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전 12월8일엔 비틀즈의 존 레논이 맨해튼 집 앞에서 총에 맞아 숨졌고, 3년전 12월14일엔 코네티컷 소도시의 샌디훅 초등학교 1학년 교실에서 겨우 6~7세 작은 아이들 20명이 선생님들과 함께 총에 맞아 떼죽음을 당했으며, 1주전 12월2일엔 샌버나디노에서 송년파티에 참석했던 평범한 직장인 14명이 총에 맞아 참혹하게 살해당했다.
1980년 뉴욕 루즈벨트 병원 앞에서 수백명 팬들이 레논의 죽음을 슬퍼했던 그날 밤 이후 미국에선 115만명이 총기에 의해 피살되었고 희생자의 이름과 숫자, 장소와 시간만 바뀐 비슷한 애도의 광경이 미 전국 곳곳에서 수 없이 반복되었다. 정신질환자의 광기와 직장 왕따의 분노가 폭발한 경우도 많았고 백인우월주의자와 극단 이슬람주의자의 왜곡된 신념이 대량학살을 빚기도 했다.
미국내 총기난사는 이제 ‘일상’이 되었다. 금년 들어서만 353건이 발생했다. 그중 62건은 학교에서다. 지난주 샌버나디노 참사가 발생하자 영국의 BBC는 “미국의 또 하루, 또 한 번의 총기난사, 패닉과 공포”라고 보도했다.
제각기 정황 다른 수많은 사건들의 공통분모는 하나, 총이다. 미국에선 군사용 라이플과 고성능 탄창도 누구나 어렵지 않게 살 수 있다는 정보가 아프간 산속 테러집단 본거지에까지 전해진 것은 이미 오래다. 2011년 알카에다가 공개한 한 동영상도 미국내 추종자들을 선동하고 있다 : “미국엔 쉽게 구할 수 있는 총기가 넘쳐난다. 총기쇼에 가면 신원조회 없이도 라이플을 살 수 있다. 도대체 무엇을 망설이는가?”
자생적 테러로 가닥 잡히고 있는 샌버나디노 참사의 범인들이 사용한 자동소총과 권총은 모두 ‘합법적’으로 구입한 것이었고 자동차와 집에서도 수천발의 총탄이 발견되었다. 미국의 총기법이 잠재적 테러범의 중무장을 막는데 실패한 것이다. 다른 선진국에서라면 당장 “현행법의 허점이 무엇인가”를 화두로 정치권의 총기규제 강화가 추진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도 미국의 총기규제 강화는 요원하다. 법을 바꾸어야할 연방의회의 다수당, 공화당이 아예 ‘총기’는 참사의 원인으로 언급조차 안 하려 한다. ‘테러’와 ‘총기’가 그들에겐 연계시키면 너무나 불편해질 정치적 이슈가 되기 때문이다.
지난 일요일 오바마 대통령이 대국민 연설을 통해 테러전략을 밝히며 인내와 단합을 호소했을 때 공화당의 반응은 한마디로 도널드 트럼프의 “그게 다냐?”였다. “새로운 것이 없다”는 공화당의 지적은 맞다. 그러나 이라크전의 수렁에 또 빠질 각오를 해야 할 지상군 투입이 아니라면 테러집단 이슬람공화국(IS)을 당장 척결할 묘안은 없다. 오바마 만이 아니라 공화당에도 없다. 트럼프의 “모든 무슬림 미 입국금지”는 막말이지 대안이 아니다.
IS격퇴는 장기전일 수밖에 없다. 미국 혼자가 아니라 동맹국의 연대가 필요한 국제적 과제이며 설사 IS를 격퇴시킨다 해도 승리는 보장되지 않는다. 이라크와 시리아, 당사국들의 안정과 전국민적 합의가 없는 한 극단적인 테러그룹은 또 생겨날 것이다.
샌버나디노 참사를 ‘테러’로 규정하든, ‘총기난사’로 규정하든, 이 같은 총기테러의 재발을 줄이기 위해 미국이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해야 하는 최소한의 노력이 총기규제다. 오바마도 이번 연설에서 의회에 총기규제 강화를 촉구하며 말했다 : “미국에서 비행기 탑승이 금지된 바로 그 사람들이 가게에 들어가 총을 사고 있는데 지금은 저지할 방법이 없다…우리가 매일 일어나는 비극을 막을 수는 없어도 최소한 잠재적 테러리스트나 범죄자가 후에 미국민을 향해 쏠 수 있는 총을 쉽게 구입하도록 방치해선 안 된다”
샌버나디노 총기테러 발생 다음날인 3일 연방상원 민주당 의원들은 2개의 총기규제 강화안을 상정했다. 비행기 탑승금지 명단 수록자에 대한 총기판매 금지안과 온라인 및 총기쇼 거래에 대한 신원조회 확대안이다. 둘 다 공화당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극히 상식적인 내용이고 총기소유주들을 포함한 여론의 85%가 지지하는 규제인데도 막강한 전국총기협회(NRA)의 보복이 두려운 정치가들은 요지부동이다.
작성자인 다이앤 파인스타인 의원이 개탄했다 - “연방의회가 총기로비의 인질이라는 증거가 필요하다면 오늘의 표결을 보라”
워싱턴에선 불이 꺼졌다 해도 총기규제 강화의 희망이 아주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이번주 연방대법원은 지역정부가 자체적 총기규제를 강화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한 시정부의 반자동 소총 및 대용량 탄창 판매금지 조례안에 대한 위헌소송 상고를 기각, 주 및 시정부의 총기규제권을 인정해준 것이다. 당장 캘리포니아 주의회도 연방에서 무산된 규제들을 추진하고 나섰다.
추진 중인 규제강화가 모두 실현된다 해도 앞으로의 난사사건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일부 잠재적 난사범의 총기구입을 어렵게는 할 수 있을 것이다. 시도할 가치는 충분하다. 대책 없이 반복되어온 참극을 멈추게 하는 첫 걸음이 될 수 있다.
<
박 록 주필>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