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바다 동쪽 끄트머리, 유타에 다가가 Great Basin National Park, 만 삼천피트에 이르는 길을 오른다. 산 아래 대평원이 이처럼 광활하게 펼쳐진 곳이 또 어디 있으랴. 장엄한 산 그늘이 저 평원에 드리우기 시작한다.
푸르스름한 빛으로 서서히 덮여지는 저 아득한 그늘의 끝, 길고 긴 또 하나의 산맥이 붉게 물들고 수없는 주름이 깊은 음영을 이루어 꿈틀대며 나아간다. 길 가로 샛 노란 단풍이 금빛으로 타오르고 공기는 차갑고 청명한 하늘, 고개를 들어 보면 손에 잡힐 듯 하늘 향해 솟구친 봉우리 아래 은회색 자작나무 숲 속을 공연히 배회한다. Lehman Cave, 종유석 끝에 매달린 맑디 맑은 물 방울 하나, 백년을 떨어져야 1cm의 석순을 만든다하니 우리의 일생은 시간 앞에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이 안에 서식하는 생물들은 눈도 다리도 없다한다. 절대의 어둠에서 사는 데에 눈이 무어 필요하고 움직임 이 또 왜 필요할 것인가. 어두운 지하 동굴 세계에 흠뻑 빠져들었다 밖으로 나오니 나무 잎새들에 맺힌 노란 색이 더욱 선명하다. 지상의 이 모든 것들, 산과 나무와 하늘, 바다와 강과, 변화하는 계절과 생성과 소멸의 이 모든 생명체들에 존재하는 색과 빛, 이 얼마나 벅찬 축복인가.
우리에게 주어진, 우리가 누리는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엄청난 사랑의 품으로 우릴 품고 있다. 유타로 들어서자 붉은 산 사이사이 계곡마다 가을이 숨어있다. 저 멀리 산이 줄지어 가는 행렬 아래로 하얀 띠가 눈에 들어온다. 소금벌판이다. 먼 산의 청색과 소금벌판의 백색, 청명한 대비가 아름답다.
인간의 흔적이라곤 달리는 도로와 끝없는벌판을 아득히 이어주는 전선주들뿐, 오직 장구한 세월의 흔적 위로 바람만 외롭다. 그러나 인적없음으로 누리는 이 평화, 부산스럽고 시끄러운 일들은 인간이 있는 곳에서만 일어난다. 왜 우리는 저들처럼 그저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 것일까.
자신이건 남이건 언제나 가만히 내버려두는 법이 없다. 수많은 관계들의 부딪힘 속에서 가끔은 저 산과 벌판을 기억하리라. 이 평화를 기억하고, 그저 가만히 있음을 기억하리라.
그리하여 저 산과 벌판을 닮아가기를 소망한다. 회갈색의 대지 와이오밍, 360도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보아도 황막한 벌판, 그리고 하늘뿐이다. 해질녘 하늘 가운데를 달리다보니 온갖 빛과 색의 향연이 펼쳐진다. 온 사방을 각기 다른 색채와 빛의 물결이 파노라마를 이룬다. Casper 가는길 어느쯤에서 내리막길을 달리고 있음에도 우리가 달리는 길보다도 낮은 언덕과 산이 나타나는 것을 알아챈다. 와이오밍의 메사들 중 어느 한 메사의 꼭대기 평원을우린 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 곳 메사의 크기들이 어떠할지를 짐작한다. South Dakota에 들어서면서부터 갑자기 초록빛 나무들이 눈에 들어온다. 나무가 그리울 정도로 황막한 대지를 달려온터라 초록색이 주는 생동감은 놀라운 것이다. 대지의 물이 끌어 올려지고 갑자기 산야가 살아나 숨 쉬기 시작한다.
Mt.Rushmore에 다가가면서 시에라보다 키는 작지만 울창한 삼림과 호수들을 만난다. 산은 커다란 덩어리의 회색 바위들을 머리에 이고 하늘을 밀어 올린다. 군상인듯, 얼굴들인듯 싶은 것이 여기에 대통령들의 얼굴을 깎아놓은 조각가의 영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어느 우뚝 솟은 바위 산 머리에 죠지 워싱턴, 토마스 제퍼슨, 테오도르 루즈벨트, 그리고 아브라함 링컨, 4명의 얼굴들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다. 미국의 자존심이 여기 농축되어 자랑스레 양 옆으로 도열해있는 무수한 기념비적 기둥들과 전 세계의 깃발들 가운데를 걸어 몇개의 게이트를 통과하면서 느닷없이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낀다.
웬일일까, 내가 이 미국이란 나라에 애국심이 있을만큼 이 땅에서 나고 자라지도 않았는데 울컥거리며 저 안으로부터 올라오는 이 느낌의 덩어리는 무엇인가. 이 땅에서 나고 자란 이들은 그들의 애국심을 확인할 테지만 나는 국가의 개념마저 없어져야 옳다고 여기는 사람이 아니던가.
그렇구나! 그것은 남의 땅에 빈 손으로 와서 겪은 시련과 고통과 아픔의 덩어리이며 그 가운데서 살아남은 내 자신에 대한 자긍심인 것이로구나!
<
어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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