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달리는 로봇’ 스마트카-IT·車업계‘인공두뇌’개발로 자율주행차 선점경쟁 치열
▶ BMW·포드 등은 스마트카·스마트홈 통합시장까지 눈독
“자동차는 인공지능(AI)을 탑재하기 위한 가장 완벽한 플랫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세계적 센서 기업 모빌아이의 암논 샤슈아 창업자는 CES 2016 패널 토론에서 이렇게 말했다. 수십~수백 테라바이트(TB) 용량의 데이터를 수집·분석해 스스로 주행환경을 판단하고 차량을 움직이는 완전 자율주행차의 실현은 AI가 탑재될 때에야 가능하다는 진단이다. 곧 자동차가 생각하고 학습하는 ‘스마트로봇’으로 진화할 것이라는 예언이기도 하다. 글로벌 정보기술(IT)·자동차 업계는 현재 완전한 자율주행차라는 고지를 선점하기 위한 전면전에 돌입했다. 바꿔 말하면 인간처럼 사고하는 ‘바퀴 달린 로봇’을 만들기 위한 치열한 각축전이다. 이들 기업 가운데는 완전 자율주행차와 스마트홈을 통합해 스마트 융복합 산업을 통째로 집어삼키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이 역시 스마트카·스마트홈을 통합 지배하는 지능형 ‘로봇’을 만드는 구상이다.
▶ 한국기술 수준 유럽에 한참 뒤처져… 규제완화 서둘러야
■본격 점화한 글로벌 로봇 자율주행차 전쟁-초기 자율주행차는 각종 카메라 센서를 차량에 부착, 도로 상태를 감지하고 차량의 위치를 약간 조종하거나 운전자에게 알리는 수준이었다. 완전 자율주행차는 인간과 유사한 두뇌를 달아 차를 로봇으로 탈바꿈시키는 것이다.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가 CES 2016에서 발표한 세계 최초의 스마트카용 인공두뇌인 ‘드라이브 PX 2’가 한 예다. 이 컴퓨터는 볼보에 탑재될 예정이며 기아자동차·아우디·BMW·다임러·포드 등도 엔비디아와 유사한 기술협력을 검토하고 있다.
엔비디아에 따르면 현재 최고 사양 노트북PC 150대를 합친 연산능력을 자랑하는 이 슈퍼컴퓨터는 자동차에 내장돼 각종 도로정보를 실시간으로 수집한다. 수집한 데이터는 중앙 클라우드 시스템에 보내 다른 차량에 탑재한 다른 컴퓨터들이 공유하고 학습할 수 있다.
AI와 빅데이터 기술을 활용해 차량이 수만 가지의 다양한 상황에 대처할 능력을 갖추는 것이다. 관련 업계의 한 관계자는 “시스템을 인간의 뇌 신경망과 최대한 비슷해지도록 끌어올리는 게 지능형 슈퍼컴퓨터의 목표”라고 강조했다.
도요타 역시 5년간 10억달러를 들여 자율주행차용 로봇·AI 연구를 위한 ‘도요타리서치인스티튜드(TRI)’를 미국에 세운다고 발표했다.
도요타는 구글에서 AI로봇사업을 총괄하던 제임스 커프너 디렉터뿐 아니라 MIT와 스탠퍼드대 등지에서 세계 최고수준의 AI·로봇공학자를 흡수하고 있다. 엘런 머스크 테슬라모터스 창업자는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LA를 출발해 뉴욕까지 갈 수 있는 완전 자율주행차를 오는 2018년까지 만들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한국 기업 기술 글로벌 수준 미달-기술 못 따라가는 규제도 문제=이처럼 지능형 자율주행차를 향한 각국 기업의 다툼은 점점 치열해지고 있다. 반면 한국은 아직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이 조사한 산업기술 수준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스마트카 기술 수준은 유럽을 100%로 봤을 때 83.8%에 불과하다. 미국과 일본은 각각 97.6%, 중국은 67.1% 정도였다.
현재 국내 완성차 기업인 현대·기아차는 벌어진 격차를 메우기 위한 자율주행 기술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현대차는 럭셔리 브랜드 ‘제네시스’의 첫 모델인 EQ900에 국산차 최초로 초기 형태의 자율주행 기술인 고속도로주행지원 시스템을 탑재한다. 기아차는 2030년까지 지능형 완전 자율주행차를 개발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와 관련, 현대차는 2018년까지 그룹 차원에서 약 16억5,000만달러를 스마트카 관련 기술 개발에 투자하기로 했다.
국내 관련 법규 제정이 지지부진하면서 지능형 자율주행차 산업 발전을 저해한다는 목소리도 많다. 가장 선진적인 미국은 네바다를 비롯한 5개 주에서 무인차 도로주행을 허용하고 있다.
뉴욕·일리노이를 비롯한 다른 12개 주도 관련 제도를 심사하고 있다. 덕분에 구글·아우디 같은 IT·완성차 기업들의 자율주행차 도로주행 실험 데이터가 방대하게 쌓이고 있다.
반면 당장 도로교통법상 일반도로에서 운전자가 양손을 놓은 채 운전하는 것부터 불가능한 한국에서 자율주행 실적은 없다시피 하다. 지난해 11월22일 미래창조과학부가 주관한 ‘미래성장동력 챌린지 퍼레이드’에서 자율주행차가 서울시내 도로를 3㎞ 운행한 것이 첫 번째 공식 사례다. 구글의 도로 자율주행 실적은 193만㎞에 이른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는 “지난해 자율주행차의 도로주행을 가능하게 할 법적 근거는 마련됐지만 세부 시행령이 정립되지 않아 실질적으로는 불가능한 형편”이라며 “시행령부터 보험 같은 관련 분야 전체에 대한 세부 제도 정비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스마트카는 있고 핵심부품은 없는 한국-올해 CES 2016에서 스마트카와 관련해 한국 기업들의 존재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글로벌 부품 기업들의 뜨거운 경쟁 무대에서 한국 기업은 현대모비스를 제외하면 찾아볼 수 없었다. 그나마 현대모비스 역시 차세대 자율주행차의 청사진을 제시하기보다는 운전자보조시스템(ADAS) 같은 기존 시스템을 전시한 데 그쳤다는 평가를 받았다. 드론 분야에서도 바이로봇이 유일하게 독립 부스를 구성했지만 국내 드론용 반도체 기업의 전시관은 전무했다.
스마트카와 드론 같은 각종 융복합 산업들이 대세로 등장하면서 이들의 발전을 뒷받침해줄 핵심 부품 기업들에 대한 관심도도 급격히 커지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IHS에 따르면 오는 2025년 전 세계 자율주행차 연간 판매량은 23만대, 2035년에는 1,180만대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두각을 나타내는 한국 기업은 눈에 띄지 않는 실정이다. 세계적 수준의 반도체 설계 전문기업이나 SW 기업이 부재한 한국의 현실이 스마트카 산업에서의 기술우위 확보를 가로막고 있는 셈이다. 한국 완성차 업계의 한 관계자는 “국내 업계의 스마트카 핵심기술 수준이 미약해 어쩔 수 없이 실리콘밸리 기업과 협업할 수밖에 없다”며 “스마트폰 업체들이 ARM이나 마이크로소프트(MS) 같은 원천기술 보유기업에 매년 수조원의 기술 로열티를 지불하는 상황이 되풀이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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