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타이탄 스크린이 제조한 370인치 크기의 TV 가격은 160만달러에 달한다.
서울에서 중견기업을 운영하는 50대 기업가 A씨는 7년째 뱅앤올룹슨의 초고가 스피커를 고집하는 애용자다. 고가의 명품 스피커·오디오·TV를 전문으로 만드는 덴마크 업체 뱅앤올룹슨은 정기적으로 A씨 집을 방문해 3만달러가 넘는 스피커와 오디오 세트를 관리해준다. 음악감상의 대세가 CD에서 디지털 음원으로 바뀐 후에는 A씨의 취향을 고려한 음원파일을 구해 직접 기기에 깔아주기도 한다.
뱅앤올룹슨의 최신작 스피커 베오랩 90은 전문가가 직접 집을 방문해 설치해준다.
▶ 전세계 극소수 갑부 대상… 주문 제작에 사후 서비스, 글로벌 가전社 속속 진출
▶ 뱅앤올룹슨 등 명품 가전 전문업체 상위 1% 대상 특별제품 한정 판매
▶ “中 공세에 초고가 전략으로 차별화” LG전자 등 대형 가전업체도 가세
업체의 배려는 A씨가 지난해 12월 8만달러가 넘는 ‘베오랩 90’ 출시를 알리는 연락을 받고 압구정 매장을 방문했을 때도 이어졌다. 뱅앤올룹슨은 “신축할 주택에 어울리는 방식으로 설치해달라”는 A씨의 주문에 기술자는 물론 인테리어 전문가까지 집으로 보냈다. 뱅앤올룹슨 관계자는 “고객이 눈살을 찌푸리지 않도록 출장을 나갈 때 직원들의 복장도 최대한 단정히 하고 행여 발냄새라도 날까 해서 실내화도 따로 준비해간다”고 말했다.
8만달러에 이르는 스피커부터 십수억원의 TV 등 극소수 갑부들의 일상에는 일반인들은 상상도 못할 ‘초고가 가전 세계’가 빠르게 커지고 있다.
이들 최상위 소비계층을 위한 전 세계 초고가 가전시장 규모는 150억달러 수준이다. 약 2,900억달러에 이르는 전체 가전산업의 5%에 불과하지만 최근 글로벌 가전업계 대표기업들은 레드오션으로 바뀐 가전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수익성 높은 초고가 가전시장에 속속 눈을 돌리고 있다. 남들과 달라 보이고 싶은 부호들의 ‘욕구’와 남들과 다른 제품을 만들어야 하는 가전기업들의 ‘필요’가 맞물려 만들어낸 풍경이다.
이런 세상에서 전 세계 자산가들은 대형 매장에 진열된 가전을 쇼핑카트에 쓸어 담지 않는다. 이들은 자신만을 위한 특별한 가전을 주문하거나 한정 생산하는 기기를 사들인다. 뱅앤올룹슨 관계자는 “이들에게 가격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라며 “한번 마음에 든 브랜드는 수십 년 넘게 구입을 계속하는 만큼 고객의 신뢰를 얻기 위해 세심한 사후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최상위 소비계층을 위한 가전제품들은 평범한 소시민이 구입할 엄두조차 못할 만큼 값비싸다. 영국의 스크린 제조 기업 타이탄은 네 가지 크기의 TV를 주문 받아 제작한다. 모두 화면이 성인 남성보다 크며 가장 큰 것은 370인치로 아프리카 코끼리보다 두 배 이상 크다. 현재 4대 정도가 생산된 것으로 알려진 370인치 TV 가격은 무려 160만달러 수준이다. 삼성전자 제품 중 가장 고가인 110인치 TV(약 15만달러)보다 10배 이상 비싼 셈이다.
전 세계 부호들 가운데는 시중에 팔지 않는 시제품이나 전시용 제품을 구입하는 경우도 많다. LG전자가 미국 라스베이거스 가전 매장에 홍보 효과를 노리고 진열한 9만9,999달러짜리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TV는 정식 출시되지 않는 전시 제품이지만 매장을 둘러본 전 세계 갑부들의 판매 문의가 잇따르는 게 한 사례다.
일부 제품은 품질보다는 호화로운 장식이나 입소문을 앞세워 초고가 대접을 받는다. 러시아 부호들을 겨냥해 키맷 인더스트리가 만든 알로스 다이아몬드 TV는 크기가 40인치에 불과하지만 100개가 넘는 20캐럿 다이아몬드를 박았다는 이유로 가격이 13만달러에 이른다.
초고가 프리미엄 가전 시장은 전체 가전 시장의 5% 가량에 불과하다. 그러나 작은 규모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커지고 있는데다 수익성이 좋아 글로벌 가전 업체들이 앞 다퉈 뛰어들고 있다. 밀레·뱅앤올룹슨·보스 같은 기존 전문업체들이 주도권을 쥐고 있던 시장에 글로벌 대형 가전사들이 진입하고 있는 것이다.
LG전자는 ‘CES 2016’을 통해 초프리미엄 단독 가전 브랜드인 ‘LG시그니처’와 빌트인 전문의 ‘시그니처 키친스위트’를 각각 선보였다. 이와 유사하게 북미 1위 가전 업체인 월풀은 프리미엄 단독가전으로 ‘키친에이드’, 빌트인으로는 ‘젠에어’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최근 하이얼에 매각된 제너럴일렉트릭(GE) 가전사업부 역시 ‘모노그램(빌트인)’과 ‘프로파일(단독)’ 브랜드를 통해 고소득 전문직과 최상위 소비계층을 공략 중이다.
주요 가전 메이커로 통하는 삼성전자와 LG전자·GE·일렉트로룩스·파나소닉의 경우 가전 사업을 시작한 지 최소 수십 년이 넘었다는 점도 초고가 마케팅을 가능케 하는 요소라고 업계는 분석한다. 가전 업계의 한 관계자는 “최상위 소비 계층은 50~100년의 역사를 갖춘 기업을 보면서 중국 신생 기업들에서 찾을 수 없는 신뢰감을 느낀다”면서 “중국과의 가격 경쟁에 밀린 업체들이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한 좋은 토대”라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가전 업계의 초고가 제품 강화가 소득 양극화의 단면이라는 분석도 제기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신흥국을 막론하고 확연히 짙어가는 소득 양극화로 인해 기업들이 소비 여력이 있는 최상위 계층에 대한 집중도를 높였다는 지적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경기 침체가 계속되면서 전 세계 가전 기업들이 소비 지출이 불안정해진 중산층 이하 소비자보다는 북미·중동·중국의 부유층을 타깃으로 한 제품 개발에 더 공을 들이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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