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대선이 버락 오바마의 선거였다면 2016년 대선은, 최소한 공화당 경선은, 도널드 트럼프의 선거다. 보수표밭의 분노와 좌절에 편승해 선거판을 휩쓸며 공화당을 뒤흔들어대는 트럼프 광풍은 3월1일 수퍼 화요일에도 다시 한 번 그 위력을 과시했다.
경선이 치러진 11개주 중 7곳을 석권한 트럼프의 압승은 두 가지를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 트럼프 지지층의 폭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넓고, ‘트럼프 대항마’ 후보 단일화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결과는 심각하다. 눈앞에 다가오고 있는 ‘트럼프 후보지명’을 둘러싼 찬반 대립이 ‘링컨과 레이건의 유서 깊은 올드 그랜드 파티’ 공화당을 와장창 분열시키고 있다.
“화려한 뉴요커는 남부에서 승리하지 못한다”는 정치적 불문율도 깨졌다. 북동부 뉴잉글랜드 지역에서 백인 근로계층과 중도파의 지지를 끌어낸 뉴욕의 부동산 재벌 트럼프는 공화당의 핵심표밭 남부의 복음주의 유권자들에게도 어필하면서 버지니아에선 평소 잠자던 표밭도 깨워내며 공화당 투표율의 기록도 경신했다. ‘트럼프 연합’이라고 불릴 만한 성과다.
“트럼프를 막아라”는 경고음엔 아랑곳없이 한때는 상상도 못했던 ‘백악관 입성’을 향해 달려가는 그와는 대조적으로 대항마를 자처하는 라이벌들은 아직도 우왕좌왕 헤매는 중이다. 지도부가 원하는 마르코 루비오는 겨우 미네소타 한곳의 승리를 거둔 채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자신의 지역구인 텍사스 포함 3개주에서 승리한 후 “내가 유일한, 최선의 대안”이라고 자찬하는 테드 크루즈는 당 주류가 트럼프 못지않게 기피하는 달갑지 않은 후보다.
2일 현재 크루즈가 확보한 대의원은 226명, 여기에 루비오 110명과 존 케이식 25명을 합하면 361명으로 트럼프의 319명보다 많다. 단합하면 트럼프 저지도 가능하다는 뜻이다. 게다가 아직 71%의 대의원 선출이 남았다. 문제는 시간이다. 미니 수퍼화요일로 불리는 3월15일까지 트럼프 광풍을 잡지 못하면 트럼프 저지는 물 건너갈 것이다. 바로 그날 루비오 지역구인 플로리다와 케이식 지역구인 오하이오의 경선이 치러진다. 케이식도 그날까지는 버틸 태세다.
사실 케이식이 진작 하차했더라면 이번 버지니아 경선에서 루비오가 승리하면서 동력을 얻었을지 모른다. 이젠 루비오에겐 플로리다가 전부다. 여기서 승리하지 못하면 끝인데 트럼프의 지지율이 43%로 24%인 루비오보다 훌쩍 앞서 있다.
거듭되는 트럼프의 압승이 남은 경선의 유권자들에게 트럼프 대세론의 인식을 심어주면서 공화당 지도부가 마지막 보루로 생각했던 중재전당대회의 가능성도 사라질 기세다. 트럼프가 여론조사 지지율대로 플로리다와 오하이오까지 접수하는 파죽지세를 계속한다면 지명에 필요한 과반수 대의원을 확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게임 오버! 트럼프는 이제 막을 수 없다” - 수십년 경력의 공화당 선거자문 에드 롤린스는 어제 폭스뉴스를 통해 선언했고 “트럼프 저지, 너무 늦었는가”의 분석은 이미 지난 주말부터 언론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트럼프를 어찌해야 할까”는 이미 지난 7월 트럼프가 선두권으로 부상하면서부터 제기된 화두였지만 모두 설마, 하는 사이 트럼프 광풍이 공화당 대선전을 삼켜버린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사태를 방치한 공화당 지도부의 직무유기라고 지적했다 : “지도부는 자신들이 (트럼프) 부류의 지명을 막기 위해 무언가 해야 한다는 생각자체를 불쾌하게 여겼다. 그래서 비껴서서 말했다 : 유권자들이 결정케 하라. 이제 정말 유권자들이 결정하고 있는 것이다…”
공화당의 가치에 반하는 극단적 막말과 허풍을 쏟아내는, ‘진정한 보수주의자’도 아닌 트럼프를 당의 리더로 내세워야 할 곤경에 빠진 공화당의 옵션은 두 가지다. 손잡든지, 싸우든지 : 트럼프 뒤에 줄 서며 투항하든지, 반 트럼프 투쟁에 가세해 저항하든지.
트럼프 대세론 인정파들은 “힐러리를 막아야할 책임을 생각해서라도 트럼프를 지원하자”고 주장한다. 트럼프는 “힐러리보다는 보수적 대법관을 지명하고 정책결정은 전문가들에게 위임할 것이며, 감세를 지지할 것”이라고 낙관론을 편다.
“트럼프는 절대 안돼(Never Trump)” 운동을 벌이며 결사항전을 다짐하는 반대파들은 “도덕적 기준을 결여한 인종주의자와 손잡아야 한다면 승리가 무슨 가치가 있느냐? 그를 포용한다면 우린 더 이상 정당도 아니다”라며 반 트럼프 전면전을 선포했다. 물론 그 속사정엔 본선 표밭에서 트럼프 반감이 공화당 의회선거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우려도 담겨있다.
“트럼프와 함께 살든지, 그를 막으려 애쓰다 죽든지…” 타임지의 제목처럼 암담한 심정으로 기로에 선 것이 몇 달 전만 해도 백악관 탈환의 꿈에 부풀어 있던 공화당의 현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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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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