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에 대한 가장 큰 오해 중 하나는 산악 지형이어서 추울 것이라는 인식이다. 히말라야 트레킹에 대한 이미지가 굳어진 탓이다. 실제 네팔은 북위 26~30도에 위치하는 아열대 지역이다. 고봉 설산을 제외한 해발 4,000m까지 농사를 짓고, 남부 평야지대는 3모작까지 가능하다.
해발고도 60m 평지인 치트완 국립공원은 수도 카트만두에서 남쪽으로 약 150km 떨어져 있다. ‘고속도로’ 수준이 한국의 지방도에도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차로 이동하려면 4시간이상 걸리지만 비행기로는 30분이면 인근 바랏푸르 공항에 닿는다.
치트완의 첫 인상은 열대 특유의 희뿌연 열기다. 맑은 날도 항상 연무가 껴있다. 새 건물도 간판도 진열된 상품도 차곡차곡 쌓인 먼지를 겨우털어낸 것처럼 모든 것이 색이 바랜듯 하다. 그럼에도 볕은 따갑고 나른하다. ‘태어나서 이렇게 열심히 일해본 적이 없는데 사장님이 게으르다고 야단칠 때가 가장 억울하다’고 토로한 어느 동남아 출신 이주노동자가 떠올랐다. 섣불리 부지런 떨다가는큰일 치르기 딱 알맞은 기후다. 여행하기엔 우기가 끝나는 10월에서 이듬해 2월까지가 적기다. 한국인들에겐생소하지만 유럽여행객들은 길게는 1개월 가까이 머물며 아열대의 게으름을 즐긴다.
치트완 국립공원의 주된 즐길 거리는 정글투어다. 동물들도 한 낮에는 움직임이 없기 때문에 사파리도이른 아침이나 늦은 오후에 시작한다. 방법은 크게 3가지. 가이드와 숲의 경계지역을 둘러보는 정글 트레킹, 통나무를 파낸 배를 타고 랍티강을 따라 내려가며 악어와 새들을 관찰하는 카누 사파리, 그리고 비교적정글 깊숙한 곳까지 둘러보는 코끼리사파리로 나뉜다.
“코뿔소를 만나면 지그재그로 도망가야 하고, 곰과 호랑이를 만날 수도 있으니 뭉쳐서 다녀야 합니다. 호랑이는 만나지 않는 게 더 행운일 수도 있겠네요.” 정글 가이드의 주의 사항이 결코 농담이 아니다. 이곳은 벵골호랑이와 외뿔코뿔소 세계 최대 서식지다. ‘치트완’도 네팔어로 호랑이를 뜻하는 ‘치트와’에서 나온 말이다. 현재 400여마리의 벵골호랑이와 500여마리의 외뿔코뿔소가 서식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인도를 장악한 영국 지배세력과 결탁한 네팔왕족들이 이 정글에서 하루 최대200마리의 호랑이를 사냥해 한때 멸종위기까지 몰렸지만 다행히 지금은 개체수가 늘어나고 있다.
가장 안전하고 실속 있는 사파리는 역시 코끼리를 타는 방법이다. 숲속 동물을 보는 것 못지않게 코끼리를 타는 것 자체가 스릴 넘친다. 약 2시간 동안 강을 두 번이나 건너고, 발목까지 빠지는 늪지대를 수 차례 지나는 정글 여행은 코끼리가 아니면불가능하다. 몰이꾼 1명을 포함해 5명을 등에 얹고 정글을 누비는 코끼리의 위력에 다시 한 번 감탄하게 된다. 그 수고로움으로 호랑이를 제외한 많은 종류의 동물을 볼 수 있었다. 하루 2차례로 제한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동물학대가 아닌가 하는 죄책감은 여전히 부담이다.
짙은 그늘 아래서 아열대의 무더위를 피할 수 있다는 점도 정글 사파리의 부수적 매력이다. 숲의 70%는 아름드리 살(Saal) 나무로 덮여 있다. 빨리 자라면서도 재질이 단단해 쓸모가 많은 나무다. 물속에서, 땅 위에서,그리고 목재로 1,000년을 버티기 때문에 3,000년을 사는 나무라고 부를정도다. 오래된 사원의 기둥과 정교한 나무조각도 대부분 살 나무다. 주민들은 요즘도 딸이 태어나면 결혼자금을 위해 이 나무를 심는다. 결혼지참금은 불법이지만 남부지역은 여전히 일반화돼 있다.
마음의 평온을 찾는 것이 여행의 최고 목적라면 치트완 국립공원 인근의 타루족 마을을 둘러볼 것을 권하고 싶다. 꼭 봐야 할 것도, 특별히 내세울 것도 없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물소에게 한가하게 풀을 뜯기는 모습,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가정집마당에서 닭들이 부지런히 흙을 파헤치며 먹이를 잡는 모습, 온 가족이 처마 밑에 앉아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는 풍경, 골목마다 넘쳐나는 아이들의 재잘거림 등 모든 것들이 압축성장으로 잃어버린 수 십 년 전 우리의 농촌마을과 닮았다.
아이들의 주된 놀이는 잔 풀이 무성한 동네 어귀 공터에서 크리켓을 즐기는 것이다. 덩치로 봐서 나이와 상관없이 어울리는 모양이다. 승부를두고 다투다가도 풀밭을 뛰며 환호하는 몸짓이 행복하다. 아이들의 티없이 맑은 웃음소리는 어둑해질 무렵까지 이어진다. 빨리 저녁 먹으러 오라는 엄마의 고함소리가 곧 들릴 듯 하다. 더 가지고 더 누리기 위해 정작우리가 놓치고 있는 가치들이 발갛게 떨어지는 태양처럼 점점 또렷해졌다.
치트완·카트만두= <최흥수 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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