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소와 여유와 서로 닮았으면서도 다르다. 세상에 대해 초탈한 감정은 닮은 점이요, (하나는)세상에 대한 회의, (다른 하나는)세상에 대한 감사를 통해 나타난다는 점이 다르다. 스스로 (삶에 대한)가치관을 평가해보자면, 다소 시니컬한 편이라 아니할 수 없겠다. 그 이유를 해부해 보자면, 여러가지 이유를 들 수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로 권위주위의 성장 배경을 들 수 있을지 모르겠다.
군사정권 아래서 교육받고 자란 사람들은 공감하겠지만 그저 먹고 살아야한다는 이유하나만으로 모든 게 정당화될 수 있었던 것이, 소위 개발 도상 국가에서 성장해야했던 우리 2세들의 개떡같은 숙명이었다.
권위적인 대통령, 권위적인 아버지, 권위적인 선생님 밑에서 잘도 수긍하고 잘도 순종하며 살아왔던 것 같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가지고 이 땅에 태어났다. 그리하여 세상에서 가진 자… 누리는 자가 된다는 것… 그것은 그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짓밟고 그들의 희생을 거름삼아 올라 설 수 밖에 없던 것이었던가.
부정부패… 권력에 줄을 대고 오직 양지에서만 살릴 바랬던 (우리시대의) 가련한 영혼들이여… 공부를 해도 명문대의 간판을 따야만 했고, 문학을 해도 영혼을 위하기 보다는 문단의 말단일지언정 문인이라는 소리를 들어야만했던 비극, 시대의 부조리여…어느 새 연말, (불교의) 인드라망이 떠 올려지는 계절이다.
거리엔 자선냄비가 등장하고, 생명 공동체로서 (서로를 비추는 구슬망처럼) 서로를 생각하고… 어려운 이웃을 돕는 마음이 자선냄비에 가득하길 바라는 마음은 누구나 한결같을 것이다. 인생은 서로를 얽매는 질곡이라 했다.
서로가 얽힌 복잡한 실타래를 풀면서 서로를 옭아매고 풀어내면서 끝없이 이어지는 굴레의 숙명… 존재란 결국 (아무리 선하다할지라도)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또 다른 존재와 부딪칠 수 밖에 없고, 자신의 매듭을 풀기 위해 다른 사람을 옭아매고 굴레를 씌울 수 밖에 없는, 苦의 연속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자비란 베풀 수 있는 위치에서, 苦의 연결고리를 푸는 생명공동체의 (필수적)동정이지만, (진정한)감동이란 베풀 수 없는 위치에서 희생하는 여유…
고난에서 감사할 줄 아는 인격에서 나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감사는 꼭 풍부하다고 해서 가질 수 있는 감정이 아니다. 내가 베토벤의 전원 교향곡 중 3악장 ‘농부들의 춤’을 좋아 할 당시, 가지고 있는 음악감상 기기란 오직 트렌지스터 라디오 한 대뿐이었다. 형이 어디선가에서 구해온 (일제) 포터블 전축은 고장난지 오래였고 수리할 돈이 없어 싸구려 트렌지스터 라디오로 음악감상을 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음악감상이란 오직 (가끔 음악감상실에 들르는 것 외에) 트렌지스터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 방송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는데 그것도 일요일 외에는 주로 소품들을 틀어주는 것이 전부였다. ‘농부들의 춤’은 단 5분20초밖에 안 걸리는 짧은 곡이었기에 전원교향곡 중에서도 가장 많이 틀어주는 악장이었다.
채 6분도 안 걸리는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 곡이 나올 때면 나는 늘 자연 속으로 마구 달려가, 추수를 마친 농부들과 함께 감사의 춤을 추는 감정에 빠져들곤 하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도 하찮고 아무 것도 아닌 것이었지만 그 당시의 즐거웠던 감정은 그 어떤 돈이나 풍요로운 환경이 가져다 줄 수 없었던 보석이자, 냉소만이 가득했던 삶 속에서… 다른 세계를 바라 볼 수 있었던 인드라망이기도 하였다.
베토벤의 음악은 ‘비애’와 ‘감사’ 두 감정으로 대분할 수 있는데 교향곡 3번 (영웅)은 비애, 6번(전원)은 감사를 대표하고 있다. 3번 ‘비애’는 모든 예술가들이 즐겨다루는 소재였지만 감사는 또다른 차원의 상대적인 감정이었다.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에서 우리는 베토벤의 비애를 쉽게 느낄 수 있지만 ‘전원 교향곡’이야말로 어쩌면 고난 속에서만이 형성될 수 있었던 감사… 오직 겸허에서만이 울려나올 수 있었던 (내면의)감동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보다 더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은 없다’ 베토벤은 늘 말하곤 했는데 인간 세계의 그 비애는 오직 자연을 통해서 그 구원이 가능했는지도 모른다. 5분20초의 짧은 곡이지만 순박한 영혼들을 향기로운 축제로 춤추게 하는… 베토벤의 가장 아름다운 춤곡 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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