훗날 대통령 버락 오바마에 대해 역사가 정의하는 첫 마디는 ‘최초의 흑인 대통령’일 것이다. 그러나 제44대 미 대통령 자신은 그것으로 만족할 리가 없다. 전력을 다해 실현시킨 업적에 대한 평가도 기대할 것이고 아직 이루지 못한 야심과 이상도 여전히 크고 원대하다.
12일에 행한 오바마 대통령의 마지막 국정연설에선 자신의 업적에 대한 자부심과 지키지 못한 약속에 대한 후회, 그리고 미국의 선하고 강한 저력에 근거한 희망을 하나하나 짚어간 그의 노력이 읽혀졌다.
차기 대선의 열기에 파묻히기 십상인 전임 대통령들의 마지막 국정연설이 그랬듯이 이번 연설에도 새로운 정책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공화당주도 의회가 어차피 처리하지도 않을 어젠다를 나열하는 대신 경제회복에서 오바마케어, 기후변화에서 이란 핵협상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치적을 옹호한 오바마는 요즘 공화당 대선주자들의 ‘허풍’ 주장과는 달리 미국의 경제적·군사적 상황은 현재도, 앞으로도 전혀 비관적이 아니라는 낙관론을 강조했다.
지난해 말 낸시 펠로시 하원 민주당 대표는 “오바마 유산에서 내가 꼭 바꾸고 싶은 것은 홍보다. 자신의 업적에 대해 국민들이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도록 강력한 마케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업률을 절반으로 떨어뜨리고 무보험자를 사상최저로 줄였으며 적자를 70% 감축시키고 주식시장을 두배로 상승시킨 경제회복의 결과가 너무 저평가되고 있다는 아쉬움이다.
오바마의 국정연설이 단언하는 미국은 ‘지상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이며 더 많은 일자리와 더 좋은 헬스케어와 더 놀라운 기술혁신으로 다시 부흥하는 나라다. 공화당의 미국은 훨씬 어둡다. 위험한 세계에서 실패한 리더십 탓에 한때 강력했던 파워는 사라진 채 국내에선 자유와 기회가 갈수록 축소되고 있는 위기의 나라다. 이 대조적인 두 시각 중 어느 쪽이 더 신뢰할 만 한가. 그 대답이 차기 대선의 결과를 결정지을 것이다.
민주당은 “레이건부터 클린턴, 오바마까지 미국민은 비관적 시각의 대통령을 선출하지 않았다”고 지적하고 공화당은 “장밋빛 그림만으로는 고전하는 유권자들을 확신시킬 수 없다”고 일축한다. 뉴욕타임스가 전하는 국정연설에 대한 양당진영의 상반된 반응이다.
오바마의 마지막 국정연설을 지켜보며 많은 사람들은 “Yes, we can”의 열기를 되돌아보았을 것이다. 워싱턴의 분열을 해소하겠다는 “믿고 싶었던 변화”를 제시하며, “갖고 싶었던 희망”을 심어주었던 젊은 대통령의 약속을 기억했을 것이다.
이상과 현실 사이의 엄청난 괴리를 절감케 한 7년이 지나는 동안 워싱턴의 신선한 변화를 공약했던 후보에서 정부폐쇄로 까지 치달았던 양극화 시대의 대통령이 되어버리긴 했지만 오바마도 그 약속을 잊은 것은 아니었다. 국정연설에선 드물게 후회와 책임을 인정했다. 양극화에 의한 정치적 갈등을 개탄하면서 자신이 양극화를 해소하고 정치적 교량역할을 하겠다던 2008년의 약속 이행에 실패했다고 털어 놓았다 : “양당 간의 적대감과 의심이 완화되기는커녕 더 악화된 것이 나의 재임 동안 몇 안 되는 후회 중 하나입니다”
후회하며 체념하는 대신 그는 ‘보다 나은 정치’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 했다. 한 사람 대통령의 리더십이나 선의만으로 정치를 바꿀 수 없다면서 그가 강조한 것은 제도적 개혁의 필요성이었다. “정치가들이 유권자들을 선택하려는 식”의 게리맨더링 선거구 조정을 폐지하고, 정치에서 돈의 영향력을 제한할 방법을 찾아야 하며, 모든 유권자들이 쉽게 투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절차상의 개혁방법을 제시했다.
그리고, 그 변화에 누가 앞장 서야하는가를 열정적으로 호소했다 : “나의 미 국민 여러분, 당신이 무엇을 믿든, 어느 정당을 선호하든, 내 어젠다를 지지하든 반대해 싸우든, 우리의 집단적 미래는 여러분이 시민의 의무를 기꺼이 담당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투표하십시오. 외치십시오. 이 사회의 약자들을 위해 맞서십시오. 우리 각자도 누군가가 어디에서인가 우리를 위해 맞서 주었기 때문에 여기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지 않습니까…”
전쟁과 불황, 이민유입과 노동투쟁, 민권운동 등 사회의 변화가 닥칠 때마다 그 결과에 대한 공포를 조장하고 희생양을 찾는 극단주의를 경고하며, 1년 후면 “한 명의 시민으로 여러분과 함께 거기 있을 것”이라는 대통령은 그 폐해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여러분 자신”이라고 강조했다.
‘보다 나은 정치’ 실현을 주도할 여러분 속에 한인 모두도 포함되었다는 것을,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 오바마의 마지막 국정연설은 우리에게 오래 기억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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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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