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도 다사다난했던 올 한해가 막을 내리고 있다. 한 사건의 파문이 좀처럼 지워지지 않고 있다. 지난여름 우연히 어느 가곡을 들었는데 제목이 ‘그리운 금강산’이었다. 하도 노래를 잘 불러 가수 이름을 찾아보니 놀랍게도 플라시도 도밍고였다. 그가 누군가. 1900년대 초 세계 음악팬들을 열광케 했던 가극왕 ‘카루소’, 그를 이어 마리오 란자, 8년전 타계한 루치아노 파바로티, 지금도 활약하고 있는 호세 카레라스와 함께 세계 최고의 테너로 각광 받고 있는 인물이 아닌가. 이탈리아 출신 플라시도 도밍고가 우리의 통일 염원이 절절하게 담긴 ‘그리운 금강산’을 가사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이렇게 기가 막힐 정도로 잘 부르다니 감동이자 존경심마저 우러나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그 다음 충격은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전국으로 생중계되는 8.15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일어났다. 식순에 따라 애국가를 부르는데 유명 소프라노 조수미가 1절을 부르고 제 2절을 우리나라 최고 테너로 꼽히는 경희대 교수 엄정행이 불렀는데 가사가 틀리는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어느 개인의 실수를 꼬집어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 조그만, 그러나 충격적인 사건(?)에서 우리 국민의 국가에 대한 도덕적 수준이 한눈에 드러난 것 같아 그 점을 지적하려는 것이다. 좀 더 파고 들어가 규명해 보자면 입만 벌리면 보수네 진보네 목청을 높이며 저들만의 애국을 독점한 양 떠들어 대는 이들이 정말 제대로 애국가나 부를 줄 아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현실적으로 우리나라는 애국가 가사를 제대로 적어내는 학생들이 드물다는 개탄의 소리가 나온 지 오래됐다. 어디 그 뿐인가. 국가 공무원이나 기타 공직에 봉사하는 사람들도 대부분이 마찬가지라는 통탄할 조사 결과도 본 적이 있다.
올해도 우리는 귀신처럼 이런저런 핑계로 병역을 기피했던 자들, 국고금을 횡령하고 형무소를 드나들었던 범죄자들, 금융비리 서민착취에 이골이 난 자들이 태연히 국가 중책을 맡고 있는 모순 속에서 살아왔다. 이를 테면 국가에 대한 충성심과 도덕성을 갖추어야 할 장본인들이 가장 위선적이고 비도덕적인 자들이었으며, 이들의 가장 무도회 사술에 걸려들어 또 한 해를 보냈구나 하는 회한이 따라 오는 것을 금할 수가 없다. 국방의 필수적인 최신무기를 사들이는데 차액을 착복하고 헌무기 불량품을 사들여 육해공군 장성급들이 줄줄이 쇠고랑을 차고 있는 이 현실, 살맛나는 내일을 기대해 볼 만한 틈새를 찾아 낼 수가 없다.
어느 통계에 나온 청년들의 72%가 해외로 떠나고 싶다는 절규가 가슴을 찌른다. 차라리 이 현실이 붕괴해 버렸으면 좋겠다고 자탄하는 울부짖음도 50%가 넘는 끔찍스런 조사도 눈을 아프게 한다. 갈수록 벌어지는 빈부격차, 주택난, 구직난으로 ‘헬코리아(지옥 대한민국)’라는 불길한 자조적 시름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세태다.
마치 애국가에 대한 국민의식 수준이 반영된 것 같아 씁쓸하기 짝이 없다. 대개 선진국이라는 나라들은 국민들의 애국가에 대한 열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미국의 National Anthem, ‘The Star Spangled Banner', 영국의 ‘God save the Queen', 독일의 ‘Einigkeit und Recht und Freiheit(통일, 정의, 자유)', 불란서의 ‘La Marseillaise(라 마르세예즈)’, 그들이 국가를 부를 때마다 의식이나 표정은 진지하기 비할 바 없이 근엄하다. 심지어 불란서 국가는 그 가사가 엄청나게 혁명적이고 어느 누구도 결연히 싸울 준비가 되어 있는 임전태세 구호에 가깝다. 최근의 파리 테러 사건이후 불란서 국가가 틈만 나면 이웃나라들에서 까지 애창 연주되고 있다. 우리 애국가는 나라의 운명만큼이나 내용이 애절하고 기구한 사연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더 애착이 가고 부를 때마다 의미가 짙어진다.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해방 전까지 애국가가 없어 스코틀랜드의 민요에다 지금의 가사를 붙여 부르던 것을 당시 스페인에서 활약 중이던 음악계 선구자 안익태 선생이 작곡한 것이다. 북한에선 “삼천리 아름다운 내 조국 이 몸과 마음 다 바쳐 기리 받드세…”라고 외치고 있다. 남북이 함께 쓰는 애국가 하나 없으니 분단의 아픈 민낯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어느 진보 단체는 행사 때마다 애국가 의례를 지키지 않아 지탄을 받기도 했는데 이런 망동이 어디 있나. 애국가 가사도 못 외우고 병역을 기피한 자들이 보수를 자처하며 종북 모략에 혈안이 되어 있는 것 또한 꼴불견이다.
우리는 저력 있는 국민이다. 80달러 국민소득에서 2만5천 달러를 넘는 산업부국이 됐고 지독한 독재탄압을 뚫고 민주화를 이룩해 냈다. 우리 모두가 건전한 애국심, 덕목을 갖춘다면 틀림없이 희망찬 새해를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애국가도 모르는 가짜는 배격되어야 한다.
문의 (571)-326-6609
<정기용 자유광장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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