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서로의 꿈과 희망을 나누는 자리는 언제나 새롭고 좋다. 말하는 자는 희망이어서 좋고, 듣는 사람은 기원과 축복의 마음으로 들으니 훈훈하다. 미국의 대통령 새해 국정 연설도 그런 자리이다. 임기 마지막 해인 신년 국정 연설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과거 정책에 대한 나름의 정리와 함께 미국의 여러 가지 정책에 대한 구상을 밝혔다.
그 가운데 과거 미국의 달 탐사 계획에 버금가는 의미를 가지고 인류의 완전한 암 치료에 도전하겠다는 발표를 하였다. 이는 1971년 닉슨 대통령이 암과의 전쟁을 선포한 이래 두 번째 나온 범국가적 암 관련 정책이다. 물론 암 치료를 새해 국정의 최우선 순위로 발표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는 여러 면에서 매우 신선하고 의미 있는 정부의 정책으로 보인다.
사실 대통령의 정책 구상의 핵심은 국민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민생이다. 국민의 피부에 와 닿는 민생을 위한 정책이 상책이다. 더구나 그 정책의 혜택이 자국민의 삶의 질을 넘어 세계 여러 다른 나라 국민의 삶에도 혜택을 준다면 그런 정책은 상책을 넘어 ‘금상첨화(錦上添花)’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암 완치에 도달한다면 이는 분명 미국 뿐 아니라, 인류 전체를 위한 또 하나의 위대한 의학적 거보(巨步)가 될 것이다.
오늘날 암 치료 의술의 발전은 더 없이 절실하다. 미국은 지난해 약 170만 건의 암이 발생하여 약 60만 명이 암으로 사망 하였고, 한국은 약 28만 명이 암에 걸리고 약 7만 8천 여 명이 암으로 사망 했다고 한다.
암은 한 개인의 단순한 질병이 아니다. 암이 가져오는 육체적 정신적 고통이나 경제적 부담은, 개인의 차원을 넘어 가족과 국가 전체 영향을 준다. 일단 암에 걸리면 환자의 육체적 고통은 물론, 완치의 불확실성에서 오는 심리적 불안감, 고액의 치료비에서 오는 경제적 부담, 사회적 활동의 중단 등에서 오는 고통이 실로 막대하다.
암은 결국 개인의 건강과 행복한 삶은 물론, 가정의 유대감 상실, 국가의 산업경쟁력과 안전을 위협하는 사회적 질병이 된다. 그러므로 암에 대한 범국가적 정책과 노력은 당연한 일이다. 정부 발표대로 완전한 암 치료를 위한 의학 발전과 의료체계의 확립 그리고 암 치료 부담 완화 등 암 완치의 길에 큰 진전이 있기를 기대한다. 발암 물질로부터 자유로운 산업 환경, 환경오염과 공해 없는 깨끗한 세상을 위한 노력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암 완치에서 암을 대하는 개인의 태도야말로 더 없이 중요하다. 동시대인으로 암이라는 인생의 역경 속에서도 성숙한 모습을 보인 사람으로 ‘재임 시 보다 은퇴 후에 더 세상의 존경을 받는’ 지미 카터(91세, 2002년 노벨평화상) 전 미국 대통령을 들 수 있다. 그는 지난해 여름 간에 있던 흑색종(黑色腫) 암이 뇌로 옮아갔다는 진단을 받고 시한부 인생 통고를 받았음에도, 평소와 다름없이 일상의 삶을 유지하며, 지난 생에 대한 감사와 남은 생에 진지한 태도를 보이며 치료를 받았다. 그는 치료 중에도 하느님의 자비에 모든 것을 맡기고 담담하고 편안하게 죽음과의 대면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신앙인의 입장에서 깊은 숙고와 진심을 담아 동성애 지지의 사회적 발언이나 사회적 봉사 활동도 멈추지 않았다. 그러던 중 지난 12월 암에서 완치 되었다는 놀라운 진단을 받았다.
암을 만난 한 시민이요 신앙인으로서 성숙한 모습을 여실히 보여 준 것이다. 아직 암에 대하여 모르는 게 많다. 조금 안다고 가벼이 할 수 없고, 많이 모른다고 두려워하거나 외면 할 것 없다. 절망이나 분노나 오만이 아니라 꾸밈없는 대면이 필요할 지 싶다.
두려움, 부정적 생각, 탐욕, 스트레스, 잘못된 식습관 등등 암이 좋아 할 것들 미련 없이 내려놓을 일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오래 살지 보다 어떻게 살 지에 찬찬히 마음 쓰면서 겸허, 즐거움, 명랑, 올바른 식습관, 적절한 운동, 긍정의 태도, 신앙으로 암을 대면 할 일이다. 의학적 암 완치는 정부의 몫이겠지만, 인생의 위기 속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인생의 의미를 간직한 채 암을 대면하여 스스로 내 보내는 암의 성숙한 극복은 우리의 몫이다.
<최상석 성공회 워싱턴한인교회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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