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열흘 전쯤 버지니아주 페어팩스 카운티 내의 폴스처치 고교에서 베트남어 과목 개강 축하 행사가 열렸다. 올해부터 페어팩스 카운티 공립학교에서 처음으로 베트남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사실 버지니아 주 전체에서 베트남어를 가르치는 곳은 이 학교가 유일하다. 여러 사람들이 오래 동안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결과이다. 평소 외국어 교육의 중요성을 누누이 강조해 온 나는 당연히 기쁘게 이 행사에 참석했다.
베트남어를 정식 과목으로 가르쳐야 한다는 요청을 내가 처음 접한 것은 약 4년 전이다. 물론 이 지역 베트남 커뮤니티에서는 그 전부터 논의가 되었겠지만, 나와 폴스처치 고등학교가 위치한 메이슨 디스트릭을 대표하는 교육위원이 커뮤니티 대표들과 4년 전에 정식 만남을 가졌던 것이다. 그 모임에서 원칙적으로 가르치는데에 동의했고 그에 대한 준비를 하기로 했다. 학교 교장이나 교육청 담당자의 적극적인 협조도 있었다. 그러나 그 과정은 쉽지만은 않았다. 여러 가지 건너야할 난관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우선 수강에 관심을 갖는 학생들 숫자가 과목을 유지할 정도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학교에서는 교사를 배정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숫자가 약간 모자라는 감은 있었으나 수업개설 초기에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어려움이라 여기고 계속 추진하기로 했다. 그런데 정식 학점을 인정받으려면 주 정부 인가가 있어야 했다. 그러나 버지니아 주에서 베트남어를 가르쳐 본 적이 없기에 교과과정, 교사 자격에 대한 규정 등에 미비한 점이 너무 많았다. 모든 것을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다. 그리고 물론 그 것은 주정부 차원에서 움직여 주어야 하기에 페어팩스 카운티 교육청이나 지역사회의 뜻대로 빨리 진행되지 않았다.
이 모든 과정을 거치고 페어팩스 카운티에서 올해부터 정식 과목으로 가르치기로 해 학생들이 수강 신청을 모두 마치었는데, 이번에는 교과서 채택이 문제였다. 담당자에 의하면 페어팩스 카운티 교육청도 처음이기에 어디서 교과서를 구해야 할지 몰랐다고 한다. 그래서 일단 여기저기서 추천받은 교과서나 자료들을 모두 모았다고 했다. 그런데 그 모든 자료들이 초등학교나 대학교에서라면 몰라도 고등학교에는 맞지 않는 내용들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중 일부는 공산주의를 옹호하는 내용들이 담겨 있다고 했다. 이 지역 베트남인들이 대부분 과거 공산주의와 대항하다가 베트남을 떠나 미국에 온 사람들이거나 그 후손들임을 고려할 때 지역사회 베트남인들이 이러한 내용이 담긴 교과서에 거부감을 갖는 것은 지극히 당연했다.
다행히 미국 다른 지역에서 베트남어를 가르치는 고등학교에 문의해 본 결과 캘리포니아 한 학군에서 자체적으로 개발한 교과서가 있다고 했다. 그 교과서를 급히 받아서 지역사회 대표들에게 자문을 구한 바 적절하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했다. 이 모든 과정이 지역 베트남 커뮤니티와 긴밀히 협조해 진행되었기에 이 과목 개강이 더욱 의미가 있는 듯했다.
이날의 축하 행사 중 참석자들과 질의응답 시간도 있었다. 특히 노인 한 분의 지적이 인상 깊었다. 교과 자료 선정이나, 가르칠 때 베트남 고유의 전통인 어른들에 대한 공경심과 변질 되지 않은 어휘나 표현 사용 등에 유의해 달라고 했다. 베트남어에도 한국어와 마찬가지로 존대말이 있고, 세대가 바뀌면서 같이 바뀐 어휘들 중 어른들이 듣기에는 적절하지 않게 들리는 것들이 있는 모양이었다. 아마 베트남 패망 후 40년이 지나면서 그 사이에 본국에서 사용되는 어휘가 예전과 달라지고 그것이 이곳 미국의 베트남인 커뮤니티로까지 퍼지는 데에 대한 우려 표명인 듯 했다.
또 다른 우려는 앞으로 이 과목이 폴스처치 고등학교에서 계속 유지되려면 일정 수준의 수강신청 학생들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할 경우였다. 다른 학교 학생들에게도 수강을 허락하겠느냐는 질문이 있었다. 이에 대해서는 내가 현재 페어팩스 고등학교에서 한국어 수업을 다른 학교 학생들도 들을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이 좋은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아무쪼록 여러 해에 걸쳐 교육청과 베트남인 지역사회가 힘을 합쳐 이루어낸 좋은 결과가 앞으로도 계속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학생들에게 유익한 배움의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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