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니믈러(1892-1984)는 독일의 개신교 목사로서 히틀러의 공개적인 반대자가 되었기에 나치 정권의 마지막 칠년을 강제 수용소에서 고통당했던 사람이다. 워싱턴 DC에 위치한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 기념박물관에 의하면 니믈러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긴 것으로 가장 기억된다고 한다.
“처음에 그들이 사회주의자들을 잡으러 왔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사회주의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 다음에 그들이 노동조합 운동자들을 잡으러 왔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노동조합 운동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 다음에 그들이 유대인들을 잡으러 왔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유대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 다음에 그들이 나를 잡으러 왔을 때 나를 위해 말해줄 사람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
니믈러의 논지는 나치주의자들이 수 백 만이 넘는 사람들을 투옥시키고 핍박했으며 살해한 것에 대해 침묵을 지킴으로써 독일 사람들 그리고 특히 종교 지도자들이 공범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는 자기 자신도 그중 한 사람으로 유대인들에게 죄를 지었노라고 한 책에서 밝혔을 정도로 양심적인 사람이었다.
막말을 하는데 이골이 난 도널드 트럼프가 IS 추종자 부부에 의한 샌 버나디노의 테러 만행 사건 이후 “모든 이슬람 교도들의 미국 입국을 (잠정적으로) 중단시켜야 한다”는 어처구니없는 주장을 한 것에 대해 미국 주요 신문들이 모두 다 맹비난을 퍼붓는 것을 보고 니믈러 생각이 났다. 대통령 선거 예선전에 감 놔라 배 놔라는 식으로 간섭하는 것으로 보일까봐 예선 주자들에 대한 논평에 있어서 자제를 보여왔던 신문들이 트럼프는 대통령 자격이 없는 자라고 단정하기에 이르렀다. 만에 하나 그 자가 대통령이 되면 미국사회가 민족, 인종 그리고 종교적으로 조각조각 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일 것이다. 뉴욕타임스, 월 스트리트 저널, 워싱턴 포스트, LA 타임스 지 등 모든 신문들이 일제히 트럼프는 미국의 헌법 역사와 민주주의 전통 및 사회 표준에 대한 이해가 결여돼 있는 사람이란 논조를 펴고 있다. 논객들 중에는 트럼프를 인종차별주의자 또는 히틀러를 추종하던 이태리의 뭇솔리니 같은 파시스트라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
필라델피아 뉴스 지는 히틀러에게 붙여지던 총통 칭호 Fuhrer와 대소동을 의미하는 Furor가 발음이 비슷한 것을 원용하여 트럼프 사진 밑에 ‘New Furor’란 제목을 달기까지 했다. 한 칼럼니스트는 트럼프를 야바위 또는 사기꾼으로 부르면서 이렇게 계속한다. “백악관은 이 부동산 억만장자가 가질 수 있는 재산 중 하나가 아니다. 왜 그런가? 그것이 국민의 집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하인이 그곳에 살도록 허용한다. 우리는 사심이 없는 봉사 정신을 요구한다. (그런데) 야바위 왕은 모든 정치인들 가운데 가장 이기적인 사람이다.”
이슬람교도들을 미국에 입국시켜서는 안 된다는 트럼프의 황당무계한 발언을 비난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그와의 예선 경쟁 후보들을 포함한 공화당 지도자들도 있다. 그의 제안이 공화당이나 미국 전체의 전통을 뒤엎는 것이라는 지적에 더해 13억이나 되는 회교권 사람들을 몇 천만이 못되는 테러분자들이나 과격파의 반미 반서방 선전에 귀를 기울이도록 하는 역효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그러면서도 아직까지는 경쟁 후보자들 가운데 트럼프가 경선에서 이겨 공화당 후보가 되는 경우 그를 지지할 수 없다고 천명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트럼프를 지지하는 공화당계 투표자들이 35%라는 여론조사 앞에서 반 트럼프 운동에 앞장섰다가는 그의 지지층 표를 잃을까봐 전전긍긍하는 형국이다.
워싱턴 포스트의 한 사설은 “깨끗하게 결별할 때”라는 제목을 달았다. 공화당 지도자들이 이제야 트럼프를 비난하는 것은 좋지만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내용이다. 증오와 고집과 분노로 표를 얻고자 하는 선거운동의 폐해가 분명한 만큼 “이제는 분명히 그가 공화당 그리고 미국에 저주가 되는 사람이라고 분명히 말할 때가 되었다”고 그 논설이 결론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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