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는 실망했고, 테드 크루즈는 환호했으며, 마르코 루비오는 깜짝 놀랐다. 막상막하 접전 끝에 힐러리 클린턴은 “짜릿한 승리”를 선언했고 버니 샌더스는 “도덕적 승리”를 주장했다 - 지난 1년 1,500여회의 후보집회, 6만여건의 TV광고, 수없이 거듭된 여론조사에 일희일비해온 2016년 아이오와 코커스는 이렇게 끝났다.
양당 합해 5명의 대표주자를 걸러낸 아이오와 드라마의 충격을 채 느낄 사이도 없이 모든 후보들이 달려간 뉴햄프셔에선 동도 트기 전 2일 첫 새벽부터 유세열기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드디어 금년 대선의 첫 프라이머리가 실시될 다음 화요일까지 7일간의 전력질주, ‘뉴햄프셔 전투’가 시작된 것이다.
뉴햄프셔 프라이머리는 아이오와 코커스와는 완전히 다른 싸움이다. 표밭부터 다르다. 아이오와가 극우 복음주의자들이 꽉 잡은 강경보수지역이라면 뉴햄프셔는 멸종위기의 ‘중도 공화당원들’이 아직 건재하는 무당파 진보지역이다. 87만4천명 둥록유권자 중 공화당 30%, 민주당 24% 보다 많은 것이 44%를 차지하는 무소속이다.
선두주자도 반전 거듭했던 아이오와와는 달리 트럼프와 샌더스가 상당기간 압도적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중서부 농촌의 나이스한 아이오와 주민들에 비해 북동부 부유한 고학력의 뉴햄프셔 유권자들은 무뚝뚝하고 직설적이다. 공화당 후보인 크리스 크리스티 뉴저지 주지사가 눈 폭풍을 무릅쓰고 유세를 했을 때 아이오와에선 “바쁜 와중에 우릴 찾아와 주어 고맙다”는 인사를 들었지만 뉴햄프셔에선 “왜 피해지역을 돌아보지 않고 여기서 캠페인을 하는가?”라는 추궁에 당황했을 정도다.
이런 평판에 뉴햄프셔는 “아이오와는 옥수수를 따지만 뉴햄프셔는 대통령을 고른다(Iowa picks corn. New Hampshire picks presidents.)”라는 옛말로 일축한다. 까다롭게 대통령 자격을 검증하는 역할에 최선을 다한다는 자부심이다.
그러나 아이오와 결과는 아이오와에서 멈추지 않는다. 앞으로 전체 경선의 판세를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뉴햄프셔 지역 언론들이 종합한 이번 전투의 관전포인트 역시 아이오와에서 걸러진 5명 대표주자들에 맞춰져 있다.
우선 아이오와를 통해 3자대결로 정리된 공화당 필드에서는 3가지를 지켜볼만 하다.
첫째, 트럼프는 재기할 수 있을까. 아이오와에서의 2위가 참패는 아니지만 뉴햄프셔까지의 연이은 2위는 불길한 징조다. 트럼프의 뉴햄프셔 지지율은 3일 현재 33%로 2위 크루즈(11.7%)와 3위 루비오 및 존 케이식(10.7%)을 20포인트 이상 앞서고 있다. 압도적 지지율이 표로 이어져야 거품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
둘째, 크루즈는 지지층을 확대할 수 있을까. 뉴햄프셔가 그 첫 시험대다. 1위는 아니어도 극우표밭을 넘어 중도 유권자의 지지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최소한의 ‘바람’을 일으키는 선전이 필요하다. 그래야 2월말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시작되는 남부주 경선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울 것이다.
셋째, 공화당 기득권층은 루비오에 대한 본격지원을 시작할까. 루비오의 아이오와 3위가 사실상의 승리로 간주되는 것은 트럼프와 함께 크루즈도 ‘악몽의 후보’로 기득권층이 외면하기 때문이다. 기득권층이 단합해 루비오를 본격지원 한다면 (뉴햄프셔에 올인하고 있는 케이식을 비롯해 크리스티와 젭 부시, 세 후보에겐 폭탄이 되겠지만) 판세는 상당히 흔들릴 것이다.
민주당 두 후보에겐 각기 다른 ‘모멘텀’이 필요하다. 뉴햄프셔는 ‘샌더스의 세상’이다. 이웃 버몬트 주 출신 무소속 상원의원 샌더스에 대한 이곳 유권자들의 지지는 뜨겁다. 55.5% 대 38%로 힐러리를 압도하고 있다. 그러나 힐러리에게도 뉴햄프셔는 각별하다. 2008년 아이오와에서 참패당한 후 눈물의 캠페인으로 역전승리를 거두며 ‘컴백키드 힐러리’의 저력을 과시한 곳이다.
관전포인트 넷째, 샌더스는 기대만큼 압승을 거둘 수 있을까. 경선이 백인지역 아이오와와 뉴햄프셔를 지나 라티노 많은 네바다와 흑인지역 사우스캐롤라이나 등 남부로 이어지면 백인을 기반으로 한 샌더스의 지지층은 약화된다. 그러나 뉴햄프셔에서 압승을 거둔다면 힐러리 우세지역에서도 접전을 이어갈 모멘텀이 될 수 있다.
다섯째, 힐러리는 뉴햄프셔에 얼마나 집중할까. 샌더스 강세인 뉴햄프셔를 포기하고 승리 확실한 네바다와 사우스캐롤라이나에 집중하라는 참모들의 조언을 거부한 것은 힐러리 자신이다. 승리를 못한다 해도 강한 2위를 통해 ‘열정의 모멘텀’을 얻어내기로 한 것이다.
뉴햄프셔 프라이머리가 오늘 실시된다면 트럼프와 샌더스의 낙승이 확실하다. 그러나 뉴햄프셔에서의 닷새는 긴 시간이고, 뉴햄프셔는 마지막 순간까지 요동치는 유권자의 변심으로 이름난 곳이다. 금년에도 유권자의 절반이 아직 마음을 정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오늘 민주당 후보토론과 이틀 후 공화당 후보토론 등 검증할 기회도 넉넉히 남아 있다.
7월의 전당대회, 11월 본선까지 금년 대선은 예측하기 힘든 긴 여정이 될 것이다. 그러나 곳곳에서 뉴햄프셔처럼 롤러코스터 경선을 관전하는 재미에 지루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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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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