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저물 때마다, 사람들이 관심있어 하는 분야 중의 하나가 토정비결이 아닐까 한다. 새 해의 운수를 점치고, 그 해(害)를 피해가고 싶은 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일 것이다. 그러나 꽃피는 봄이 있으면 추운 겨울도 있기 마련, 늘상 봄이길 바라는 마음은 순박한 인간의 모습은 아닐 것이다.
운명이 있다면, 그것은 도전하고 극복하기 위해 있는 것이지 그것을 점치고, 피해 가기 위해 있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사람들이 무당을 경멸하는 것은 그들이 (인간의 순박한 모습이기보다는)추한 사술로서 운명과 도박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삶을 살다보면 가끔 초자연적인 능력이 아쉬울 때가 있다.
삶이 너무 힘들 때,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할 순간… 무속인들처럼 신들린 감흥에 젖어 자아를 잊는 초자연적인 힘(氣)을 체험을 하고 싶은 것도 사실이다. 물론 세상에서 접신(接神 )이 가능한지는 연구해 본 일도 없고 설혹 (무당이)존재한다한들 그것은 결국 불완전한 인간의 약점… 그 틈새를 파고들어 득세해 보려는 기생충 역할에 불과할테지만, 그럼에도 별다른 능력없이 평범하게 산다는 것이 너무 힘들 때, 우리는 가끔 신을 대신한 모습… 인간과는 다른 신성의 예지를 지닌 메신저를 갈망하는 것은, 나약한 인간으로서 어쩌면 너무 당연한 갈망일지도 모르겠다.
어린 시절, 먼 친척 중에 무당 한 분이 계셨다. 아버지의 사촌뻘 되는 분인데 서울 변두리의 어느 달동네에서허름한 당집을 짓고 박수무당과 함께 살았다. 덕분에 우리집은 어린 시절부터 굿판이 떠나질 않았었다. 그 (무당)분이 경제적으로 쪼들렸기에 적선하는 셈치고 굿을 하게 됐다는… 어머니의 해괴(?)한 변명이 있곤했지만 아무튼 우리들은 학교갔다 돌아올 때 멀리서부터 요란한 징소리, 장구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면 ‘아! 또 한판 벌어졌구나’하며 창피한 마음을 내려놓기 힘들었다. 동네사람들은 신났다고 마당 가득 와르르 몰려와… 제상 위의 돼지머리에 눈독을 들이곤 했고, 울긋불긋 요란한 문양의 갓을 쓴 무당이 손에 부채를 든 채 무슨 … 널 뛰듯 뛰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면 어린 마음에도 절로 한숨이 나오곤 했다.
혼이란 모습이 아니라 마음이다. 한바탕 굿으로 마음을 깨뜻히 씻기움받기는커녕 더 어지러워질 뿐임에도 약한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고 그저 현란한 한판 굿을 바라봄으로서 마음의 위로를 받고 정서적인 위무를 삼은 것은 우리 민족의 한이 그만큼 깊고 또 민중 속에 뿌리박혀 온 토속 신앙의 힘이 그만큼 깊기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불길한 운명조차도 인간의 힘… 神에 대한 지성과 염원을 통해 바꿔보고자하는 그 절규만큼은 남아 어쩌면 민족의 한을 대변하는 예술(의 형태)로서… 역사 속에 긴 그림자를 남길지도 모르겠다.
음악에 대한 글을 끝마칠 때마다 남는 감회는 늘 한결같곤 했다. 그것은 솔직히 영감이 없으면 창조되기 힘든 (소위 미친 예술) 음악에 대한 이성적인 표현이 버겁다는 것이었다. 글로 표현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고 그러다보니 예민해지기 일쑤이고 찰라에 스쳐가는 미풍에서 영감을 붙잡는 싶은 심정으로 글을 마치곤했다. 그러므로 꼭 한번 써보고 싶었던 것이 바로 ‘음악과 무당’의 주제였다.
어쩌면 불가능할지모르는… 그러나 베르디가 그의 오페라 ‘가면무도회’, ‘멕베스’ 등에서 효과적으로 표현한 명장면… 음악과 접신(接神)의 순간… 그것은 악흥의 순간이라기보다는 인생의 살얼음판… 운명의 폭풍우 속에서 순간순간 운명의 제비뽑기를 해야하는 그 찰라적인 전율이요 감동이곤했다.
요식(?)행위처럼, 굿판에서 펼쳐지는 점쾌를 뽑는 순간의 그 고독한 선택은 때론 이성의 선택이기 보다는 영감의 선택이어야하고 또 인간이란 얼마나 절실하게 신을 바라며 사실은 그 신적인 힘의 무기력한 희생양일 수 밖에 없는 것인가… 무당이란 어쩌면 초자연적인 능력에 대한 인간의 무의식일지도 모르며 그 신내림을 위해 인간은 음악을 필요로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액을 막고 안녕을 기원하는 굿에서 巫樂은 필수이며 이때 쓰이는 무한 변화… 즉 즉흥성은 무악의 생명이다. 예술(음악)의 생명은 바로 즉흥성이다. (멕베스에서 처럼) 예술이 데려가 주는 혼령의 세계… 그 전율과 도취가 없다면 (어쩌면)예술이 영혼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예술이란 어떤 의미에서 모두 무당을 지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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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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