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두 주 전이다. 버지니아주 알렉산드리아 시에 위치한 티씨 윌리암스(티씨) 고등학교를 방문했다. 유명한 “Remember the Titans”라는 제목의 영화에 나온 바로 그 학교이다. 나는 1974년 고등학교 2학년 때 이민을 와서 다시 고등학교 1학년부터 공부해 이 학교를 졸업했다. 그 날 방문은 아직도 그 학교에서 가르치고 계시는 옛 은사님을 찾아 뵙기 위해서였다. 그 사이 티씨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내가 다니던 당시의 학교 건물 옆에 약 10년 전에 9천만불 정도를 들여 새 건물을 지어 모든 교실들과 그 외 시설들을 옮겼다. 옛 건물은 헐려 주차장으로 변했다.
미리 약속하고 찾아간 시간에 선생님은 미적분을 가르치고 계셨다. 내가 11학년 때 Algebra 5라고 불리던 미적분준비 과목을 가르쳤던 선생님은 이제 84세이신데 57년째 교직에 몸담고 계시다. 티씨에서 48년, 그리고 그 전 학교에서 9년을 가르치셨다. 적어도 1년 정도는 더 하고 싶다고 하신다. 가르치는게 그냥 좋으시단다.
이번 여름 방학에는 교사를 대상으로 하는 1주간의 AP물리 수업도 들으실 계획 이란다. 이유는 가르치는 미적분과 미분방정식이 AP물리 과목에서 많이 사용된다고 하는데 실제로 어떤 지 보고 싶어서라고 하셨다. 그리고 미분 방정식은 수준이 꽤 높기에 당신도 수업 준비에 상당히 많은 시간을 들인다고 덧붙이셨다. 거의 60년간 수학을 가르치셨다면 이제는 아무런 준비 없이도 어느 수준의 수학이든 쉽게 가르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아직도 수업 준비에 철저하신 선생님이 더욱 존경스러워졌다.
40년 전에 선생님은 항상 몸 전체에 백묵가루를 뒤집어 쓰고 계셨다. 칠판에 쓰신 것을 지울 땐 지우개 보다는 그냥 손바닥을 사용하고 나중에 양복 바지에 손을 슥슥 닦아내곤 하셨다. 툭하면 나보고 한국으로 돌아가라고 장난삼아 놀려대던 어느 백인 급우를 내가 어느날 참을 수 없어 수업이 끝나자마자 멱살을 잡고 벽에다 밀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나에게 야단 한마디 안 치시고 그냥 말리기만 하셨던 선생님이셨다.
선생님 교실에 앉아 한 시간 정도 수업을 지켜 보았다. 백묵은 더 이상 사용하지 않으셨다. 덕분에 옷은 깨끗했다. 학생들의 태도는 진지했다. 17명의 학생들이 있었는데 남녀 학생들 비율이 비슷해 보였다. 내가 다니던 시절에 비해 수준 높은 수학 과목을 수강하는 여학생 비율이 많이 증가한 것 같았다.
알렉산드리아 시에서 유일한 공립 고등학교인 티씨에서 백인 학생들은 20퍼센트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 그 수업을 듣는 학생들의 절반 정도는 백인인 것 같았다. 나머지 학생들 중 절반 정도가 아시안계, 그리고 나머지는 중동계로 보였다. 흑인은 1명 밖에 없어 보였다. 학교 전체 학생들 중 35퍼센트 정도가 흑인임을 고려할 때 이는 내가 다니던 40년 전이나 별다름 없이 흑인 학생들의 수학 수준이 상대적으로 처진 모습을 보이는 듯했다.
옛날을 회상하시던 선생님은 70년대 중반부터 한국과 월남에서 온 학생들이 수학을 꽤 잘했다고 말씀하셨다. 지금은 중동이나 인도 출신들도 잘한다고 했다. 티씨는 40년 전도 그랬지만 지금도 빈곤층 흑인과 히스패닉 학생들의 비율이 아주 높다. 전체적으로 학업 성취도가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으며, 중산층 주민들이 자기 자녀들을 이 학교에 보내길 꺼려하기도 한다. 그래도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들은 제법 우수한 대학에 진학하고 있다. 내가 졸업하던 해에는 나와 같은 수학 반 출신 학생들 중 하버드에 2, 그리고 프린스턴, MIT, 브라운과 유펜에 각각 한 명씩 입학했다. 페어팩스 카운티의 여느 학교에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좋은 결과였다.
미국에 이민 온 지 얼마 안되어 여러가지로 어려워했던 시절 항상 따뜻하게 대해 주었던 老은사를 늦게나마 학교로 찾아가 뵌 것은 아주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80대 중반의 나이에도 변함없이 열정적으로 가르치고 계시는 선생님의 모습은 나에게도 큰 도전이 되었다. 나도 90세까지는 쉬지 말아야 할까 보다.
<문일룡 변호사 페어팩스 카운티 교육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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