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드레스메이커'는 '드레스를 만드는 사람'이라는 제목처럼 패션디자이너 틸리(케이트 윈즐럿)의 삶을 그린 영화다. 첫 등장부터 틸리는 통통 튀는 매력으로 웃음을 머금게 한다. 하지만 그 웃음 뒤 여운이 묵직하다. '우리'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집단주의의 횡포, 사람의 말에 의해 뒤바뀌는 진실과 거짓 등 생각할 거리가 많은 영화다.
틸리는 `소년 살인사건' 범인으로 몰리면서 억울하게 고향에서 쫓겨났다. 그로부터 25년 후인 1951년 호주 던가타, 틸리는 패션디자이너가 되어 고향에 돌아온다.
스타일부터 예사롭지 않다. 하얀 챙모자에 흰 장갑, 하얀 구두까지 자칫 촌스러울 수 있는 `깔맞춤' 패션에 시크함을 더했다. 화려한 의상과 달리 현실은 비루하다. 살인 누명 때문에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던 그녀는 고향에 다시 와서도 고독한 삶을 이어간다.
엄마 `몰리'(주디 데이비스)는 25년 만에 만났는데도 냉랭하다.“내가 사람을 죽였나요?"“내가 살인자냐고요?"“살인을 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구요"라며 사건의 진실을 묻지만, 몰리는 묵묵부답이다. 과거의 상처 탓에 틸리의 존재를 계속 부정하는 것.
마을사람들 사이에 `미친 몰리'로 불리며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그녀. 틸리가 없는 동안 테디(리엄 헴스워스)는 몰리를 살뜰히 보살펴줬다. 틸리의 어릴적 친구인 테디는 과거의 상처를 쉽게 떨쳐내지 못하는 그녀를 다정하게 보듬고, 연인관계로 발전한다.
이렇게 해피엔딩으로 끝난다면 아름다운 로맨스 영화였을 것이다. 하지만 `드레스메이커'는 뻔한 영화가 아니다. 허를 찌르는 반전으로 관객들의 심장을 쫄깃하게 만든다. 예측 불가능한 스토리와 배우들의 완벽 연기, 화려한 드레스들의 향연까지 어느 것 하나 놓칠 게 없다.
여자의, 여자에 의한, 여자를 위한 영화라고도 볼 수 있다. 틸리가 만드는 1950년대 오트퀴트르 의상은 이 영화의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다. 기성복이 아니라, 단 한 명의 고객을 위해 디자이너의 뛰어난 독창성과 정교한 수작업으로 제작되는 맞춤복이다.
호주의 대표 여성작가 로잘리 햄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했다. 그녀는 실제 재봉사였던 자신의 어머니를 모델로 `틸리' 캐릭터를 완성하고, 풍부한 감성과 특유의 유머로 이야기를 풀어냈다. `아름다운 드레스로 복수한다'는 신선한 소재가 인기를 끌면서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가 됐다.
`위험한 선택' `아메리칸 퀼트' 등으로 사랑을 많은 호주의 여성감독 조슬린 무어하우스는 연출과 각본을 맡았다. 원작과는 또다른 매력의 새로운 복수극을 완성했다. 틸리는 크리스천 디오르, 발렌시아가, 마담 비오넷 등 당대를 주름잡았던 최고 디자이너에게 인정받은 실력자로 그려진다. 틸리가 만든 드레스는 주민들의 환심을 사는 도구이자 과거 살인 사건의 비밀을 밝히는 단초가 된다.
경찰관 패럿(휴고 위빙)은 틸리가 들고 온 고급 원단과 예쁜 옷의 매력에 빠지고, 든든한 조력자가 된다. 레이스와 벨벳, 여성복을 좋아하는 취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 틸리의 어릴 적 친구 거트루드 프랫(세라 스누크) 역시 소년 살인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데 도움을 준다. 틸리가 만들어준 드레스 덕분에 미운 오리 새끼에서 백조로 변신하고, 좋아하는 남자의 마음도 얻는다.
동네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면서 틸리는 마을에서 유명 인사가 됐다. 드레스를 잘 만들 뿐만 아니라 예쁘게 입기도 했다. 가장 눈에 띄는 의상은 풋볼 경기 장면에서 그녀가 입은 빨간 드레스.
매 신에서 신체의 실루엣을 그대로 드러낸 과감한 드레스로 우아한 자태와 섹시한 매력을 뽐냈다. 글래머러스한 그녀의 스타일은 마을 남성들의 마음을 동요시키면서 여성들에게는 이를 모방하고자 하는 욕구를 불러일으켰다. 더 나아가 여성 관객에게도 패션에 대한 욕망을 자극한다.
의상은 메리언 보이스와 마고 윌슨이 맡았다. 1950년대 오트퀴트르 의상을 재현하기 위해 수많은 책을 모으고 연구했으며, 각 캐릭터에 맞는 의상을 위해 총 350벌을 제작했다. 어두운 빨간색, 진한 연두색 등 강렬한 색감의 세련된 의상들이 스크린을 화려하게 수놓는다. 매혹적인 의상은 굉장히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가볍게 만드는데 기여했다.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 한 여자가 힘겨웠던 지난 세월을 회상하고, 살인사건의 전말을 풀어나가는 스토리다.
감독은 마치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듯이 한 여자의 일생을 담담하게 그렸다.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닫게 해준다. 현재의 삶이 무료하다고 느끼거나 패션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영화다.
영화 `타이타닉'의 헤로인 케이트 윈즐럿을 추억하는 관객들에게는 선물과도 같은 작품이 될 것 같다. 세월을 빗겨간 미모와 도발적인 변신이 잠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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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효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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