 마나우스로 넘어가는 방법은 두 가지다. 비행기냐 화물선이냐. 저렴한 특가 항공권에 유혹당할 법도 하지만, 평생 아마존 강을 건너는 경험을 몇 번이나 해보겠냐는 일념으로 선박에 몰방했다.
진짜 고민은 선박 티켓을 끊기 바로 직전에 터졌다. 타바팅가에서 마나우스로 가는 3일간의 숙소 타입을 택해야 했다. 객실? 아니면 해먹? 편의를 따진다면 무조건 객실이지만 가격 차가 2.5배에 달했다.
레티시아는 콜롬비아의 최강 촌구석이지만, 달러 환율이 어느 대도시보다 후했다. 페루에서 달러 통용이 활발한 연유라 했다. 단, 구겨진 돈은절대 사양한다. 은행에서 갓 발행한 것 같은 빳빳한 돈만 제값을 받을 수있다. 헌 돈은 받는다 해도 몹시 부당한 환율을 적용했다.
“객실로 하자!”우리가 탄 선박 이름은 voyager V.
5번째 버전에 해당하니 그만큼 업그레이드 되었으리. 호의호식할 크루즈수준은 아니라도 그 반 푼어치는 따라갈 수준일 거라 생각했다. 짐작대로 우린 완벽하게 틀렸다.
마침내 승선하는 날, 택시는 레티시아 숙소에서 타바팅가의 선착장으로 향하는 비포장도로를 쏜살 같이달렸다. 긴 기다림 끝에 승선 명령이떨어지고 배낭 검사가 진행됐다.
앞사람의 배낭이 총기를 소유한 보안 경찰에 의해 거의 난도질 되었다.
‘샅샅이’란 단어를 실행에 옮기는 멋진 청년들이었다. 다시 짐을 싸는 건오롯이 여행자의 몫. 본능적으로 이럴 땐 웃는 게 최고란 걸 알고 있었다. 싱긋싱긋 웃음에 대충 살핀 경찰은 곧 승선을 허가했다.
자, 우리의 3일 밤을 책임질 객실로 입장이요. 설마 교도소 독방 같은 이방이? 이층 침대와 바로 붙은 붙박이선반, 이게 전부였다. 다행히 열쇠는 있었다. 매점 점원과 우리만 사용할 화장실 키를 받는 특권은 있었다. 해먹 이용자가 머무는 3층에 오르니 객실과 그다지 큰 차이가 있어 보이지않았다. 물론 20명당 1명꼴의 화장실쟁탈전이 벌어질 순 있겠지만.
매점 앞에 널브러진 플라스틱 의자를 끌어와 문 앞에 앉았다. 아마존의 낮은 참 무덤덤했다. 그냥 하늘이요, 숲이었다. 에메랄드 빛 강물 대신탁류가 흐르고 있었다.
찐득찐득한 바람을 맞으며 성의 없이 풍경에 시선을 내어줄 때, 저녁 먹을 시간이란다. 어? 오후 4시인데? 레시티아 숙소 주인 토마스는 오전 6시, 오전 11시, 그리고 오후 5시에 일정하게 식사가 제공될 거란 정보를귀띔해 준 바 있었다. 브라질은 콜롬비아보다 1시간 느리다. 아, 병원에 입원한 꼴이로구나. 때를 놓쳐 쫄쫄 굶을 걱정도 없었다. 병원처럼 내 무릎앞에 쟁반을 대령하진 않지만, 힘 좋은 선원이 때가 되면 언제나 객실 문을 세차게 두들겼다.
1층으로 내려가니 난민촌이었다.
필시 화물칸인데 짐과 사람이 구분없이 뒤섞여 있었다. 그곳을 통과해뱃머리 반대편으로 가면 식당이 나왔다. 매일 3번 승객들은 미워도 싫어도 이곳에서 조우할 운명이었다.
모든 메뉴는 콜롬비아와 브라질의 상호협정 음식 같았다. 삶은 팥과 밥,파스타, 치킨 수프나 구이 등 주 메뉴는 콜롬비아와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차이라면 오로지 ‘브라질너트’였다. 아마존 강 유역엔 줄기가 우산살처럼 뻗은,‘ 숲의 천장’이라 불리는 나무가 있다. 열매의 속을 까면 보이는 24개의 신비한 씨앗이 바로 브라질 너트인데, 이를 곱게 빻은 가루가 테이블 위에 있었다. 옆 사람 따라 아무 데나 뿌려 먹어봤다. 깨처럼 특유의 맛이 있진 않았는데, 뿌려 먹지 않으면 허전한 명불허전 식재료였다.
다음 날 아침, 식사를 하고 오니 선박은 한 작은 마을에 정박하는 중이었다. 선착장에선 보통 화물과 사람이 동시에 이동 몸살을 겪는데, 이 마을은 선착장이 순식간에 활어 공판장으로 돌변했다. 아마존 생존자들이선박 시간에 맞춰 고깃배를 타고 삼삼오오 모여 활어 거래를 시작한 터였다. 사는 자와 파는 자, 눈치 보는자의 비린내 나는 해학이 그곳에 있었다. 뭐니뭐니해도 우리가 가장 사랑했던 시간은 아마존 강의 탁류가 크리스털처럼 빛나는 순간이었다.
오후 5시경 낙조 전후에 펼쳐지는 강의 서사시랄까. 이즈음 아마존은 가히 신데렐라가 되었다. 금세 폭풍이 내려칠 듯 빨라지는 조류에 옴짝달싹 못하게 하다가 회색 캔버스에 그려 넣은 쌍무지개의 환희를 선보였다. 가끔은 뚝 반으로 갈라놓은듯 하늘의 왼쪽은 회색, 오른쪽은 파란색으로 채색되었다. 열대우림을 수평선으로 하늘과 강이 데칼코마니를 그린 장면 앞에선 먹먹해졌다. 눈물을 흘렸는지도 모르겠다. 모든 게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이 순간만큼은.
3일을 꼬박 아마존 강에서 보내고 마나우스에 닿기 직전, 선장의 객실 앞에선 마지막 밤을 축하하는 바비큐 연기가 자욱했다. 우린 선박 내에서 무한 반복되던 대중가요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돌이켜보니 배를 타고있는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안심했다. 버리는 시간이 아마존강이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3층에 있는 해먹 칸. 객실에 머물며 일부러 짐을 어질러두었다. 노트북도 자주 열었다. 그래야 이곳보다 좋은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가 왔다!” 영화‘어벤저스’의 수퍼 히어로처럼 선원들은 정박하는 마을 앞에서 늘 팔짱을 끼고 기세등등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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