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응태씨, 지난 15일 오전 방금 별세하셨다는 비보를 받았습니다. 지난해 안용구, 노광욱 두분이 돌아가신 충격이 겹쳐서인지 더욱 더 슬픔과 외로움이 밀려와 황망하기 그지없군요. 얼마 전 형께 문안전화를 했는데 병세가 중하다고 하여 통화를 못했습니다. 마지막 대화가 될 뻔 한 그 시도가 아쉽기 짝이 없군요. ‘생자필명’, ‘회자정리’라는 불경에서 가르친 진리와 인류사 최고의 궁사극치, 부귀영화를 누린 솔로몬의 “헛되고 또 헛되도다”라고 했던 유언이 뇌리 한 가운데 오버랩 되면서 묘한 삶의 허무감이 이는군요. 형과 나의 따로 엮어 왔던 갖가지 사연들도 이제 막을 내리게 되었나 봅니다.
형과 내가 처음 만난 것은 목련꽃, 라일락이 흐드러지게 피어 향기를 뿜던 73년 4월 워싱턴 시내 듀퐁서클 데모현장이었습니다. 바로 전날 박정희 독재정권 규탄데모 장소와 시간을 내가 발행하던 한민신보 사무실로 문의해 온 형이 동생 응혁씨와 참석하여 첫 해후가 이루어졌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형이 민주화 운동에 좀 늦게 참여한 것은 이민이 늦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바로 의기투합했고 커네티컷 애비뉴의 옛 한국대사관 앞까지 함께 행진하며 박정희 군사독재 타도를 외쳤습니다. 좀처럼 맺기 힘든 기이한, 그러나 의미심장한 인연으로 우리는 그때부터 종종 그 듀퐁서클에서의 추억을 나누곤 했었지요.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만 해도 보수니 진보니 하는 노선차이를 극복하고 민주화를 갈망하는 모든 분들이 함께 단합된 모습으로 잘 뭉쳐졌던 것 같습니다. 고인이 돼 버린 전규홍(대한민국 공무원 1호)박사, 노광욱 박사, 최성일 박사, 안병국 목사 등을 비롯하여 유기홍 박사, 강영채 박사, 마동성(당시 워싱턴 유학생 회장)과 다수의 학생들, 고세곤(재향군인회, 육사 16기), 고재곤 등 다수가 모여 기세를 올렸습니다.
형은 물론 ‘한민신보’ 정기용도 많이 도와주었지만 좀 뒤늦게 출발한, 그러나 짧은 시간내에 혁혁한 공을 세운 ‘자유공화국(발행인 장성남,13회 발행)’에게도 성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때 자유공화국의 주인공이었던 신대식 목사는 아직도 이선명씨 등과 함께 함석헌 사상 연구회를 이끌면서 초지일관 열정을 바치고 있습니다.
응태 형, 어찌 이렇게 일찍 떠나셨나요, 만나기만 하면 회포를 풀던 형과의 순간순간들이 가슴을 울립니다. 응태 형, 박정희 정권의 무자비한 인권탄압과 불법 장기 집권의 수칙, 긴급조치에 대항하여 우리는 당당히 맞섰습니다. 우리는 미주 최초의 반 독재민주화운동 공중파 방송 ‘희망의 소리’ 방송을 열었지요. 지금도 생존해 계신 이근팔 선생님이 사실상 총책을 맡고, 김응태가 보도담당, 정기용이 시사해설, 강영채 박사가 영어담당을 맡아 삽시간에 화제를 집중시켰습니다.
우리가 언론이나 한민통 조직을 통하여 투쟁하는 동안 워싱턴 한인사회 분위기는 반 박정권 운동의 전성기였지요. 워싱턴한인회 회장들과 고응표, 김응창, 이성호 씨를 필두로 이도영, 조한용, 박규훈, 신필영, 염인택, 지금도 활동을 멈추지 않고 있는 강철은, 송제경씨 등의 반독재 합류도 우리에게 큰 힘이 되었지요. 신필영씨는 남북 6.15 선언 실천을 위해 진력하고 있고 윤흥노 박사, 이재수, 서혁교 씨 등 젊은 세대들도 같은 방향으로 함께 하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한민통의 핵심요원으로 함께 활동했고 ‘민주혁명당’을 조직하여 형도 참여했었습니다. 4.19당시 서울대 총학생 회장이었던 이창재, 미시간대 송석중 교수, 버지니아 엘리자베스대 주우정 박사, 캐나다 토론토의 박찬웅, 박찬도 형제분과 당시 디트로이트에 와 있던 정일성 교수, 송숭락 교수등 함께 했던 분들이 떠오릅니다.
워싱턴의 안봉근씨는 당의 대변인으로 활약했고 한민신보 편집인을 맡았던 최창훈씨의 활약도 컸습니다. 제가 당조직을 주도하고 사무총장을 맡았다고 하여 응태 형이 선뜻 거금을 쾌척했던 고마움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 2013년 손학규 지도자 지지모임인 자유광장 창립식에 형이 원응식, 송제경, 이재수씨 등과 참석하여 축사를 해 준 고마움도 오래오래 기억하겠습니다. 형은 워싱턴 민주평통 회장도 역임했지만 교회 장로로서의 삶도 꽤 멋있었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너희 중에 있느니라...” 형이 나타난 자리엔 질투와 모함, 증오와 저주 대신 화합과 평화의 자리였습니다. 남들이 흉내낼 수 없는 해학과 풍자도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길이 남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워싱턴의 민주화 투쟁사에 한편을 장식했던 김응태 형. 우리 모두 당신을 사랑합니다. 이제 몇 주만 지나면 다시 목련꽃이 피어나겠지요. 틀림없이 형이 생각날 것 같습니다. 두손 모아 형의 명복을 빕니다.
문의 (571)326-6609
<정기용 자유광장 상임대표 페어팩스, VA>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