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고 부스’ 평… 안 화백 “고국 사랑에 가슴 벅차”
▶ ‘백 아트’의 간결한 디스플레이로 강한 인상 호평
<서울-정숙희 기자> 안영일의 ‘물’시리즈가 키아프를 빛냈다.
지난 6~11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아시아 최대의 아트페어 ‘키아프’(KIAF) 2015에서 ‘백 아트’(Baik Art·관장수잔 백)의 초대로 특별전을 가진안영일의‘물’(Water)은 올해 키아프의 최고 전시로 꼽히며 수많은 관람객과화단의 관심을 끌어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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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엑스 전시홀(B)의 입구에 설치된 ‘백 아트’ 전시부스는 300호(80x90인치)의 대작 6점만을 내걸어 전시함으로써 압도적인 경이감으로 관람자들을 사로잡았고, 안영일의 ‘물’은 한국 화단이 발견한 ‘새로운 단색화’로 이목을 집중시켰다.
흰색 검은색 빨간색 자주색 초록색의 ‘물’이 걸린 전시장은 지나는 사람들을 자석처럼 끌어당겼고, 들어선 사람들은 모두 반짝이는 물의 입자들이 빚어내는 신비한 기운에 이끌리듯 하나씩 찬찬히 들여다보며 사진 찍기에 바빴다.
거대한 바다 한가운데, 혹은 우주의 심연과 생명의 신비마저 느껴지는 ‘물’의 파워가 30년만에 고국의 화단에서 찬연하게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오랜만에 나들이한 안영일 화백을 만나러 한국화단의 여러 중진 및 원로 작가들이 전시장을 찾아 인사하고 회포를 나누는 모습이 이어졌고 문화일보, 서울신문, 퍼블릭 아트 등 주요 매체와 미술전문지들의 인터뷰도 계속됐다.
갤러리 현대, 박여숙 화랑 등 한국의 대형 화랑들도 찾아와 인사하며 전시가 좋다고 극찬을 보냈고, 오래전 안 화백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는 콜렉터들까지 찾아와 감격을 전하며 왜 지금껏 안 나오셨냐고 반가움을 표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사람들은 무엇보다 작품에만 집중하도록 간결하고 강렬한 디스플레이를 보여준 백 아트의 부스 디자인에 깊은 인상을 받은 듯했다. 수잔 백 관장은 몇달전부터 이 전시를 위한 디자인에 공을 들였고, 작품이 돋보이도록 벽과 바닥의 색깔을 통일시킴으로써 부스에 들어서면 어머니 자궁에 안착한 듯 포근하게 감싸 안기는 느낌이 들도록 6개의 ‘물’을 세심하게 배치했다.
키아프에 참가한 180여개의 갤러리 부스를 모두 돌아보아도 이처럼 확실하게 한 작가의 작품에 포커스하여 압도적인 경험을 주는 전시장은 없다는데 모두들 의견을 같이 했으며, 키아프의 격을 높여준 전시라는 칭찬이 이어졌다.
5일간의 미술장터인 아트 페어에는 대부분의 갤러리들이 여러 작가의 작품을 잔뜩 들고 나와 부스 안팍으로 사방 벽에 다닥다닥 붙이기 때문에 사실상 디자인이란게 없이 벼룩시장 같은 풍경을 연출하기 마련인데 올해 키아프에서 ‘백 아트’의 안영일 전시는 ‘최고의 부스’라는 평을 들을 만큼 단연 돋보이는 것이었다.
수잔 백 관장은 “신경을 많이 썼는데 다들 좋게 봐주셔서 기쁘다”고 말하고 “특별히 작가들이 찾아와 관람하면서 작품을 이렇게 확실하게 걸어주는 전시를 보지 못했다며 작가 입장에서 무척 부럽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고 전했다.
더구나 안영일 화백은 한국 화단에는 수십년만에 처음 소개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도 300호 크기의 대작만 건다는 것은 보통 자신감 가지고 되는 일이 아니라는 점에서 수잔 백 관장의 두둑한 배짱까지 화제가 됐던 전시였다.
당연히 6개의 ‘물’은 모두 일찌감치 판매가 끝났고 디스플레이 하지 않은 작품들까지 카탈로그만 보고도 판매가 이어져 모두 흥분된 모습이었다.
안영일 화백은 특히 가슴이 벅차했다. 캔버스와 물감 구하기도 어렵던 시절 한국을 떠난 후, 오랫동안 잊혀졌다가 50여년만에 금의환향하여 고국 화단의 뜨거운 사랑을 대하자 감회와 감격이 밀려오는 듯, 늘 조용한 얼굴에도 파문이 일었다.
“기대 이상의 큰 성과에 가슴이 벅차다”고 말한 안 화백은 “화가의 삶은 정년이 없으니 사는 날까지 쉬지 않고 작품을 하겠다”면서 “건강만 허락한다면 차근차근 대작들을 완성시켜서 큰 전시회를 준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번 키아프 전은 화가 안영일을 처음 단색화 작가로 소개한 전시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단색화(Dan Saek Hwa)는 70년대 이후 한국 화단에서 형성된 독특한 미술사조로, 이를 찾아내 이름 붙이고 세계에 알린 윤진섭 전 국제미술평론가협회 부회장(시드니대 미술대 명예교수)은 지난여름 LA의 안영일 스튜디오를 방문, ‘물’ 시리즈가 해외에서 자생된 또 다른 류의 단색화임을 확인한 바 있다.
최근 제작된 안영일 화집에서 평론을 통해 ‘물’ 시리즈 특유의 단색화 양식에 대해 자세히 기술한 윤진섭 평론가는 이번 전시에 대해 “300호 크기의 대작들을 출품하여 미술관 전시와도 같았던 이번 안영일 선생님의 전시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단색화 대작을 선보여 언론의 조명을 받게될 것이며, 한국 미술계에 많은 자극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단색화는 국제 화단에서도 독창적인 예술성을 인정받아 2015 베니스비엔날레에서도 대규모 특별전이 열렸고, 세계적 경매회사인 크리스티 뉴욕 본사는 이달 8~23일 단색화 그룹전을 개최하는 등 국내외에서 관심과 전시가 잇달고 있다.
윤진섭 평론가는 최근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1970~1980년대에 활동한 1세대 작가들에게 관심이 몰리고 있지만, 앞으로 단색화가 세계 미술 흐름을 주도하기 위해서라도 안영일 등 소외된 1세대는 물론 남춘모, 장승택, 김택상, 김춘수, 고산금, 이인현 등 2세대 작가들에게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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