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떠날 때마다 늘 설렌다. 여행은 새로운 곳과의 만남이며 또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을 예정하기 때문이다. 지난달 9월 중순에 말로만 듣던 옐로스톤 국립공원을 막내아들 내외와 우리 내외 이렇게 넷이서 4박5일로 다녀왔다.
유타주 솔트레익크까지 비행기로 가고, 거기서 차를 빌려 아이다호주와 몬타나, 와이오밍까지 차를 타고 다녔다. 엘로스톤은 1916년 테오도르 루스벨트 대통령에 의해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곳이다. 우리가 묵었던 장소는 몬타나주 가디너라는 곳이었다. 앞으론 옐로스톤 강이 흐르는 언덕 위에 지은 아담한 방갈로였다. 이곳 가디너는 얼마전에 내가 너무 재미있게 읽은 에드워드 케네디라는 작가의 <빅 픽쳐>에 나오는 장소였기에 더 인상이 깊었다. 그 소설의 주인공이 마지막 숨어있던 소도시가 바로 가디너라는 곳이었다.
첫날은 시골풍의 소나무로 지은 높다란 침대에서 자고, 다음날은 일찍부터 서둘러 옐로스톤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길을 떠난지 얼마되지 않아 수십마리의 바이슨(버팔로)을 만났다. 큰 행길을 이런 동물들이 떼를 지어 건너갈 때마다 수십대의 관광차들이 차를 멈추고 기다려야했다. 이런 바이슨의 무게가 거의 천파운드를 넘는다고 했다. 곧 옐크들도 만났다. 거대한 뿔을 지닌 이 동물을 유럽에선 붉은 사슴이라 부른다고 했다.
넓디넓은 푸른 평원에 군데군데 모여있는 이런 동물들이 파아란 하늘과 더불어 아름답고 평화스러운 풍경을 자아냈다. 미국을 여행하다보면 얼마나 이 땅덩어리가 넓은가를 새삼스레 느낀다. 한참을 달리다가 언덕 위에 지은 간이화장실을 발견하고 차를 세웠다. 그 화장실의 깨끗함에 한번 놀라고, 대여섯개의 화장지와 손을 씻을 수 있는 위생지까지 준비해둔 그 준비성에 또 한번 경탄을 했다.
이럴 때마다 나는 이런 미국에 살고 있다는 것에 행복감과 함께 다시 한번 감사를 한다. 화씨 70도 정도의 날씨가, 오후가 되면서부터 구름이 끼고 바람까지 몰아쳐서 곧 비바람이 불 것 같아 우리는 서둘러서 숙소로 돌아왔다. 동네에 작은 수퍼마켓이 있어서 들어갔더니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물건값이 거의 캘리포니아의 두배에 가까웠다. 나와 며느리는 가지고 간 밥과 고추장과 김으로 볶음밥을 해먹고, 남편과 아들애는 베이크 치킨과 감자 튀김을 사 먹었다. 다행히 며늘애가 한국애라서 우리들은 여행을 같이 다닐 때마다 비슷한 입맛을 가져 그것이 또 행복임을 깨닫는다.
옐로스톤 정상까지 올라가면서 1891년에 지은 거대한 옐로스톤 호텔이 옐로스톤 호수 앞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고, 수십개의 조그만 방갈로가 호수 앞에 줄 지어 있었다. 여름철엔 거의 일년 전에 예약을 해놓아야 한다고 아들애는 말했다. 이곳 정상의 명물인 올드 훼이스 게이서는 사실 약간의 실망감을 주었다. 약 한시간 간격으로 뜨거운 수증기가 땅속에서 치솟아 오르는 것을 보려고 모든 관광객은 영상 37도쯤 되던 추위를 무릅쓰고 그 앞에서 오랜 시간을 가다려야 했다.
나는 반바지를 입고 갔다가 큰 낭패를 보아서, 큰 창이 있던 대기소 안에서 볼 수 밖에 없었다.
옐로스톤 근처에는 땅에서 수증기가 나오는 곳이 여기저기 눈에 보였는데, 그 근처의 어떤 땅들은 지면이 얇아서 만약 땅이 꺼져버린다면 뜨거운 온천수로 추락할 수도 있다는 얘기였다. 마지막 날엔 기다리던 불 곰이 어슬렁거리는 것을 꽤 가까이 볼 수 있었다. 그곳 쉐리프가 차로 곰을 에스코트를 하는 모양도 신기했다.
돌아오는 길에 그랜드테톤을 보았다. 마침 안개를 뚫고 무지개가 보였는데 제니라는 호수 물에 그림자를 띄운 산의 모양이 절경이어서 모두 와! 하는 탄성을 질렀다. 다시 한번 신의 손길에 경외심을 느끼고 마지막날은 아이다호의 끝인 파랑새의 집이라는 여관에 묵었다. 시골풍의 하얀 집이 베어 레이크 앞 언덕배기에 있는데 그곳 주인 여자가 아침을 직접 해주어서 인상적이었다. 인구 몇 백밖에 안되는 휫시 헤븐이라는 동네가 여름이면 수천명의 관광객이 모여든다고 했다. 뜨거운 커피와 구운 감자와 햄을 먹고 그 그림 같은 동네를 떠나야 한다는 것이 아쉬었다. 이런 동네에서 그 아름다운 호수를 바라보며 산책을 하고 글을 쓸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를 생각해 보았다. 약 1마일쯤 달리자 유타주였다. 벌써 이곳은 단풍이 시작되었다. 울긋불긋하게 수놓은 좁은 협곡들을 몇 시간 달리자 솔트 레이크가 나왔다.
솔트레이크는 내가 몇년 전에 와본 도시다. 그때는 선교 여행 중 들렀는데 소금으로 뒤덮힌 호수로 들어가 소금도 맛보았다. 이번 여행을 하면서 느낀 것이 있다면 젊음과 늙음의 차이는 호기심과 비호기심의 차이라고나 할까. 아들 부부는 조금만 좋은 경치가 나타나면 얼른 차에서 내려 카메라의 그 모습을 담느라고 정신이 없는데 우리 부부는 내리는게 귀찮아서 나중엔 차에 앉아만 있었다. 하루 대여섯시간 앉아서 구경만 하는데도 지쳐가고 있었다.
떠나오기 전 쟌이 살짝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맘! 이번 여행은 대디의 마지막 소원인 버크리스트 윗시였어요" 나는 그말을 들으면서 한대 얻어 맞은 기분이었다. 그렇지, 우리들은 모두다 어느날 이 지상을 떠나지만 이곳 옐로스톤은 그 신비함을 가지고 영원히 그곳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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