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 이어 백투스쿨 나이트 이야기를 계속 나눈다. 학년초에 학부모들이 학교 선생님들과 만나고 학부모회 임원들로부터 활동보고도 받는 이 행사는, 나에게는 카운티 여러 지역의 학교들을 방문하는 기회가 된다.
학교마다 행사를 치루는 방식도 조금씩 다르지만 특성도 있음을 새삼 느끼게 된다.
그런데 지난 주 한 학교에서의 백투스쿨 나이트는 내가 교육위원으로 좀 더 심혈을 기울어야 할 부분이 있음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주었다. 일반적으로 백투스쿨 나이트는 가장 많은 숫자의 학부모들이 모이는 행사이다. 그러기에 학교 주차장은 물론 인근지역의 길 옆이 학부모들 차로 꽉 차는 모습을 쉽게 본다. 교육위원인 나는 다행히 학교 측의 배려로 주차 공간을 미리 확보해두지만, 주차가 어려워 고생하는 학부모들도 꽤 있다.
오후 6시 행사 시작 예정 10분전 쯤 그 학교로 갔다. 그런데 예상 외로 주차장이 여유 있어 보였다. 그래도 별 생각 없이 주차를 한 후 학부모님들이 모이는 카페테리아로 들어갔다. 그 곳에도 학부모님들이 많지 않았다. 교장은 학부모들이 보통 조금 늦는다고 했다. 그래서 학부모들을 기다리며 그 학교의 학부모 연락관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학교는 학생들의 거의 70 퍼센트가 히스패닉, 그리고 아시아인 학생들도 15 퍼센트 정도 되며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들이 75 퍼센트나 된다고 했다. 상당수의 학부모들이 늦게까지 일하고 차가 없는 가정도 제법 되는 학교였다. 이러한 특성이 있음을 미리 챙기지 않고 방문한 나 자신이 별안간 부끄러워졌다.
교장 선생님이 나를 정식으로 학부모들에게 소개하고 내가 인사말을 할 때가 되었다. 평소 같았으면 그냥 우리 집 큰 애의 초등학교 3학년 일기장에 적혀 있던 글 일부를 나누었을 것이다. 지난 주 칼럼에서 그 일기장 내용을 소개했지만 여기 다시 적는다. “어제 보이스카우트 캠프에서 돌아왔다. 부모님들이 이제 편하게 쉬라고 하신다. 그런데 문제는 계속 잔소리를 하고 이것 저것 하라고 강요하면서 어떻게 편히 쉴 수 있나! 두 분 태도 좀 조속히 고쳤으면 좋겠다.” 그러면서 이 내용을 큰 애가 대학교에 들어 간 후에야 보게 되었는데 나만한 아버지는 없다고 자신했지만 내가 모르는 것들이 많았던 것 같다고 얘기했을 것이다. 그리고 또한 두 애들을 다 키우고 모두 타지로 보내고 나니 그 애들이 가까이 있었을 때 제대로 못했던 대화가 너무 아쉽다, 그러니 여러 학부모들은 자녀들이 가까이 옆에 있을 때 많은 대화를 나누고 좋은 시간을 가지라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학교에서는 이 같은 인사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 자리에 모였던 학부모들에게 보이스카우트 캠프는 먼 나라의 이야기로 들릴 수 있겠다 싶었다. 대부분 자녀들을 그런 프로그램에 보낼 수 있는 재정적 여유가 있는 가정들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이 다 커서 부모 곁을 떠나기 전에 가능하면 많이 같이 시간을 보내고 애들의 운동 시합에 쫒아가 큰 목소리로 응원도 하고 학교에 와서 자원 봉사도 하라는 얘기를 할 수가 없었다. 그 부모들은 먹고 살기 위해 일하는 것에만 매달리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대신 내가 40년전 고등학교 시절 한국에서 가난하게 살다가 이민왔던 얘기를 나누었다. 지금은 돌아가신 어머니가 학교와 호텔 청소부로 두 개의 풀타임 직장을 유지했고 주말에 가정집 청소를 하면서 세 자녀들을 키우고 대학 공부를 시켰다는 말도 전했다.
그 자리에 앉아 있던 학부모들도 내 어머니처럼 열심히 일해야만 할지 모르지만 미국에서는 누구나 열심히 하면 성공할 수 있는 기회도 주어지니 열심히 일하고 자녀들 교육 뒷바라지를 해달라고 부탁 겸 격려의 인사를 했다.
페어팩스 카운티는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 중 하나지만, 페어팩스 카운티의 공립학교 내에 이제 거의 30 퍼센트 가량의 학생 가정들이 빈곤층으로 간주되고 있다. 그러기에 그 학생들이 중산층 가정 학생들에 비해 학교 밖에서 경험할 수 있는 교육 기회가 분명히 상대적으로 부족할 것이다. 백투스쿨 나이트를 순회하며 그런 부족한 부분을 메꾸는데에 대한 정책적 배려의 필요를 다시 한 번 느꼈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