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민단체, ‘영화 및 비디오물 진흥에 관한 법률’ 입법 청원안 국회 제출
영화계의 고질적 병폐인 ‘스크린 독과점’ 문제가 다시 불거지면서 시민단체가 ‘영화 및 비디오물 진흥에 관한 법률’ 개정 입법 청원안을 국회에 제출하기로 했다. 매년 대형 히트작이 나올 때마다 문제로 지적됐는데 올해는 설 연휴 개봉작 ‘검사외전’이 단초가 됐다.
지난달 전년대비 25%나 영화 관객이 줄어 매출회복이 시급했던 극장은 이 영화에 상영관과 상영횟수를 지나칠 정도로 몰아줬고, 결국 개봉 열이틀째에 800만 관객을 모았다. 이 과정에서 ‘쿵푸팬더3’ 예매관객에게 예약취소를 청하고 대신 ‘검사외전’을 상영한 사실이 알려져 관객들의 비난을 샀다. “스크린 수가 전체의 70%에 육박한다. 이건 미친 짓”이라는 분노의 목소리와 함께 ‘검사외전’ 상영시간표를 보여주며 “마치 전철 시간표 같다”고 비웃기도 했다.
그동안 스크린 독과점과 관련, 투자·배급사만 겨냥한 지적이 대부분이었으나 이번에 CJ CGV가 계열사인 CJ E&M의 배급작 ‘쿵푸팬더3’을 빼고 경쟁사인 쇼박스 배급작인 ‘검사외전’에 상영관을 내줌으로써 결국 영화계 갑은 극장이라는 것이 확인됐다. 한국은 미국과 달리 대기업인 투자배급사가 극장까지 소유하고 있는 구조다.
지난 12년 간 설 연휴로 기간을 한정해 영화시장분석가 김형호씨가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의 박스오피스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10개관 중 3.3개관(스크린 점유율)에서 ‘검사외전’이 상영됐다.
상영횟수 점유율은 더 높다. 10회 중 5.2회다. 설 다음날인 9일을 기준으로 매출액 점유율 0.1% 이상인 영화는 총 17편이었다. 극장이 ‘검사외전’을 1회 걸고, 나머지 1회로 16개 영화를 번갈아 상영한 셈이다.
설 연휴 박스오피스 톱5 영화를 비교하면, ‘검사외전’은 5회 전회 상영을 보장받았다. ‘쿵푸팬더3’ 4.2회, ‘앨빈과 슈퍼밴드’ 2.1회, ‘캐롤’ 2.3회, ‘로봇, 소리’는 2.5회를 보장받았다 ‘검사외전’의 스크린 점유율은 기존의 최고작인 2005년 설영화 ‘투사부일체’(23.6%)보다 1.4배 높고 상영 횟수 점유율은 기존 최고인 2013년 설영화 ‘7번방의 선물’(26.6%)보다 1.9배 높았다. ‘투사부일체’는 CJ엔터테인먼트가 배급했으나 ‘7번방의 선물’은 극장 체인이 없는 NEW 배급작이었다.
극장이 특정영화의 상영횟수를 많이 보장하면 당연히 관객은 증가한다. 지난 5년 간 전체상영작의 실적이 이를 입증한다. 관객 수는 스크린 수 및 상영 횟수와 인과관계를 보였다. 스크린보다는 상영횟수가 더 인과관계가 높았다. ‘검사외전’의 흥행성적을 봐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검사외전’은 회당 106명이 봤다. 한 번 상영할 때마다 평균 106명의 관객을 모았는데, 이는 역대 설 영화 1위작 평균인 117명보다 적다. 역대 설 영화보다 더 많은 상영 횟수를 확보했으나 평균 관객수는 역대 7위에 불과했다. 극장이 묻지마식 안일한 몰아주기를 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이번 주 개봉한 ‘동주’는 첫날인 17일 스크린당 상영 횟수가 2.9회였는데 18일 2.8회, 19일에는 2.6회까지 감소했다. 절대적 횟수가 줄어들었을 뿐만 아니라 주말 황금시간대인 오후 1시부터 7시대 상영도 줄었다. 좌석점유율은 14%→24%→44%로 증가하며 좌석점유율 3위에 랭크됐다. 관객들이 자신의 스케줄을 조정해 이 영화를 적극적으로 보러가고 있다는 의미다. ‘동주’는 좌석점유율이 높은데도 ‘데드풀’이나 ‘좋아해줘’ ‘검사외전’에 밀리고 있는 것이다.
‘거리의 테러 아티스트’로 칭송받는 그래피티 아티스트 뱅크시는 말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마치 가장 어리석고 불공정한 경주를 하는 경기장과도 같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경기에 필요한 제대로 된 운동화와 마실 물조차 얻지 못하고 있다.”‘흙수저’들이 ‘금수저’와 경쟁해야 하는 시대인데, 영화판에도 이 룰이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국내외 독립영화부터 저예산영화, 대작영화가 뒤섞여 같은 경기장에서 매주 순위경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스포츠선수도 체급을 나눠 경기를 하는데, 영화판에는 그런 보호장치조차 없다.
더 이상 보호장치 마련을 미룰 수 없다. 지난 몇 년 간 한국영화는 점점 다양성과 실험성을 잃고 있다. 관객이 좋아할 상업영화만 나오고 있다. 몇 년째 국제영화제 진출 소식이 없는 것이 방증이다.
한국경제의 화두 중 하나인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차원에서도 필요하다. 상업영화 위주로 돌아가더라도 다양한 영화와 공존해야 산업이 더 탄탄해진다. 게다가 영화는 공산품이 아닌 대중문화상품이다. 크게는 상영업과 배급업 겸영 분리부터 작게는 개봉작에 대한 최소한의 상영횟수 보장까지, 관객수만 늘어날뿐 다양성은 죽어가고 있는 한국 영화판을 위한 응급처치가 필요하다.
▲영화관의 스크린 독점을 방지하고 ▲영화산업의 수직계열화를 해소하고 ▲저예산 영화 및 전용상영관 지원을 확대하며 ▲영화관의 불공정 행위를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이 시정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다는 것이 골자인 ‘영화 및 비디오물 진흥에 관한 법률’ 개정 입법청원안이 국회에서 의미있게 논의돼 통과되길 바라는 이유다.
<신진아 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