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퍼 화요일 2’로 불린 8일 밤을 뒤흔든 최대 반전의 주인공은 버니 샌더스였다. 폴리티코가 ‘버니의 미시간 기적’으로 표현한 이날의 승리로 그는 서둘러 본선에 돌입하려던 힐러리 클린턴의 독주에 제동을 걸면서 민주당 경선의 조기종영을 온몸으로 막아냈다.
2016년 대선 민주당 경선후보 샌더스에게 미시간 주는 사실상 최후의 보루였다. 지난주 수퍼 화요일 힐러리 압승이후 푹 기세 꺾인 샌더스 돌풍을 되살리기 위해선 반드시 이겨야 했던 경선이었다. 막연한 기대가 아니었다. 미시간은 “불평등이 사라지는 세상”을 약속한 그의 메시지가 가장 깊게, 가장 넓게 퍼질 수 있는 비옥한 토양의 표밭이다. 제조업 쇠락으로 일자리와 집을 잃고 분노와 좌절을 쌓아온 근로계층과 학생인구, 거기에 무소속 유권자가 대세를 이루는 곳…몇 달 전부터 샌더스 팀이 시간과 돈을 투자해온 지역이었다.
그러나 여론조사에 나타난 지지율 차이가 워낙 컸다. 투표 직전까지 힐러리가 21.4 포인트나 앞서고 있었다. 도시부터 농촌까지 곳곳을 발로 누비는 캠페인과 적극적 광고공세에 나서며 반전의 기류는 감지했지만 솔직히 샌더스 자신도 이기리라고는 기대하지 못했다. 승리연설 준비도 제대로 안했을 정도다.
샌더스 49.8%, 힐러리 48.3%, 1.5포인트 차이의 실전과는 너무 달랐던 여론조사의 원인이 규명되기까지에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미시간 반전의 영향은 급속하게, 확실하게 드러날 것이다.
샌더스 반전승리의 첫 요인은 반무역정서다. 샌더스가 처음부터 단호하게 반대하고 힐러리가 미적미적 나중에야 반대한 오바마의 환태평양동반자협정과 빌 클린턴의 북미자유협정은 미시간을 비롯, 다음 경선지역인 오하이오와 일리노이 등 쇠락한 북부와 중서부의 제조업 지대, 러스트 벨트(Rust Belt)에선 실업자를 양산하고 중산층을 몰락시킨 공공의 적으로 간주된다.
자유무역협정을 기업만 살찌우는 ‘재앙’이라고 으르렁대며 근로자들의 고통을 감싸 안는 후보와 20여년간 자신들을 괴롭힌 무역협정에 서명한 대통령의 부인, 둘 중 누구를 택하겠는가. 옳고 그름에 상관없이 ‘무역협정’은 이렇게 힐러리에게 또 하나 걸림돌로 부상했다.
미시간의 인구분포는 힐러리가 압승한 남부 주들과는 다르다. 백인이 75%를 차지한다. 샌더스는 백인표의 60%를 얻어냈다. 그의 핵심표밭인 젊은 연령층 못지않게 백인남성 근로계층이 적극 지지를 보냈다. 경제 불평등과 기성정계에 분노하는 좌절한 유권자들, 공화당에서 도널드 트럼프의 지지층인 ‘성난 백인 남성들’이 민주당에서도 샌더스 캠페인을 살려냈다고 월스트릿저널은 분석한다.
트럼프에게 날개를 달아준 백인남성 표밭의 영향력 비중은 금년 본선에서도 지켜볼만한 상당히 흥미로운 부분이다. 힐러리와 클린턴의 본선 가상대결은 51% 대 38%로 힐러리 승리가 예상되었지만 백인남성 표밭에선 53% 대 35%로 트럼프가 우세했다.
남부 패배, 흑인 표밭과의 거리, 대의원 부족 등 불리한 여건들과 관계없이 7월 전당대회까지 계속 싸울 것을 다짐한 샌더스는 “미시간 승리는 우리의 정치 혁명이 전국에서 강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솔직히 가장 강력한 지역엔 아직 가지도 않았다”고 자신했다. 과장만은 아니다.
8일의 경선지 중 미시시피는 힐러리가 유리한 남부 ‘딥 사우스’의 마지막 경선이었고 미시간은 ‘러스트 벨트’의 첫 번째 경선지다. 이제 선거일정은 샌더스가 싸워볼만한 지역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특히 미시간과 유권자 분포가 비슷한 오하이오, 펜실베니아, 위스콘신 등엔 반무역정서와 백인남성 근로계층의 분노지수도 상당히 높다. 지지율은 대부분 지역에서 힐러리가 훨씬 앞서고 있지만 이젠 샌더스가 “여론조사는 무시하라”고 큰 소리 칠 근거도 생겼다. 미시간에선 흑인표밭 잠식에도 얼마간 성공했다.
후보라면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새로운 모멘텀과 넉넉한 선거자금, 충분한 자원봉사자에 강렬한 메시지까지 갖춘 샌더스이지만 경선 승리의 전망은 여전히 캄캄하다. 경선은 모멘텀이나 미디어 조명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대의원 숫자”라고 2008년 오바마 승리의 주역 데이빗 플루프는 지적한다. 힐러리는 이미 승리에 필요한 대의원 숫자 ‘매직넘버’의 절반을 넘겨 9일 현재 샌더스보다 두 배가 넘는 1,223명을 확보했다.
이처럼 선두주자 지위가 손상되지는 않았지만 힐러리의 걸음은 상당히 무거워졌다. 납수도물 중독 해결에 앞장서며 관심 쏟았던 미시간 주 플린트에서도 샌더스에게 패배했고 샌더스가 “2009년 자동차산업 구제안에 반대했다”고 몰아간 공격도 역효과를 낳았다.
자신의 메시지는 미지근하고, 상대방 공격 전략은 허술하다. 본선 라이벌 1순위인 트럼프의 입지는 계속 강화되는데 힐러리는 캠페인 재정비부터 시작해야할 처지다.
타들어가는 힐러리의 심정엔 아랑곳없이 민주당 유권자들은 경선의 장기상영을 선호하는 분위기다. 후보선택에서 공화당보다 훨씬 여유가 있어서일 것이다. 미시간 출구조사에서 3분의 2가 힐러리 ‘민주당후보 지명’에 만족한다고 답했으며 “샌더스가 되어도 좋다”는 응답자도 10명 중 7명이나 되었다. 다음 주엔 또 어떤 반전을 선사할지 2016년 대선이 점점 흥미로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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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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