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플라스틱 상자에 물건을 마구 던져 넣는다. 칫솔, 비누, 샴푸, 모기약, 손전등, 긴 소매 옷 등등. 며칠 후 있을 캠핑을 위한 준비물이다. 초기에는 종이에 빼곡히 적어 몇 번을 읽고 점검해도, 가서는 정작 꼭 필요한 한두 가지가 빠져 당황하기 일쑤였는데, 지금은 리스트가 없어도 이렇게 며칠 동안 오가며 생각나는 것들을 상자에 던져놨다가 훅 떠나도, 빠진 것 하나 없는 완벽한 짐 싸기가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10년 동안 쌓은 내공이다.
친하게 지내는 선배 언니 부부가 캠핑을 가자고 처음 제안했을 때, 게으르고 편한 것 좋아하는 나와 깔끔하고 간단한 걸 좋아하는 남편은 시큰둥했었다. 게다가 우린 둘 다 보이스카웃, 걸스카웃 여름방학 행사였던 ‘야영’에서 경험한 여러 가지 고달픔과 힘겨움으로 ‘캠핑은 고생하러 가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3살 난 아들과 5살 난 딸을 데려가자니 준비물부터가 엄두가 나지 않아 거절해야겠다고 결심했었다. 그런데 텐트도 여분이 있으니 가져가 미리 쳐놓고, 침낭도 빌려주고, 음식도 모두 준비할 테니 개인용품만 가지고 간단하게 오라는 선배 언니 남편 분 친절한 배려와, 같이 가면 너무 재미있겠다며 한껏 부풀어 있는 선배 언니를 실망시킬 수 없어 마지 못해 가겠노라 해버리고 말았다. 떠나면서도 우리는 2박 3일 일정을, 아이들 핑계 대고 하룻밤만 자고 오자고 작당을 했었다.
딥 크릭, 산도 깊고 계곡도 깊었던 그곳에서의 첫 캠프. 90도를 넘나드는 폭염의 밖과는 달리 숲 속은 온통 짙은 초록 그늘이었다. 촉촉함이 묻어있는 흙 냄새와 싱그러운 풀 내음, 수많은 새의 지저귐과 졸졸거리며 흐르는 계곡의 물소리. 미리 도착한 일행들은 벌써 불을 지피고 오손도손 불가에 앉아있었다. 삼겹살을 굽겠다고 어디선가 납작한 돌을 찾아 와 불 위에 올려놓고, 돌판에 구운 고기의 맛이 얼마나 좋은지 보여주겠다며 베테랑 캠핑 선배, 고 선생님이 열심히 돌을 닦고 있었다. 여자들은 야외에서는 남자들이 요리 하는 거라며 팔짱을 끼고 앉아 호호거렸고, 남자들은 고기며 채소며 쌈장 등을 나르면서 저녁 식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고만고만한 아이들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다가 나뭇가지 하나씩을 주워 와서는 땅도 파고 불도 쑤셔대더니, 어느새 돌멩이를 주워 탑 쌓기를 하고 있었다. 한참을 놀던 아이들은 저녁식사 때가 돼서야 “애들아! 밥 먹어라!” 하는 고함소리에 “와~아!” 하고 몰려들었다. 기름이 쏙 빠진 돌불판 삼겹살과 참치 넣은 김치찌개의 궁합이 얼마나 절묘했는지 냄비 밥의 누룽지까지 박박 긁어 남김없이 먹고 난 후, 아내들은 남편들이 음식을 더 잘한다며 매일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너스레를 떨었고, 남편들은 안 해서 그렇지 하면 일류요리사라며 으스댔었다. 칭찬에 의기양양해진 아빠들이 신속하고 깨끗하게 설거지를 끝냈을 무렵엔 불 속에 묻었던 감자, 고구마, 옥수수 익는 냄새가 구수하게 퍼졌다. 아이들은 마시멜로를 막대에 끼워 불 속에 넣어 돌리며, 잠시 후에 맛 볼 달콤함에 대한 기대로 신이 나고 있었다. “하늘에 별이 참 많네요.” 라는 누군가의 소리에 올려다보니 빈틈없이 빼곡히 들어찬 별들이 서로 다른 빛깔로 반짝이고 있었다. 우리 모두는 불가에 둥그렇게 원을 그리고 앉아 학창시절 했던 게임을 하며 벌칙을 받는 사람에게 “두 분은 어떻게 만나셨어요? 첫 키스는 언제 하셨나요? 다음에 태어나도 지금 남편과 결혼하실 거예요?”라며 짓궂은 질문을 해댔고, 대답 못하고 당황하여 어쩔 줄 모르는 모습에 손뼉을 치고 웃었다. 선배언니 남편 분이 연주하기 시작한 기타소리에 모두가 흐릿한 기억의 가사들을 애써 떠올려 어설프게 노래하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냈다.
우리 가족은 2박 3일 줄 곧 그곳에서 잘 먹고, 많이 웃고, 열심히 놀다가 돌아올 때는 누구보다 제일 아쉬워했었다. 전기도 없고, 전화도 터지지 않고, 물도 아껴 써야 했지만, 자연 속에서 자연에 안겨 간단하고 단순하게 살아보는 것, 그것이 참 휴식의 행복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우리 부부는 돌아와 최신형 캠핑 장비를 사 모으기 시작했고, 주위 분들에게 경험을 나누며 ‘같이 가자!’ 고 설득했다. 그렇게 모인 여러 가족과 10년 가까이 여름 연중행사로 캠핑을 간다. 그리고는 비록 며칠의 짧은 시간이지만, 그곳에서 일 년을 살 수 있는 에너지를 얻어 돌아온다. 올해도 그리하여 우리는 쉐난도아로 캠핑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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